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머니에는 백 원이 들어있었다.
'이 돈이 그때도 있었더라면 그들을 그렇게 보내지 않았을텐데...'
시장에 나올 때마다 굶어죽은 아내와 딸 생각이 더욱더 간절해졌다.
시장 한 복판, 사람들이 빼곡히 둘러서서 무언가를 구경하고 있었다.
인파를 뚫고 들어가보니 6살쯤 보이는 처녀애가 앉아 있고 초췌한 여인이 옆에 서있었다.
그녀의 목에 걸려있는 종이를 보고 나는 굳어지고 말았다.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
"저 년 완전히 미쳤구먼 아무리 먹고살기 힘들어도 자식을 어떻게 팔어?"
"야 쌍년아 아이를 팔겠으면 제대로 팔아라. 백원이 뭐냐 개도 삼천원인데 딸이 개 값도 안되냐!"
"백원으로 부자 되겠냐 미친년아!"
여인은 벙어리인지 아무 말이 없었다.
아이가 갑자기 머리를 들며 또릿또릿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우리 엄마 욕하지 마세요. 울 엄마 지금 암에 걸려서 죽으려고 해요."
비명처럼 들리는 아이의 그소리는 사람들의 심장을 찌르는 창 같았다.
"엄마도 살고, 애도 살면 얼마나 좋을까"
"친척 중에 기를 사람이 없나?"
"에구 저거 불쌍해서 어쩌노"
비난의 목소리들은 동정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다같이 먹고살기 힘든 처지에 선뜻 나서서 데려가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비켜! 비켜!"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꼐 안전원이 나타났다.
"이 년이 미쳤어! 여기가 사람을 노예처럼 사고파는 썩어빠진 자본주의인줄 알어!"
그는 목에 걸린 종이장을 잡아채어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안전원에게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다.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진 안전원은 여인에게 화풀이를 했다.
"인간중심의 사회주의에서 이런 짓은 체제모독이다. 네 새끼랑 같이 정치범 수용소에 가봐라!"
엄마가 끌려 가자 아이가 울음반 애걸반 사정하기 시작했다.
"아저씨. 우리 엄마 아파서 그래요. 제발 놔주세요. 엄마 가자. 엄마 죽을때 나도 같이 죽으면 되잖아."
순간. 나는 아내와 딸의 죽음을 보는 착각과 함께 온 몸이 뜨겁게 달아 올랐다.
"이보시오. 내가 아이를 데리고 가겠소. 나에게 돈 백원이 있소"
"뭐야?" 하면서 돌아보던 안전원은 내 군복을 보고 굳어졌다.
나는 아이엄마에게 백원을 쥐어주면서 말했다.
"이 돈으로 당신 딸을 사는 것이 아니라 당신 모성애를 사는 것이니 그리 아시오."
돈을 받고 망설이던 여인은 갑자기 인파를 헤치고 사라져버렸다.
내가 마음을 바꿀까봐 아이를 버리고 도망가는 것일까.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한 나는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아이도 놀란 표정이었다.
성급한 결정을 한것같아 순간 긴장이 되었다.
잠시 후 여인이 펑펑 울면서 돌아왔다.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마지막으로 딸에게 줄 백원짜리 밀가루 빵 한봉지였다.
2006년 7월 김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