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聖都) 예루살렘 가톨릭 ‘주님의 기도 성당’(Pater noster)에 가톨릭 주님의 기도문(한글)이 다시 걸렸다. 지난 해 말 종전의 가톨릭 주님의 기도문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개신교 기도문이 설치된지 1년 만이다.
본지는 카르멜 수녀회가 운영하는 가톨릭 주님의 기도 성당에 개신교 주님의 기도문이 있다는 소식을 접한 후 9월 15일 현지를 직접 방문 취재, 성당 관리인으로부터 우리말 가톨릭 주님의 기도문을 곧 설치할 계획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이어 본지는 사흘 후인 9월 18일, 기도문이 다시 설치된 사실을 이스라엘 한인공동체 김형(엘리사벳) 씨로부터 공식 확인했다.
새 우리말 가톨릭 기도문은 각 나
라 주님의 기도문이 전시된 빠떼르의 회랑(Chiostro del Pater)으로 가는 첫머리에 설치됐다. 성당 사무실 옆 벽에 붙어있어, 순례객들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위치다. 타일에 궁서체로 새긴 새 기도문은 프랑스어 표기로 ‘COREEN(한국어)’이라는 명패가 붙어 있으며, 아래에는 과거 기도문을 봉헌했던 ‘부산교구’를 명기했다. 문구는 개정(1997년) 이전 기도문이다.
우리말 가톨릭 기도문을 주님의 기도 성당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은 부산교구와 현지에서 사목중인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김상원 신부를 비롯한 현지 이스라엘 한인공동체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 지난해 12월 개신교 기도문으로 교체된 사실을 접한 김상원 신부는 지난 1월 부산교구에 이 사실을 알렸다. 부산교구는 김 신부에게 이 문제를 위임하고 곧바로 원상 복구를 바라는 공문을 예루살렘 총대주교와 카르멜회 총장, 주님의 기도 성당을 관할하는 이스라엘 주재 프랑스 대사관과 해당 카르멜 수녀원 등에 보냈다. 이에 예루살렘 총대주교는 2월 9일자로 원래대로 복구할 것이라는 답변을 보내왔고, 이번에 우리말 가톨릭 기도문을 다시 되찾을 수 있게 됐다.
개신교 기도문이 설치되기 전에는 1960년대 말 당시 부산교구장이던 고(故) 최재선 주교가 봉헌한 기도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철거된 후 개신교 기도문이 설치됐으며, 이러한 안타까운 소식은 그동안 이곳을 순례한 신자들의 입을 통해 조금씩 알려져 왔다. 최근에는 김상원 신부가 자신의 블로그(http://blog.dau m.net/terrasanta)에 ‘주님의 기도 성당 가톨릭 기도문이 개신교 기도문으로 뒤바뀐 것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글을 써 관련 내용을 알리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말 가톨릭 주님의 기도문이 다시 설치됐지만 일련의 과정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기도문을 수정해야 한다는 개신교 목사의 이야기만 좇아 40여 년 넘게 자리하며 순례자들을 맞이해온 가톨릭 기도문을 임의로 철거한 점, 원상 복구 요청과 달리 개신교 기도문은 그대로 놔둔 채 다른 장소에 가톨릭 기도문을 설치한 점 등이 그렇다. 아울러 철거한 최재선 주교 봉헌 기도문 원본은 훼손했는지 혹은 성당을 관리하는 카르멜 수녀회에서 보관하고 있는지도 현재로선 알 수 없는 상태다. 새로 설치된 기도문은 이전 기도문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글자체나 띄어쓰기 등이 달라 이번에 새로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한인공동체의 김형씨는 “새 기도문은 글자 하나도 바꾸지 않고 복원 됐지만 개신교 기도문은 그대로 놔둔 채 가톨릭 기도문은 장소만 다른 곳으로 이전됐다”며 “이제는 (기도문이 없어졌다가 다시 설치된 데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주님의 기도 성당은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문을 가르치셨던(마태 6,9-13 루카 11,2-4) 자리에 세워진 유서 깊은 성지다.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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