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저는 아직 국민들을 위해 못 다한 일이 많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저를 살려주십시오.”
1973년 8월 9일, 대한해협 망망대해 위, 손과 발에 추를 매단 한 사내가 커다란 화물선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결박당한 채 수장의 위기에 놓였다. 죽음이 눈앞에 닥쳤지만 그는 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늘을 향해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죽음이 아닌 삶을 향한 기도였다. 그 순간, 주님을 보았다. 기도가 하늘에 닿았다는 표징이었다. 53시간 죽음의 항해가 끝났다. 8월 13일 밤 10시, 피랍 129시간 만에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김대중(토마스 모어, 서울 서교동본당) 전 대통령. 그는 가톨릭 신자였다.
하느님은 그를 죽음의 문턱에서 다섯 번이나 구하셨다. 그는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 새 생명을 살았다. 그것은 부활이었다. 그래서 그는 늘 감사기도를 잊지 않았다. 매년 8월 13일이 되면 어김없이 생환을 감사하는 미사에 참례했다.
1998년 생환 25주년 감사미사에서 그는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특히 이날을 기념하는 것은 바다에서 죽기 전 주님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말과 행동이 늘 그리스도 안에서 머물렀다. 1924년 전남 하의도에서 태어나 1957년 장면 박사의 권유에 의해 토마스 모어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노기남 대주교 주례), 2009년 8월 18일 오후 1시 43분 향년 8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는 하느님의 충실한 종이자, 선교사였다.
아셈 회의(아시아유럽정상회의) 때에도 카메라 앞에서 크게 성호를 그으며 식사 전 기도를 바쳐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한 일화는 유명하다.
교회는 평화, 사랑, 감사, 화해의 꽃을 피운 한 신앙인을 떠나보냈다.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은 8월 19일 빈소를 찾아 영정 앞에 고개를 숙였으며, 22일 장례미사로 그를 추모했다. 광주대교구장 최창무 대주교는 23일 고별예식으로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많은 신앙인들이 기도로 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신앙인 김대중’, 평화·사랑의 씨앗 남기고 주님 품으로
"바다에 던져져 죽기 전 저는 주님을 보았습니다"
발행일 : 2009-08-30
-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8월 19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임양미 기자
( sophia@catimes.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