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년 교황 레오 13세(1873~1903)는 세계 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호소하였고, 교황 비오 10세(1903~1914)도 묵주기도만큼 아름답고 은총을 많이 내리게 하는 기도도 없다면서, 묵주기도를 사랑하고 매일 정성스럽게 바치라고 유언하였다. 이를 뒷받침하듯 1917년 파티마에서 6번이나 발현한 성모 마리아는, 매일 묵주기도를 15단씩 바치면 전쟁이 끝나고 죄인들이 회개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중 세 번째 발현 때에는 각 단을 바친 후 ‘구원을 비는 기도’를 하라고 하였으며, 마지막 발현에서는 자신을 ‘묵주기도의 어머니’라고 선언하였다. 묵주기도는 성모 마리아가 가장 기뻐하는 선물이며, 언제 어디서라도 바칠 수 있는 기도이다. 그리고 묵주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묵상하며 성모 마리아와 함께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감사드리고 우리도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기를 비는 기도로서 우리를 예수님과 일치시켜주는 좋은 기도인 것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묵주기도는 침묵의 기도에 이르는 길이었다. 기도 중에는 교회에서 본보기로 정한 20가지 신비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유스럽게 지향을 두고, 다양하게 그 신비를 묵상한다면 더 유익한 기도가 될 것이다.
묵주기도를 할 때에는 입으로 기도문만 외울 것이 아니라 그 신비를 깊이 묵상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신비의 뜻을 깊이 새기지도 않고 또 그 의미가 우리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숙고하지 않는다면 잘못된 기도이기 때문이다. 신비를 깊이 묵상하면 분심을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성 수련의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프랑스 작가 마레샬은
시골집 벽난로 옆에서 묵주기도를 드리는 어느 시골 부인을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묘사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성모송을 암송함으로써
평화를 느끼고 묵상에 잠겼으며 늘 묵주를 가까이했다.
그의 영혼은 언제나 하늘을 향하고 고요에 잠겨 하느님께 시선을 집중했다.
설사 이 겸손한 영혼이, 되풀이하여 외우는 기도문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한들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그는 자신이 소리 내어 외우는 기도문에 마음을 모으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무의식적으로 더 높고 정화된 인격적 기도를 함으로써
평범하고 드러나지 않으며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참된 관상으로 자유롭게 나아간 것이다.”
-관상에 이르는 묵주기도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