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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CUM] 방학, 또 다른 나를 찾는 시간

홍성훈 군, 한지이 양
발행일 : 2009-07-19

- 홍성훈 군이 가평 꽃동네를 방문해 몸이 불편한 원생의 양치질을 도와주고 있다.
- 한지이 양이 열차를 타고 '박경리 토지문학공원'으로 향하고 있다.
‘놓을 방(放)’과 ‘배울 학(學)’자를 쓰는 ‘방학’은 후두두둑 쏟아지는 여름비를 타고 달려왔다. ‘배움을 놓는다’는 방학에 더욱더 열심히 학교에서 보충수업을 하고, ‘집중’‘핵심’‘완결’ 등을 앞머리에 붙인 학원 강의를 찾는 우리들.

방학이 거는 마수를 벗어던지고 나와 너, 우리를 위한 방학을 보내기 위해 가톨릭신문 꿈(CUM)의 ‘꿈꾸는 아이 1호, 2호’가 모였다. 여름보다도 싱그러운 학창시절, 나와 너를 위해 보내는 이번 방학은 우리 생각의 키를 한 뼘 더 자라게 한다.

◆ [너를 위한 방학] 가평꽃동네와 함께한 꿈꾸는 아이 1호 홍성훈 군

08:30 집을 나서다

‘너를 위한 방학’을 보내기 위해 선택한 곳은 가평꽃동네. 수원이 집인 나는 일찌감치 일어나 집을 나섰다. 평소라면 늦잠을 청했을 토요일인터라 오랜만에 맡는 토요일 아침 공기가 꽤나 상쾌하다.

나는 사회복지시설 봉사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공공기관 등을 청소해본 적은 있으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봉사는 막연하기만 했다. 오늘 그 기회가 온 것이다. 예상치 못하던 봉사라 ‘가서 뭐하지? 힘든 것은 안 시키겠지? 안 가면 안 될까?’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11:00 가평꽃동네 도착

가평 꽃동네에 도착했다. 가평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는 ‘첩첩산중’이라는 표현이 꼭 맞다. 남자 봉사자 담당 김진응 신부님이 나를 맞아주신다.

지난번 가톨릭신문 꿈(CUM)에 실린 인터뷰 내용처럼 나는 ‘사제’라는 꿈을 갖고 있다. 신부님이 ‘왜 사제가 되고 싶은가’에 대해 물었다. 나는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고, 신부님은 ‘오늘 그 이유를 꼭 찾길 바란다’고 했다.

그래, 할머니 손을 잡고 어렸을 때부터 새벽미사에 다녔던 이유 말고도 내 꿈의 진짜 이유를 이곳에서 찾아보자.

12:00 점심

자원봉사자들은 원래 도시락을 싸오는 것이 원칙이지만, 나는 그곳에서 점심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는 꽃동네의 문구가 뇌리를 스친다. 꽃동네 안에 있는 노체리 안드리 자애병원의 관계자들과 점심을 함께 한다. 밥을 먹고 힘을 얻었으니 이제 봉사를 시작해볼까.

12:40 안마 시작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신부님께 꽃동네의 ‘사랑합니다’라는 인사를 배운다. 쑥스럽다. 17살 나이를 먹고 정수리에 손을 얹어 사람들을 볼 때마다 하트를 그리자니 부끄럽다. 그런데 나보다 나이 드신 신부님은 ‘사랑합니다’를 연발하신다.

척추를 다쳐 온몸이 마비된 가족들의 안마를 시작했다. 온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는데도 안마를 해드릴 때마다 그분들의 눈동자가 연신 내 얼굴을 따라 움직인다. 눈을 마주치면 피하시기도 한다. 그분들의 눈에서 감사와 미안함을 본다. 근육이 아닌, 살과 뼈가 만져진다. 내 얼굴에 땀이 자꾸 흐른다.

