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성월 기획 - 순교자, 그들이 남긴 것 (중)
by 두레&요안나 posted Sep 08, 2010
9월 순교자 성월을 보내는 우리는 행복하다.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마음이 한껏 차분해지는 가을의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은 순교자를 따라 살겠다는 자신의 다짐일 것이다. 그 다짐의 표피(表皮)를 더욱 굳게 하기 위해 순교자들이 마지막 남긴 말을 읽고, 쓰고, 만져 보자.
■ 조정 대신(大臣)·명도회 회원에게 남긴 말
조정 대신에게
1839년, 정하상 성인은 순교하기 전 붓을 들어 자신을 박해하는 조정 대신에게 글을 올린다. 이것이 ‘상재상서(上宰相書)’다. 천주교 교리를 밝히고, 천주교에 대한 박해의 비합리성과 부당성을 지적하고, 천주교를 변호하는 글이다.
상재상서는 길지 않으면서도 논리적이다. 순교를 눈앞에 둔 마지막에도 정하상 성인은 박해의 칼을 거머쥔 조정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 정하상 성인.
“만약 올바른 것이라면 그것이 비록 나무꾼의 말일지라도 성인(聖人)들은 반드시 받아들였으니, 이것은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그가 한 말을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하느님의 거룩한 종교를 금지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의 첫 번째 물음이다. 그는 우리나라 조정이 천주교의 이치가 어떤지는 알아보지 않고 무조건 옳지 못한 가르침이라고 몰아붙이는데 원통함마저 안고 있다. 실제로 그는 신유박해(1801년)를 전후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으면서도 천주교의 기원과 전통을 조사해 본 적이 없는 관리들에게 부당함을 호소한다. 이어 ‘감히’ 천주교의 가르침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말씀드리겠다고 나선다.
“천지 위에는 어른(하느님)이 계신데, 그분은 스스로 존재하시고 주재하시는 분으로서 이는 다음 세 가지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만물(천지만물)이고 둘째는 양지(양심)이며 셋째는 성경입니다.(중략) 생각해보면 천지는 하나의 커다란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날아다니는 것, 걸어다니는 것, 동물, 식물 등 제각기 다양한 형상들이 어떻게 저절로 생겨났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정하상은 ‘천지가 저절로 생겨났다면 해와 달과 별이 어떻게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으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어떻게 그 바뀌는 순서가 잘못되지 않느냐’고 묻는다. 두번 째로 그는 하느님이 계심을 ‘사람들의 양심’을 증거로 이야기한다.
“세상의 무식한 남자와 여자들도 당황스러운 막다른 지경이나 몹시 슬프고 절망스러운 때를 만나면 틀림없이 하느님을 찾으며 부르짖듯 기도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마음과 타고난 천성으로서 숨길래야 숨길 수 없기 때문에 가르치지 않아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어떻게 섬길 지 몰라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그의 마지막 증거는 ‘성경’이었다. 그는 조정 대신이 이해하기 쉽도록 성경을 경서와 사서 등에 비유하며, 이러한 서적을 ‘소가 땀을 흘릴 만큼’ 실어다 온 집안에 가득 채운다고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을 조금도 잘못되게 하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정하상의 말은 단호하다. 큰 은혜를 내려주신 아버지와 같은 하느님께 어떻게 불효를 저지르겠느냐는 요지다. 십계명과 영혼이 가는 곳, 천당과 지옥, 성교회 등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그의 말은 엄중하면서도 절박하기까지 하다. 상재상서의 마지막은 이러하다.
“신주(神主)라는 것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혈육과는 아무 관계가 없고 또 낳아서 길러준 부모님의 노고와도 관련이 없습니다.(중략) 그런데 목수가 만들어서 분을 칠하고 먹을 찍은 신주를 보고 참된 아버지요 어머니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뒷받침할 근거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양심 또한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차라리 양반에게 죄를 짓더라도 성교회에 죄를 짓고 싶지는 않습니다.”
- 정하상이 1839년 작성한 상재상서(上宰相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