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가타리나 수도원(St. Catherine's Monastery) 1

by Fr.엉OL가♥♪~™ posted Dec 0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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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가타리나 수도원(St. Catherine's Monastery)

 

시나이산 북쪽 이드로 골짜기, 시나이산 동쪽에 있는 에르라하 평원지역으로 해발 800m에 자리잡고 있는 이 수도원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시나이산을 순례하고서 불붙는 떨기나무 자리에 성모마리아에게 봉헌하는 기념경당을 하나 짓도록 하여 342년에 세워진 것이 그 모체가 되었다.

현재 수도원은 548∼565년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건설한 것이다.

 

시나이 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해발 2,642m의 산봉우리를 '가타리나 산'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1000년경 이곳에서 가타리나 성녀의 유해가 발견되면서부터였다.

콥트 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250년경에 태어난 가타리나는 알렉산드리아의 귀족 출신으로 본명은 도로테아였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면서 가타리나라는 세례명을 받았는데, 수도자 생활을 하다가 막시미아누스 황제(286∼305)의 박해 때 순교하였다고 한다.

 

4세기 초 이집트의 막시미누스 황제 당시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심하였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가타리나는 용모와 학식이 출중했다. 그녀는 예수님을 받아 들이면서 세례를 받고 황제의 우상 숭배를 비난했다. 황제는 여러 학자들을 보내 회유하려 했으나 그들마저 예수를 믿게 되었다. 결국 가타리나는 고문을 받고 되고 순교를 하게 된다. 그녀의 시신은 천사에 의해 시나이 반도 제일 높은 곳으로 옮겨진다.

307년 순교했으나 시신은 행방이 묘연했다. 그런데 3세기 후반 어느날 시나이산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수도자가 두 명의 천사들이 그녀의 시신을 가타리나산에 옮겨다 놓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그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그리하여 수도자들이 그 시신을 수도원의 성당 제대 옆으로 모셨고 이때부터 수도원의 명칭을 가타리나로 개명했다고 한다.

 

가타리나 도서관으로서는 로마 바티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되어 귀중한 성경사본과 희귀본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이 있다.

이곳은 또한 이콘이라고 불리우는 목판 성화의 보고이며 2000여 개가 넘는 이콘들이 보관 되어 있다.

 

4세기 경부터 많은 순례자들이 방문하게 되고 5세기 중엽에는 시나이 교구가 성립되었다. 비잔틴 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은 요새화된 장방형의 수도원을 건설 하였다. 이 수도원이 완성 된 것은 A.D. 557년 이다.

 

7세기 때 아랍인들이 점령을 해서 수도사들이 30명 까지 줄어들었다가 수도원장이 모하메드에게 수도원에 대한 보호를 요청하였고 모하메드는 그것을 받아 들였다.

 

11세기에 접어 들면서 십자군들이 등장함에 따라 수도원은 서방세계의 기독교와 아랍 지역의 모슬렘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유지해야만 했다.

1798년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점령 했을 때도 수도원은 보호 되었다.

 

성 가타리나 수도원 내에 있는 교회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인 주후 6세기 중엽에 건설 되었다.

이 교회로 들어가는 나무 장식문은 레바논 삼나무(향백나무)로 건립 당시 만든 문으로써 1400년 이상 된 문이다.

바실리카(대성당)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위쪽에 있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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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회 제단 뒤에는 불붙는 떨기나무의 기념 예배당이 있고 이곳은 지금도 반드시 신발을 벗고 들어간다.

교회 안에는 12 기둥이 있으며 이것은 12 달을 의미한다. 기둥 위에는 그 달의 성자 이콘이 있다. 변화산에서의 예수님 모습을 나타낸 교회 전단 중앙에 있는 모자이크는 왼쪽부터 엘리야, 요한, 예수님, 베드로, 야고보, 모세의 모습이 새겨져 있고, 이 둘레에는 12 제자, 12 예언자, 건축 당시의 수도원장 롱지너스, 집사 요한등 모두 26명의 모습이 둘러져 있다. 이 교회 근처의 떨기나무는 시나이 반도에서만 자라나는 특수한 종류로써 소중하게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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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은 해발 1,530m 지점에 있다.
수도원 안에 이드로의 우물이 있고, 모세가 부름을 받았다는 떨기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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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부름을 받았다는 떨기나무. 시나이 반도에서만 자란다는 희귀한 품종의 떨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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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기나무는 시나이 반도 남쪽에서만 자라는 특이한 종자로 다른 곳에 이식하면 죽는다고 한다. 떨기나무가 너무 붉어서 모세는 불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성 가타리나 수도원은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네가 서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신을 벗어라” 하고 말씀하신 곳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수도원은 그리스 정교회 소속이다.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에게 박해받던 무렵 순교한 어느 귀족의 딸 이름을 따서 성 가타리나라고 부른다.

