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하얼빈 의거 100주년] 거사일 아침 기도… 이토 격살후 “코레아 우레”

by 두레&요안나 posted Oct 26, 200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 - Up Down Comment Print
하얼빈 의거 100주년] 거사일 아침 기도… 이토 격살후 “코레아 우레”


안 의사의 숨가빴던 열하루 행적

조선병탄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30분 중국 하얼빈(哈爾濱) 역두에서 브라우닝 권총으로 처단한 조선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15분 여순감옥에서 32세의 나이로 장렬히 순국했다. 안 의사가 이토를 심판한지 꼭 100년. 아직도 많은 이들이 안 의사를 ‘이토를 죽인 독립운동가’로만 기억할 뿐 일본의 대 정객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하기 위해 보냈던 숨 가쁜 하얼빈 행적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그의 의거 100년을 맞아 이토를 격살하기 위해 안 의사가 보냈던 하얼빈에서의 열하루를 재구성 해본다.

◇10월22일=안 의사는 오전 8시50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역에서 우편열차를 타고 이토를 죽이기 위해 778km를 달려 이날 저녁 9시15분에 하얼빈역에 도착했다. 31살 대한의군 참모중장 겸 특파독립대장을 지낸 그는 의병 300명을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 경흥에서 일본 경찰서를 습격하기도 했다. 안 의사는 이토가 러시아 재무대신 코코프체프와 하얼빈에서 만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를 처단하기위해 하얼빈으로 온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동지 우덕순, 유동하와 합류해 거사를 모의했다.

◇10월23일=안 의사는 우덕순, 유동하와 이발소에 들러 머리를 깎고 사진관에서 ‘최후의 사진’을 찍었다. 하얼빈공원(현 자오린공원)에 들러 이토의 하얼빈 방문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수집하고 동지들과 거사에 대한 모의를 했다. 그는 이날 밤 김성백씨 집에서 유숙하며 비장한 마음으로 ‘장부가’를 읊었고 우덕순도 ‘의거가’로 화답했다.

◇10월24일=안 의사는 우덕순과 다시 하얼빈공원을 거닐며 거사계획을 세밀히 검토했다. 이토는 관성자 역에서 기차를 타고 하얼빈역으로 온다. 관성자역은 일본 관할이고 하얼빈은 러시아 관할이므로 관성자역의 경계가 덜할 것으로 보고 그곳에서 거사하기로 한다. 그러나 안 의사 수중에는 30원밖에 없었고 그 돈으로는 관성자역까지 갈 수 없었다. 유동하는 하얼빈역에 남고 안 의사는 우덕순, 조도선과 함께 200여리 떨어진 채가구역으로 가서 그 곳에서 거사할 것을 계획한다. 그러나 안 의사는 이토의 채가구역 도착시간이 오전 6시 임을 알고 거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 다시 하얼빈으로 돌아간다.

◇10월25일=안 의사는 우덕순과 조도선을 채가구역에 남겨두고 낮 12시 북행열차를 타고 다시 하얼빈으로 돌아왔다. 채가구역에 남아있던 우덕순 일행은 이들의 행동을 수상히 여긴 러시아 병사들에 의해 감금을 당해 이토가 이곳을 지날 때는 아무 것도 못할 상황에 놓였다. 한편 이토는 다가오는 자신의 죽음을 모른 채 10월14일 일본을 떠나 18일 중국 대련에 도착했다.

◇10월26일=안 의사는 조용히 아침 기도를 마친 뒤 검정색 모직 신사복에 반코트를 걸치고 머리에는 납작한 모자를 썼다. 거사에 쓸 브라우닝 8연발 권총을 닦고 점검했다. 그는 아침 7시 유동하와 함께 포장마차를 타고 하얼빈역으로 왔다. 안 의사는 나이가 어린 유동하를 설득해 돌려보내고 혼자 일본인 환영객에 끼여 대합실로 들어갔다. 그는 대합실에서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아침 9시 이토가 탄 초록색 특별귀빈열차가 플랫폼에 들어섰다. 군악대의 장중한 연주 속에 러시아 병사들이 ‘받들어 총’을 했다. 러시아 재무대신 코코프체프가 열차내로 들어가 20여분간 인사를 한 뒤 이토와 함께 내렸다. 그 때 일등 대합실에 앉아있던 안 의사는 뚜벅뚜벅 플랫폼으로 걸어나가 러시아 군대 뒤쪽에 바짝 붙어 섰다. 아무도 그가 접근하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이토가 안 의사 앞을 지나 5m쯤 다다랐을 때 받들어총 하는 러시아 병사들 사이에서 이토를 향해 7발의 사격을 가했다. 3발이 이토에게 명중을 했고 그는 무너져 내렸다. 안 의사는 만일 다른 이를 쏘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 뒤를 걷고 있던 일본인들을 향해 다시 4발을 쏘았다. 이후 그는 모든 사람이 다 알아들을 만큼 큰 소리로 “코레아 우레!”를 세 차례나 외쳤다. 안 의사는 달려드는 러시아 헌병에게 체포됐다. 이토는 내장 출혈로 20여 분만에 특별열차 안에서 사망했다.

◇10월27일=러시아 당국은 안 의사를 예비 재판을 한 뒤 일본의 요구에 따라 그를 하얼빈 주재 일본 총영사관으로 이첩했고 일제는 안 의사를 영사관 지하감옥에 수감했다. 러시아는 안 의사 의거 후 하얼빈 지역 내 수상한 한국인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채가구에서 우덕순과 조도선이 오전 11시경에 체포됐고 하얼빈 시내에서는 유동하, 정대호, 정서우 등 13명이 긴급체포돼 일본 총영사관으로 압송됐다.

◇10월28∼31일=여순에 있던 일본 관동도독부 고등법원 검찰관 미조부치 타가오는 하얼빈에 도착, 안 의사 등 16명의 신병을 인도받아 조사에 착수했다. 안의사는 지하감옥에서 심문을 받으며 이토의 죄상 15가지를 거명했다.

◇11월1일=일본은 6박7일간 안 의사를 지하감옥에서 구금한 후 일본헌병 12명, 러시아 헌병 13명의 호위아래 오전 11시25분 여순감옥으로 압송했다. 그는 일제의 짜여진 각본에 따라 진행된 재판에서 사형언도를 받고 여순감옥 수감 144일만인 1910년 3월26일 교수형으로 짧은 삶을 마감했다.

하얼빈=이강렬 국장기자, 박강섭 기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Who's 두레&요안나

profile

찬미예수님 요안나입니다,
저는 광주 교구 송정2동 원동 본당에
다닌  신자인 요안나입니다,
여렸을때 신동에 다녔다가
현제는 원동에 다니고 있습니다,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