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눈을 열어보세요. 겉으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세상이 보이게 됩니다.”
서울가톨릭시각장애인선교회 초청으로 7월 5일부터 일주일 일정으로 방한한 미국의 시각장애인 로렌스 길릭(Lawrence Gillick· 미국예수회) 신부는 시각장애가 하느님과 더 가깝게 지낼 수 있게 해준 계기가 됐다고 소회했다.
“8살에 말에서 떨어져 다친 후로 앞을 볼 수 없게 됐습니다. 내 자신이 비참하고 한없이 작아지더군요. 어떻게 살아갈지…, 두려움이 컸습니다.”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렸던 길릭 신부가 받아들이기 힘든 십자가였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 좋아하던 아름다운 풍경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스스로 작아져만 갔어요. 자신이 없으니 불만만 쌓이고 그 원망은 자연스럽게 하느님께 향했죠.”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스스로 행동하지 않으면 달라지는 것도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느님께서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었다. “눈이 멀게 된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결국 시각장애도 당신께서 주시는 큰 선물임을 깨닫도록 이끌어 주시더군요.”
길릭 신부는 시각장애인 사제로 살며 더 큰 은총을 받았다고 전했다. “고해성사, 세례성사 등 성사를 주는 것은 물론 학생들을 가르치고 영적 상담을 해주며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사랑의 하느님을 더 분명하게 느끼게 됐어요.”
길릭 신부는 한국의 시각장애인 신자들에게 요한복음 9장(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고쳐주시다)과 시각장애인 신자로서의 정체성과 소명의식에 대한 묵상을 권했다.
“눈이 멀었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붙여준 형용사에 불과합니다. 아버지 하느님과의 관계에 무슨 장애가 될까요.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하느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예요. 자신의 선택에 따라 시각장애는 길이 되기도 벽이 되기도 합니다. 용기를 가지고 하느님께 한 발 내디뎌 보세요. 소경이 예수님을 믿고 따랐듯이….” 길릭 신부는 오직 ‘나와 하느님’과의 사랑 안에서 올바른 관계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길릭 신부는 또 성소를 가진 시각장애인이 한국에서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함께 전했다. “미국에는 5명 정도의 시각장애인 사제가 있습니다. 그들이 사제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시각장애인 사제의 탄생은 무엇보다 시각장애인 신자들에게 많은 힘이 될 것 같아요. 성소를 가진 시각장애인이 있다면 한국 교회에서 보다 섬세하고 적극적인 후원이 필요합니다.”
권선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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