 

6세기 중엽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 황제의 명에 의해 건립된 후 지금까지 1400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파괴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었다.
551년에 완공된 수도원에서는 수도사들이 어김없이 매일 하루에 두 번씩 예배를 드린다.
예배당 전면에는 예수, 모세, 엘리야, 그리고 예언자들의 모습이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수도원 내 도서관에는 귀중한 자료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는데 3,000점 이상의 고대 성경사본과 5,000권 이상의 희귀한 성경들이 있다.
바티칸의 교황청 도서관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성경사본과 희귀성경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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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엽 독일의 학자 티젠도르프가 수도원에서 ‘시나이 사본(Codex Sinaiticus)’을 발견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그는 수도원을 세 번 방문한 끝에 1859년 그것을 찾아냈다.

 

1844년에 티 센도르프는 가타리나 수도원의 도서관을 방문했다. 그런데 도서관 중앙 통로에서 곰팡이가 잔뜩 핀 양피지들이 가득 채워져 있는 바구니를 발견했다. 그 양피지들을 소각시켜 버리려고 일부러 내놓았다는 것을 알고서 소각시키지 말라고 설득시켰고, 그것들 가운에 양피지 43매를 얻을 수 있었다. 티센도르프는 이 양피지들이 성서의 말씀이 씌어진 단편들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 양피지는 오늘날 라이프찌히 법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 후 1853년에 티센도르프는 다시 가타리나 수도원을 방문했다. 성서의 내요이 담긴 양피지의 단편들을 더 찾아 얻어 내려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집념이 강한 티센도르프는 1859년에 또다시 가타리나 수도원의 도서관을 찾아갔는데 이 때 15년전에 방문했을 때 봤던 양피지와 똑같은 양피지 단편들을 발견했다. 이것이 바로 양피지 3백 46매 반으로 만들어진 시나이 사본이었다. 티센도르프는 이 양피지들을 복사할 수 있는 허락을 얻어내 러시아로 가지고 갈 수가 있었다. 이리하여 이 사본이 온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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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나이 사본’은 300년대 후반에 필사된 것으로 신약성경 전체가 수록된 사본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티젠도르프는 사본을 유럽으로 가지고 가서 당시 동방 정교회의 보호자였던 제정 러시아 황제에게 기증하였다., 1933년까지는 레닌그라드에 있는 페터스부르그 황제 도서관에 소장되었다가 런던에 있는 대영 박물관 측에서 10만 파운드를 소비에트 정부에 지불하고서 소장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러시아가 공산주의 국가가 되면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자 1933년에 그것을 10만 파운드에 영국 정부에 팔았으므로 사본은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75년 9월 놀라운 일이 수도원에서 벌어졌다.
낡은 방을 보수하려고 벽을 헐자 벽과 벽 사이 공간에서 수많은 성경사본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무려 50 상자분의 성경사본이었다.
수도원은 그 사실을 극비에 부치고 사본을 보관했지만 독일의 어느 신문이 1977년에 그 사실을 보도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수도원 측은 아직도 사본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알려진 학자들에 한해 30분이라는 시간제약 하에 필사나 사진촬영을 금한 채 관람을 허락하고 있다.
독일의 신약성서 학자 마르틴 헹겔은 그것들이 “사해사본 발견 이후 최대의 사본 발견”이라고 했는데 내용의 전모는 아직도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모세가 하느님의 음성을 들은 곳이 어디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다만 수도원을 세워 상징적으로 기념하고 있을 뿐이다.

 

 

탈출 3,1-15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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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리나 들어가는 문과 수도원 벽 튀어나온 나무 상자. 처음에는 저기 뚫린 문은 없었다. 성벽 중간에 있는 나무 상자의 용도는 사람과 음식물 반입하던 곳. 출입문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위에서 줄에 용기를 매달아 내리면 밑에서 음식물을 용기에 넣고, 위에서 줄을 당겨 받아 올리던 곳. 외적의 침입에 대비한 방법이다. 사람 역시 신원을 확인한 다음 밧줄을 당겨 수도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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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순례자들이 드나드는 문. 그 문이 워낙 커서 머리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다. 넓이도 얼마나 넓은지 저쪽 편에서 사람이 들어서면 이쪽에서는 그 사람이 도착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두 사람이 교행할 수 없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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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남쪽 성벽과 출입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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