한 아저씨가 물을 달라고 했다. 물을 드리는 것, 쉽지가 않다. 다급하게 닦아드리지만 물이 뚝뚝 흘렀다. 죄송합니다, 아저씨. 아저씨가 ‘빨대’라고 말했다. 아, 빨대. 아저씨가 요령 하나를 깨우쳐줬다.

13:30 청소 시작

대청소가 시작됐다. 병실 바닥 청소다. 중학교 때 해봤던 ‘비눗물 청소’에는 상당한 자신이 있다. 그러나 오늘은 좀 다르다. 내가 쓸 교실이 아닌, 아픈 가족들을 위한 청소다. 봉사를 나온 군인들과 함께 바닥을 청소했다.

처음 꽃동네 건물에 들어섰을 때 나는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그러나 아픔에 절규하는 이 많은 사람들을 보며 나는 ‘주 안에 우린 하나’라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아픈 사람이든, 아프지 않은 사람이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너, 나, 우리는 주 안에서는 하나다. 모두 존귀한 하나의 사람들이다.

15:00 미사

미사를 알리는 안내방송이 들려온다. 신자가 아닌 학생들에게는 쉬는 시간이지만, ‘사제’가 꿈인 나에게 미사는 놓칠 수 없는 시간이다. 안내방송을 따라 한걸음에 성당으로 달려왔다.

휠체어를 타신 할아버지 한 분이 눈인사를 한다. 선창하시는 수녀님의 목소리만 들릴 뿐 적막이 가득한 성당. 꽃동네 가족들의 쾌유를 바라는 기도를 해봤다.

신부님이 갑자기 강론 중 나에게 물으셨다. ‘세상에 있는 세 가지의 금’이 무엇이냐고. 이 정도 대답이야, 쉽다. 자신있게 ‘황금, 소금, 지금’이라고 대답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고 물으신다. “지금이요!”

그래, 지금이다. 꽃동네에서 이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지금’이고, 내가 오늘 하느님께 오롯이 봉헌하는 마음도 ‘지금’이다. 지금, 이곳에 내가 필요하고 우리가 필요하다.

16:00 식사보조

“반갑습니다!”

밝은 미소의 아저씨가 침상에서 나를 반긴다. 움직이지 못하고 인공호흡기를 단 채 말을 하시는 분이다. 아저씨의 환한 얼굴이 나의 긴장을 금세 풀어준다. 아저씨는 질문을 쏟아낸다. “십자가가 무슨 뜻인가요?” “선종이란 뜻은 무엇일까요?” “왜 ‘아멘’이라고 할까요?” “봉사를 뭐라 생각해요?”

마지막 질문이다. “성훈이는 왜 신부가 되고 싶어요?”

아, 내가 찾으려했던 대답이다. ‘다른 사람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요’라고 대답해버렸다. 오늘 아침, 신부님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했던 말이다. 아저씨가 ‘결혼해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결혼을 하면 가족들을 챙기느라 바쁠 것 아니에요?” 아저씨가 크게 웃었다. 참 좋은 분이다. 아저씨의 모습에서 내가 찾던 이 시대의 주님을 본다. 순식간이었던 것 같다.

식사보조를 시작한다. 처음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숟가락을 든다. 밥을 떠먹여 드리며 아저씨께 ‘지금을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아저씨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는 대신 유머나 좋은 말씀들을 해주신다. 그것이 아저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고 한다.

아저씨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고 나니 어느덧 해가 산 너머로 뉘엿뉘엿 저물었다.

18:00 떠나며

갈 길이 멀다. 집이 수원인 탓에 발걸음을 재촉한다. 나는 오늘 하루,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더 많다. 작은 사랑을 줬지만 열 개의 사랑을 받았고, 백 개의 믿음을 받았고, 천 개의 감사를 받았다.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만은 가볍다. 저녁도 먹지 못한 채 세 시간이 걸려서야 집에 돌아와 피곤한 몸을 누일 수 있었다. 오늘 있었던 일들이 하나둘 스쳐간다.

