은하수 지나는 새벽에...

by Br.星のAndreia posted Mar 0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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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사순 2주간 토요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제처럼 손가락이 아리진 않습니다만, 후유증이 좀 남아 있네요. CACCM 형제, 자매님들께서도 칼 같이 위험한 물건 쓰실 때 안전하게 쓰시길 바랍니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역시 회개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주님께서 말씀을 해 주십니다. 오늘의 비유는 돌아온 탕자에 관한 비유입니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보면 냉담자 들과 열심한 교우 여러분들 같은 그런 뉘앙스를 느끼게 됩니다.

 

사실 우리들이 판단하는 열심한 생활과 열심하지 않은 생활이 하느님께서 어떻게 보고 계실까요? 열심 하신 분들은 이렇게 말씀 하실 것입니다.

 

“저 같이 이렇게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사람 나와 보라고 하세요. 이 정도면 열심 하게 살아온 것이 아닌가요?”

 

냉담자 분들은 “이제 성당에서 너무 많은 일을 해서 지쳤으니 쉴 게요.” 하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크신 사랑이 매일미사 한 번 참례 하는 것과 같은 것인지 한 번 생각 해봐야 하겠습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 하셨다면, 그것은 내 생각과 행동을 합리화 시키는 그런 무사안일주의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특별히 마음에 드는 자녀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시지만, 그래도 다 똑같은 사랑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의 마음보다도 더 주님께서는 공평하신 사랑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판단하는 것과 많이 다릅니다.

 

내가 과연 다른 이들과 비교 하면서 이만하면 되었다는 그런 생각들을 가지면서 내가 저 사람 보다 나은데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시련과 고통을 주시는지 불평불만을 놓는 일들, 그렇게 해놓고 주님의 뜻과 어긋나는 길을 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에 우리는 반성을 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을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사실 큰 아들이 아버지께 충실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지요. 그렇지만 큰 아들과 아버지의 작은 아들에 대한 사랑이 어느 쪽에서 충실 하였겠습니까? 그래서 큰 아들이 아버지가 작은 아들에 대한 사랑에 대해 아무런 말도 언급하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이러쿵저러쿵 하며 툴툴 거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과연 큰 아들과 같이 살아왔는지 반성 해봐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완전하고 무한한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 형제의 상처를 아물게 하고 감싸게 해줘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감싸 안아 주실 것입니다.

 

잠시 묵상 하시면서 과연 내가 큰 아들처럼 받을 것을 다 받았음에도, 큰 아들처럼 무사안일주의로 살아왔는지, 그리고 나의 사랑이 필요한 형제, 자매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왔는지 오늘 하루를 묵상 합시다. Amen.


신청곡 : 가톨릭 성가 124장 은혜로운 회개의 때 , 고영민 Andreia 탕자처럼 살아온 인생 , 사랑의 날개 희망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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