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12 22:10

[성화] 돌아온 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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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brandt van Rijn,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1662, Oil on canvas, 262 x 206 cm, The Hermitage, St. Petersburg 
렘브란트(1606-1669), '탕자의 귀가', 유화, 262×205㎝, 에르미타슈 박물관, 샹트 페테르부르크, 러시아

[작품설명]

렘브란트가 그린 '돌아온 탕자'는 최고의 교회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다. 바로크 시대에 활동했던 화가는 이 작품에서 특유의 명암법을 사용하여 하느님의 사랑과 인간 사이의 용서를 잘 표현하였다. 기다림에 지쳐 눈먼 아버지와 회개하고 돌아온 아들 위에 은총의 햇살이 내리비치고 있으며, 이 빛은 주위 사람들에게도 확산되고 있다. 아버지의 투박한 손은 하느님의 부성을, 부드러운 손은 하느님의 모성을 나타낸다.

-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미술 감독 정웅모신부

 

[관련성서]

“마침내 그는 거기를 떠나 자기 아버지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 오는 아들을 멀리서 본 아버지는 특은한 생각이 들어 달려 가 아들의 목을 끌어 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하고 말하였다(루가 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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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사막이든, 정글이든 섬이든 상관없이 전세계 어디에서나 사람들은 이 그림을 즉각 이해하고 반응을 보일 것이다. 이 그림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았거나, 받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복음서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아들이 둘 있는 아버지가 있었는데. 그중 둘째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며 자기 몫의 유산을 미리 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것을 내어주고, 아들은 그 돈을 들고 나가서 모두 탕진해버린다. 때마침 기근이 들자 아들에게 남은 것은 등을돌린 친구들 뿐이었다. 결국은 돼지 농장에서 일하면서 연명을 할수 밖에 없었다. 그는 어찌나 굶주렸든지 제때 밥을 챙겨 먹는 돼지가 부러울 지경이었다. 그때, 아들은 자신의 집에 있던 하인들은 좋은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받았다는 것을 생각하고, 집에 돌아가 자신이 못된 아들이었음을 고백하고, 그저 하인처럼 부려달라고 부탁할 작정이었다.

이 그림은 이 이야기에서 가장 감동스러운 장면이다. 복음서에 따르면 아들이 저멀리 나타났을 때부터 아버지는 그를 알아보고 달려와 반겨주었다고 한다. 자식의 나약함을 알고 있었던 아버지는 그가 거지가 되어 돌아을 것을 짐작하고 매일 그를 마중하러 나왔던 것이다. 그들이 포옹했을 때, 아들은 후회의 말을 하려고 했지만 아버지는 말렸다. 아들을 꼭 껴안은 아버지는 하인들에게 좋은 옷을 마련하고 살찐 양을 한 마리 잡으라고 했다. 진정한 아버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아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준다.

렘브란트는 무엇보다도 두 사람의 조용한 친밀감을 보여주고 있다. 아들의 얼굴은 반쯤 가려져 있는데, 낡고 보잘것 없는신발, 굳은 살이 박힌 발. 누더기 같은 옷을 볼 때 그가 얼마나 지쳐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아버지가 입고 있는 풍성한 옷은 마치 어머니의 뱃속처럼 아들을 보호해주면서, 두 사람간의 일대일 관계를 감싸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관계는 당사자들끼리의 관계로. 제 삼자는 도저히 판단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옆에 저 있는 나이 많은 형을 한번 보자. 그는 마치 판관 같은자세로, 현재의 상황이 불만스럽다는 듯이 뻣뻣하게 서 있다. 그는 법적인편협함을 가지고 있는지는 몰라도 사랑을 간직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포옹을 원하지도 않으며, 뒤에서 이 광경을지켜보고 있는 하인들까지 포함하는 일가족으로부터도 한 걸음 물러서 있다. 렘브란트는 티투스라는 아들 하나를 제외하고는 자식들이 모두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었으며 . 티투스도 아버지보다 먼저 죽었다. 그런 렘브란트에게 이 작품은 특별한 의미를 가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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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1606~1669)는 지나친 낭비벽으로 파산한 말년에는 아들에게 생활비를 의존해야만 할 정도로 가난에 시달렸다. 약간의 빵으로 끼니를 해결할 정도였지만 그는 주문자의 입맛에 맞는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다.

렘브란트가 말년에 가난으로 가장 고통받았던 것은 빵이 아니라 화가에게 필요한 그림 수집을 멈췄던 일이다. 렘브란트는 가난과 고독으로 점철된 말년에 성서를 표현하는 것에 주력한다. 렘브란트 말기작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돌아온 탕자’다.

‘돌아온 탕자’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다. 아들이 둘 있는 사람이 있었다. 세상을 알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자신의 몫을 먼저 달라고 요구한다. 아버지는 아들의 요구대로 재산을 나눠 두 아들에게 유산을 상속한다.

유산 상속을 받은 둘째 아들은 즉시 외국으로 떠났고 거기서 세상 유혹으로부터 견디지 못하고 빠져들었다. 유혹의 대가로 아들은 전 재산을 탕진하게 된다. 굶주리다 못한 아들은 집에 있는 하인이 부러울 정도였다. 둘째 아들은 거리에서 굶어 죽기보다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의 아버지는 동네 어귀에서 아들이 나타나자마자 달려 나가 맞았다.

뉘우치는 아들을 보고 아버지는 즉시 잔치를 준비하고 살진 소를 잡으라고 명한다. 한 번도 비난받은 일이 없는 큰아들은 아버지의 처사에 화를 낸다. 아버지는 큰아들에게 죽었던 동생이 돌아온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다라고 한다. 이 우화는 ‘하늘에는 뉘우칠 것이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뉘우치는 죄인 하나를 더 기뻐한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이 작품에서 아버지의 품에 안겨 있는 아들은 그동안 고생했는지 다 떨어진 옷과 낡고 보잘 것 없는 신발을 신고 있다. 그의 차림은 힘든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암시하면서 붉은 색의 옷을 입고 있는 아버지와 대조를 이룬다. 무릎을 꿇은 아들의 등을 어루만지고 있는 아버지의 행동과 풍성한 옷은 아들의 행동을 용서하고 품에 안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머리를 깎고 두 눈을 감은 채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기도하는 아들의 모습은 참회의 모습이다. 화면 오른쪽에 있는 남자가 형이다. 그는 동생과 아버지의 행동이 마음이 안 들어 표정이 굳어 있다. 그 뒤로 하인들이 아버지와 아들의 만남을 지켜보고 있다.
렘브란트 반 레인은 성서의 이야기를 표현하면서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장식적인 요소를 배제했다. 그는 방탕한 아들의 이야기에 자신이 걸어온 삶을 담아냈다. 그는 이 이야기를 통해 죄의 용서를 표현하고자 했다. 이 작품은 렘브란트의 최후의 미완성 성화 중 하나다.

<박희숙 서양화가·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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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탕자를 반기는 아버지

지거 쾨더 Sieger Köder
1925.1.3. 독일 바서랄핑엔(Wasseralfingen) 출생.
신부이며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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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그늘 2009.05.12 23:57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그림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성화입니다.
    아이들 방에도, 거실에도 걸려있습니다.
    이사야 43장 4절
     "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귀염둥이, 나의 사랑이다." 
    이 성경구절을 넣어서
    아이들과 함께 자주 바라보곤 합니다.
    여기서 보게되니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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