‘봉사는 누군가를 돕는 것이 아니라, 서로 나누는 것’이라고 했던 아저씨의 별빛 같은 눈이 떠오른다. 주 안에 우린 하나, 아저씨의 말은 오늘만이 아닌, 내 가슴 밑에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오혜민 기자 oh0311@catimes.kr

▲가평꽃동네 가는 길

①출발지: 서울 청량리(롯데백화점 앞, 1번홈)

경유지: 현리 1330-4번 좌석버스 이용, 현리터미널에서 하차, 꽃동네행 버스로(오전 7:40, 8:50, 오후 3:50) 입구까지 또는 상판리행 버스로 노체교 입구에서 내려 노체교를 건너 꽃동네 방향으로 도보 15분 소요.

②출발지: 서울 동서울터미널, 수원?인천터미널

경유지: 청평터미널에서 현리행 버스로 갈아타서 위와 같은 방법으로.

경유지: 일동터미널(포천, 일동방면의 버스로 일동에서 하차 후 택시를 이용)

③출발지: 춘천터미널

경유지: 현리터미널에서 하차 후 위와 같은 방법으로.

※문의 www.kkotgp.or.kr (봉사예약 사이트에서 가능)

031-589-0114

◆ [나를 위한 방학] ‘박경리 토지문학공원’ 찾은 꿈꾸는 아이 2호 한지이 양

07:35 청량리역

쉬고 싶다. 떠나고 싶다.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 ‘자유’, 한 가지만을 생각했다. ‘고3’이라는 이름도, ‘시인’이라는 타이틀도 잠시 내려놓고 나를 위한 온전한 자유와 쉼 속에, 온전한 ‘나’를 느끼고 싶다. 나의 학창시절, 마지막 여름방학, 평소 같으면 엄두도 나지 않았을 혼자만의 여행길에 올랐다.

호우 특보가 내린 비오는 일요일 아침 7시35분, 토지의 박경리 선생을 만나기 위해 원주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혼자 기차를 타보기는 처음이다. 게다가 장대비까지…. 그러나 약간의 두려움마저도 내겐 설렘이다.

09:14 원주역

기차는 두 시간을 달려 나를 원주역에 내려놓았다. 차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지던 푸른 풍경을 지나 생소한 소도시의 풍경과 맞닥뜨린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지? 막막함이 밀려왔다지만, ‘나는 이제 어른이다’ 생각하고 담담히 역을 빠져나왔다. 기차역 안내원이 일러준 대로 박경리 토지문학공원 행 5번 버스에 올랐다. 사람들이 모두 나만 쳐다보는 것 같다. 쏟아지는 장대비마저도 즐거운 두드림이다.

10:10 박경리 토지문학공원

20분을 달려 익숙한 얼굴, 그리운 얼굴, 박경리 선생의 사진 앞에 섰다. 박경리 선생은 소설가였지만, 시인이기도 했다. 나는 시인이었던 그 분을 사랑한다.

아버지가 소장하고 계신 박경리 선생의 첫 시집 ‘못 떠나는 배’를 들고 왔다. 외손주 원보가 그린 초록 새 그림의 표지에서 그 분의 따듯한 정이 느껴진다. 박경리 선생이 앉았던 자리에 앉아 그 분의 시를 읽어본다. 나도 이런 시인이 될 수 있을까. 한 마디 말도 버릴 것이 없다. 그분의 삶 자체가 진실한 시(時)와 같다.

선생이 손수 디자인한 장식장이며, 혼자 앉아 밥을 먹곤 했을 소박한 주방에도 가 보았다. 왼쪽으로는 치악산이 보이고 앞으로는 백운산이 보이는 집필실은 마치 자연 속에 놓인 평상처럼 편안했다. 쓰던 만년필과 낡은 안경테가 가슴에 사무친다. 저 펜과 저 안경으로 26년간 「토지」를 쓰셨겠지….

