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추기경님이 남긴 말 중에서...

by 참새즈갈 posted Feb 2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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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인간미
 
“내 삶을 돌아볼 때마다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더 가난하게 살지 못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한 부분이다. … 우리는 예수님의 삶에 감탄하는데, 분명한 것은 그 삶은 우리에게 감탄하라고 보여주신 게 아니라 그대로 따르라고 제시해준 것이라는 점이다” (저서「추기경 김수환 이야기」중에서)
 
인간 김수환은 참으로 가난하고 소박했다. 그러나 마음만은 늘 부자였다.
 
‘옹기장학회’에 얽힌 사연이 대표적이다. 김 추기경은 2002년 자신의 세례명을 딴 ‘스테파노 장학회’ 설립을 제안받자, 대신 자신의 아호를 따 ‘옹기’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그는 “옹기는 천주교 박해시대 때 신앙 선조들이 산 속에서 구워 내다팔면서 생계를 잇고 복음을 전파한 수단이자 좋은 것과 나쁜 것, 심지어 오물까지 담을 수 있는 것”이라며 그 깊은 뜻을 밝혔다.
 
김 추기경은 “은퇴 후 운전면허증을 따서 방방곡곡을 자유롭게 다니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하곤 했다. 그러나 고령인 자신이 운전을 하면 다른 이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며 결국 면허 취득을 포기했다. 그는 특히 30여년 동안 자신과 동행해 준 운전기사 김형태(요한)씨에 대해 “우리 요한이는 운전도 잘하고, 성실하며, 마음씨가 참 곱다”며 칭찬하기도 했다.
 
김 추기경은 평소 하루에 두 갑까지 즐기던 흡연자였다. 그러나 1984년 5월 교황 바오로 2세의 방한을 앞두고 금연에 들어갔다. 그러나 당시 교황청의 관계자가 담배를 권하자 “오늘같이 기쁜 날 안 피우면 언제 피우겠느냐”며 담배를 물기도 했다. 그러나 그해 9월 다시 담배를 끊었다.
 
1998년 김수환 추기경은 76세로 서울대교구장 직에서 물러났다. 그날 명동성당 여기저기에는 ‘영원한 젊은 오빠, 사랑해요’라는 팻말이 나타났다. 그는 “팻말이 보이는데 가슴이 울컥 하더군요. 하지만 30년 교구장직 점수는 이것저것 평균을 내면 60점 정도죠. 더 후하게 줄 자신이 없습니다”라며 허허 웃었다.
 
김 추기경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를 만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시간을 베풀었다.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도움을 거절하지 못했다. 경제적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이 다녀간 뒤로는 “내가 은행이라면 좋겠어….”라며 가슴아파하곤 했다.
 
2007년 ‘혜화동 할아버지’라는 사연으로 공개된 일화는 그의 인간애를 느끼게 해 준다. 김 추기경은 어느 날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배 속 아기와 자신의 생명 중 택일을 해야 한다는 한 유치원 교사의 편지를 받았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미사를 봉헌하면서 두 생명을 모두 구해 달라고 한참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기도 말미에 ‘하느님, 그 자매님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제 체면을 봐서라도 꼭 들어주십시오. 사람들은 추기경이 기도해 주면 뭔가 다를 거라고 믿습니다’라며 하느님께 ‘떼’를 썼습니다”
 
김 추기경의 겸손함은 교구장직에서 물러난 뒤 더욱 빛났다. 그는 공식석상에서 추기경을 상징하는 붉은 띠를 접어 갖고 다니며 “나는 지는 태양, 후임자는 떠오르는 태양”이란 농담과 함께 자신을 스스로 낮췄다.
 
* 출처 ; 가톨릭 신문 곽승한 기자 글 중에서...

신청곡)
1. 징검다리 - 님에게 (가요)
2. Avalon - Can't live a day (주 없이 살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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