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팍도사' 출연 안철수, 온화한 카리스마로 시청자 압도

by 까투리 posted Jun 1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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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빌게이츠'로 불리는 안철수 교수의 온화한 카리스마가 안방극장을 달궜다.

안철수는 17일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시종일관 겸손한 태도로 출연진과 시청자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의사, 의대교수, 바이러스 백신 개발자, 기업가와 학생을 지나 지금은 카이스트에서 대학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안철수. 그는 방송 출연 계기에 대해 "학생들이 이 방송에 출연하라고 권유해 나오게 됐다"며 자신이 고민의 고민에 대해 '평생 직업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안철수는 학창시절 공부를 잘 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서울대 의대를 가게된 사연과 최연소 의대 교수가 된 사연을 전하면서도 시종일관 겸손한 태도를 유지했다.


서울대에 간 비결에 대한 질문에 안철수는 "어린시절부터 활자 중독같은 '병'이 있었던 것 같다. 교과서를 제외한 과학책이나 소설책 등을 많이 읽었다"며 "초등학교때 학교에 작은 도서관이 있었는데 그곳에 있는 책을 하루에 한권씩 모두 읽자 도서관 직원이 나를 의심하더라"며 "학창시절 공부는 잘 하지 못했지만 고 3때 머리가 늦게 깨어 운이 좋게 서울대에 갔다"고 설명했다.


또 "최연소 의대 교수가 된 것은 그 당시 의대 교수 수가 많지 않다 보니 순서대로 교수가 됐다.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밝혔다.


한국 최초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한 사연에 대해서 "의대 공부에 필요해서 기계어를 배웠는데, 어느날 갑자기 바이러스를 발견하게 됐다"며 "의대 교수로 활동하면서 백신프로그램을 개발해야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시간을 정해놓고 새벽3시에서 6시까지는 백신을 위해 사용하고 나머지 시간은 병원을 위해 사용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렇게 10년쯤 지내던 중 한계가 오더라. 의사와 백신 연구가 중 한가지 길을 선택해야했다. 무척 많이 고민했지만, 내가 잘할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정하려고 교수직을 포기하고 백신연구에 몰두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계속 교수일을 하면서 백신 연구를 한다면 자기 인생을 걸고 의대에 진학한 학생들이 불쌍하지 않겠느냐"며 안철수 연구소의 설립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비영리 목적으로 백신 개발을 하는 안철수 연구소는 2년동안 적자에 허덕여야 했다.


당시를 회상하던 안철수는 "당시 소원은 2~3달치 급여를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던 차에 안철수는 미국의 실리콘 벨리에 위치한 유명 보안회사로부터 1천만달러의 매각제안을 받게 된다.


보안회사의 회장은 안철수 앞에서 직접 프리젠테이션을 하는가 하면 회사를 매각하면 얻게되는 모든 이점을 앞세우며 안철수를 설득했다. 하지만 안철수는 회사 매각을 단칼에 거절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1천만달러에 회사를 매각하는 것을 거절한 이유를 묻자 안철수는 "그 사람들의 목적은 한국진출이였다. 한국이 진출하려고 보니 안철수연구소가 많이 걸렸나보다"며 "하지만 그 회사에 회사를 팔 경우, 결론은 불보듯 뻔했다. 그 회사는 V3(안철수 연구소의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을 폐기하고 한국시장을 장악하려했다. 지금 생각해도 안철수 연구소를 팔지 않은 것은 잘 한 일"이라며 백신 연구에 대한 남다른 소신을 전했다.


이후 안철수는 1999년 체르노빌 바이러스로 인해 제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당시 바이러스로 인해 국내 PC 30만대가 먹통이 되고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며 그의 사업은 번창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안철수는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시작하고 현재는 카이스트에서 교수로 활동 중이다.


지난 삶에 대해 전하던 안철수는 "나는 돈보다 명예가 좋고 명예보다 마음 편한게 좋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사람이다"며 "그때 의사를 그만두지 않았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지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난 내 결정에 대해 후회하는 성격이 아니다. 내가 의사를 포기하고 백신 연구를 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나는 더 다양한 경험을 했다"며 "효율성 생각하면 내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가장 맞는 것을 찾는 것은 중요하며 가장 큰 선물이다"고 전했다.


시종일관 겸손한 태도에 대해 출연진의 칭찬에 그는 "내게 '청교도'적인 삶을 산다던 사람도 있었고, '어떻게 그렇게 참고 사느냐'고 말했던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참고 살지도 않았고 청교도 적인 삶을 살지도 않는다.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사는 것일 뿐이다"며 "화를 내지 않는 성격이지만 가끔 스스로에 대해 화가 날때가 있다. 그럴땐 샤워하다 소리를 지른다"며 이례적인 스트레스 해소법을 전했다.

이날 방송 이후 시청자 게시판에는 안철수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 시청자들은 "어려운 컴퓨터 용어들도 쉽게 설명하고, 자신의 위치와 능력과 상관없이 늘 겸손하고 순진한 모습에 감동적이었다" "예능프로그램을 보면서 감동받아 울기는 처음이다. 멋진 강연회에 다녀온 것 같다" "이시대 기업인들의 진정한 롤 모델, 진심으로 존경한다" "도전하지 않는 내 삶이 부끄럽다" 등의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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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뒤엔 '위대한 아버지'가 있었다

지난 17일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에 대한 시청자들의 찬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안 교수의 아버지 안영모씨(81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안영모씨는 부산광역시 범천동의 '범천의원'에서 46년째 진료를 해 오고 있다. 안 원장은 일제시대에 6년제 부산 공립 공업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를 나와 7년간 군의관 복무를 마친 뒤 개원의의 길을 걸었다.

안원장은 지난 1963년 갓 돌이 지난 아들 안 교수를 안고 당시 부산의 판자촌인 범천동으로 갔다. 영양실조와 각종 고질병이 난무하던 가난한 동네에 병원을 차린 안 원장은 진료비를 시내 병원의 절반 수준으로 받으며 형편이 어려운 이들을 치료했다.

안 교수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안 원장은 병원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신문배달 소년을 병원으로 데려가 치료해주고 "어린 학생이 무슨 돈이 있겠느냐"며 그냥 보내준 일화가 있었다.

이 일화는 지역 신문에 실렸고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당시 가장 크게 감명을 받은 사람이 아들인 안 교수였다.

안 교수는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아버지와 대화를 하거나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적은 없지만 아버지의 생활을 보면서 자연스레 터득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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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송 보는 내내 감동의 도가니였습니다.

제목 정말 잘 지었네요 ... 온화한 카리스마.....

그리고 아들에게 존댓말을 하시는 어머니..... 다같이 도서관에 모여 공부하는 가족......

군대가기전날까지도 바이러스 관련 작업을 하고 다음날 군대가는데 생각해보니 가족에게 군대 간다는 말을 안하고 나왔다 며 우스개 이야기

회사 직원들에게 반말하지 않는다며... 사장과 직원은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맡고 있는 일이 다른 수평적이다 라고 말씀하시고...

아무튼 보는내내 참 멋진분의 행복한 이야기를 듣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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