선생의 옛집 뒤로는 조그마한 홍이동산이 자리잡고 있다. 소설 속 용두레벌과 평사리를 재현해 놓은 곳도 있다. 선생이 손수 가꿨던 텃밭을 지났다. 외손주의 체험학습을 위해 손수 돌을 쌓아 만든 자그마한 우물에 떠 있는 부레옥잠에서 나는 그만 눈물이 핑 돌고야 말았다.

선생은 위대한 작가셨다. 우리나라 문학의 자존심이자, 혼이셨다. 그러나 그 분은 ‘영광이라고도 했고, 사명이라 했지만, 진정 내겐 그런 것 없었고, 스치고 부딪치고 아프기만 했지, 그래 글기둥 하나 붙잡고 여기까지 왔네’라고 시를 쓰셨다. 위대한 작가이기 전에 엄마?할머니였으며, 외롭고 아픈 인간이었다.

12:30 치악산의 숨결

선생에 대한 그리움에 고스란히 빠져, 선생이 바라보며 글을 썼을 치악산으로 향했다. 박경리 토지문학공원 앞 큰길에서 21번 버스를 타고 30여 분을 달려 도착한 치악산 자연휴양림. 꿩의 보은 전설의 덕을 간직한 치악산의 숨결에서 생명을 사랑했던 선생의 정신을 마음에 새겼다. 내렸던 곳에서 같은 버스를 타고 15분을 더 달렸다. 금대계곡과 치악터널을 지나, 이제 오늘의 마지막 코스, 용소막성당행이다.

14:30 용소막성당

용소막성당에 도착하자 커다란 느티나무가 반긴다. 고딕양식의 빨간 벽돌건물은 강원도 유형문화재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성전에 앉아 십자가를 마주했다. 박경리 선생을 떠올린다. 한 인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을 달래고 추스르며, 위대한 작가로서 걸어야 할 길을 다 걸었다. 그것은 십자가였다. 그러나 동시에 영광이고 은총이었다.

16:03 다시 집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 비 내리는 창밖을 보며 조용히 기도드렸다. 앞으로 어떤 인생이, 어떤 십자가가 내 앞에 놓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십자가를 조용히 지고 묵묵히 따르겠단 믿음을 드렸다. ‘내가 널 지켜주마.’ 차창 밖에서 후두둑 와 부딪히는 빗방울이, 하느님의 약속 같았다.

임양미 기자 sophia@catimes.kr

▲박경리 토지문학공원 가는 길

1. 원주까지

①철도: 원주-서울간 무궁화호 열차 일 16~17회 운행. ※1544-7788, 033-742-6072

②버스: 서울, 광주, 대전, 대구, 부산, 청주, 강릉, 속초 매일 10회 이상 운행. ※033-746-5223

2. 원주에서

①원주역→박경리토지문학공원 : 원주역 건너편 역전마트 앞에서 5번, 박경리 문학공원 앞 하차

②원주시외버스터미널→박경리토지문학공원: 시내방향 버스정류장에서 2번, 21번 버스. 단구사거리에서 하차.

③박경리토지문학공원→치악산자연휴양림 : 박경리 토지문학공원 근처 단구초등학교 맞은편 정류장에서 21번, 22번 버스. 치악산 자연휴양림 앞 하차

④치악산자연휴양림→용소막성당 : 같은 정류소 가던 방향으로 22번 버스. 용소막성당 앞에서 하차. 21번 버스의 경우 신림역에 내려 10분 정도 걸으면 된다.

※원주 시내버스 문의 033-734-9680, 033-762-4355, 원주 대중교통 안내정보시스템 http://traffic.wonjucity.net, 티머니 등 교통카드 사용 가능.


▲ 홍성훈 군
▲ 한지이 양
오혜민 기자 ( oh0311@catimes.kr )임양미 기자 ( sophia@catimes.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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