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이제민신부님 글에서)

by Fr순례자티노 posted Dec 0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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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기다리는 시기.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누구를 기다리는가?
구세주를 기다린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분을 통해서 무엇이 내게 또는 내가 사는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기를 바라는가?
그분이 오시어 세상이 구원되기를 바란다고?
나는 왜 아직 내가 구원되지 못했다고 보는가?
그런데 기다리는 구세주는 왜 아기로 와야 했는가?
그리고 왜 십자가에서 죽어야 했는가?
이미 구세주가 오셨는데 내가 아직 또 구세주를 기다려야 한다면,
기다리는 구세주가 아기로 오셨다는 것, 나중에 그 아기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아직 내가 깨닫지 못한 때문이다.
그분이 사람의 아들임을, 임마누엘임을 내 온 몸으로 받아들이지 못해서이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인간의 모습만 볼 뿐 하느님의 얼굴을 보지 못해서이다.
저 연약한 사람 아기에게서, 저 비참한 사람 사형수에게서 하느님의 얼굴을 볼 수 있을 때 나는 구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구세주 오시기를 기다린다면 저 연약한 아기에게서 무력한 하느님의 전능을,
저 비참한 사형수에게서 자신을 내놓는 하느님의 사랑을 볼 수 있는 날이 내게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저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병든 사람들에게서 하느님의 얼굴을 보고, 저 감옥에 갇힌 사람들에게서 무서운 범죄만이 아니라
그들 안에서도 하느님을 찾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는 날이 내게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성과 속,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의 도덕으로 인간을 내 식으로 판단하지 않고,
정의와 불의의 율법으로 인간을 내 기준으로 구분 짓지 않는 날이 내게 오기를,
부와 가난, 사랑과 미움의 잣대로 인간을 내 마음대로 재지 않는 날이 내게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구세주를 기다리며 우리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에게 무릎 꿇고 경배하고, 그렇게 만나는 모든 사람을 상하 귀천 가리지 않고
하느님 대하듯 하는 변화가 내게 일어나는 날이 내게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부를 팔아 가난한 이에게 주고, 잘남을 팔아 못난이를 안아 주고, 사랑을 팔아 미운 이에게 주고,
거룩함을 팔아 속된 것에 주는 그런 변화가 일어나는 날이 내게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좋은 일 하겠다, 사랑하겠다, 마음만 먹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있는 변화가 내게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아무 것을 아니해도 시간이 되면 내게 다가오는 구세주가 아니라 내게 변화가 일어나야 알아챌 수 있는
그런 구세주를 우리는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연약한 아기를 안을 수 있을 때, 비천한 주검을 십자가에서 끌어내려 품에 안을 때 내게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기다리던 바를 드디어 품에 안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되어 오신 예수는 이제 인류가 사람의 아들인 당신의 연약하고 비천한 모습을 끌어 안음으로써
인간 안에서 하느님을 보도록 하기 위해 오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예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니면 내가 기다리는 예수는 다른 예수? 
                     
                                                                                                                              - 이제민 신부

가별신부님이 알아서 선곡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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