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하며- 서울교구 허영엽 신부

by 가별 posted May 2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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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죽음이 부디 증오와 분열의 악순환 끊는 계기 되길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의의 서거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엊그제 아침 갑자기 날아든 비보에 대한민국은 온통 패닉 상태가 되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야말로 온종일 참담함과 비통함에 휩싸였다.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둔 곳은 어머니 품과 같은 고향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외에 정말 다른 길은 없었는가 하는 안타까움을 떨쳐버리기 힘든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물론 벼랑에 몰려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다른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없다. 하느님만이 그의 마음을 온전하게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그러나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한 인간의 죽음에 대해 그 누구도 쉽게 단언할 수 없다. 굳이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죽음은 이미 살아있는 자들의 영역을 넘어선 상태가 되었음을 안다. 우리는 대통령이 취임하면 어떠어떠한 사람이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그런 완벽한 대통령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통령도 부족함을 지닌 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의 공과를 떠나서 연민을 가지고 그의 죽음을 애도할 때이다.

인간적으로 볼 때 죽음은 그 이유를 불문하고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가장 고통스러운 사건이다. 특히 유가족들이 겪는 고통은 어떠한 인간적인 언어로도 달랠 수 없다. 그저 유족들과 슬픔을 함께하고 고인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살아있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죽음은 모든 것을 무화시켜 버린다. 참으로 비정하고 냉정한 죽음의 현실이다. 이러한 허무한 죽음 앞에 서면 과연 사는 게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애를 쓰고 살아야 하는지 허탈해진다. 언젠가는 우리도 이 세상을 떠나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인생은 참으로 덧없고 허망하다. 어쩌면 산다는 것 자체가 죽음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약성경에 “어제는 그의 차례요, 오늘은 네 차례다”(집회서 38장 22절)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 말씀만 기억하고 살아도 우리의 삶은 크게 바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다. 죽음을 넘어서 그 무언가를 희망하는 것이 인간이 가진 본성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유서에서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는 희망을 전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죽음에서 걱정스러운 것이 있다. 백번을 양보해도 생명은 스스로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의 죽음은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대통령의 죽음이기에 그 걱정이 배가된다. 어떤 경우에도 자살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의 죽음을 모방해 또 다른 이들이 죽음을 선택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의 죽음을 통해 국론이 분열되거나 사회적 갈등이 커진다면 그것은 분명 고인의 뜻이 아닐 것이다. 또한 누군가 이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기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죽음을 모독하는 것이 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국민이 분명하게 바라는 것은 대한민국에 더 이상 불행한 대통령이 없었으면 하는 것이다. 비통하고 비극적인 이 죽음이 부디 증오와 분열의 악순환을 끊고 사회갈등을 치유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죽음의 의미를 찾고 남겨진 숙제를 해결하는 것은 살아있는 자 모두의 몫이다. 모두 깊이 생각해 볼 때다. 고인의 영혼을 하느님께서 받아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허영엽 신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중앙일보] 2009년05월25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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