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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계치유에 빠지는가?

 
글 박상경 기자
 
 
“신자들은 무엇 때문에 가계치유에 빠져드는가? 가계치유는 언제 우리 교회에서 시작되었으며, 교회는 왜 이를 금하는가?” 가계치유 피해 사례를 통해 가계치유의 폐해와 부당성을 짚어본다.

가계정화라고도 하는 가계치유는 미국 성령기도회의 로버트 드 그란디스 신부와 존 햄쉬 신부의 책이 번역되어 우리나라에 소개되면서 성령기도회를 통해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존 햄쉬 신부는 말을 심하게 더듬어 사제품을 받지 못하다가 성령세미나를 받고 치유가 되어서 사제품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뒤 그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하느님의 은총을 주는 말씀의 권위자로 알려졌다. 그의 ‘가계치유를 위한 기도’는 주교회의에서 건전한 신앙생활을 해친다고 신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운 지금에도, 본당에서 가정에서 신자들이 즐겨 바치는 기도이다. 가계치유 기도를 우리말로 옮긴 번역자와 전화통화로 사정을 확인해 보았으나, 그이는 “당시 한국에서 열리는 성령 기도회에 참석하려고 방한한 존 햄쉬 신부의 우리말 통역을 했고, 그 뒤 기도문을 번역하였을 뿐이다. 더 이상은 아무것도 모른다.”고만 하였다.

오십대 중반의 ㄱ씨는 5년 전에 유방암에 걸렸다. 꾸준히 치료를 하여 이제는 완치되었다고 생각하였는데 암 덩이가 척추로 전이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전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이 시작되었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우울해져 가족들한테 마음에도 없는 자학하는 말을 자꾸만 하곤 한다. 처음엔 가볍게 들어 넘기던 남편도 아내가 투정을 계속하자 차츰 힘들어하는 듯하였다. “성당 나가서 맘 편히 기도하는 것도 사치란 생각이 들어요.” 고통스러워 하는 아내를 간호하던 남편이 지나가는 말처럼 중얼거렸다. 그이에게 누군가 가계치유 기도란 게 있어 이것을 열심히 바치고 미사예물을 드리면 완쾌될 거라는 말을 하면, 그이는 어떻게 할까? 그이의 이성이 옳고 그른 신앙의 범주를 따져 그릇됨을 인식하고 이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그럴 거라고 무조건 장담할 수 있을까?

<사례 1> 집안에 불화가 끊이지 않는 ㄴ씨. 한 수녀원에서 3년 동안가계치유 기도를 바치고 미사를 넣으면 불화가 해결될 것이라는 권유를 받았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한 심정의 그이는 매달 2~3만 원씩을 송금하고 수녀원에서 기도를 해주던 중 ‘교구에서 말이 많다.’는 이유로 수녀원측에서 기도를 그만두었다. 그러나 ㄴ씨는 가계치유 기도를 하고 나니 집안의 불화가 없어졌으므로 가계치유 기도가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여, 수녀원에 부탁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한 선교회에 매달 2~3만 원을 보내고 기도를 부탁하고 있다.

<사례 2> 여기저기 늘 아픈 ㄷ씨는 성령기도회를 통해 알게 된 가계치유 기도 모임에 열성이었다. 누구보다도 성당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ㄷ씨는 어느새 가계치유 기도 모임의 주요 구성원이 되어 주변 신자들에게도 적극적으로 권하고 다녔다. 집안의 화를 물리치고 복을 불러오는 아주 좋은 기도 모임이 있으니 한번 참석해 보라고.

<사례 3> 그런가 하면 여행사와 연계된 가계치유 기도 모임도 있다. 이 가계치유 기도의 핵심 인물인 ㄹ씨는 한 여행사와 연계하여 돈을 거둬들이는데, 미사 한 대에 요구하는 예물이 2천만 원에서 억대에 이른다고 한다. 여기에 세뇌된 사람들은 집을 팔거나 담보로 잡혀 돈을 가져다준다고도 하는데, 심지어 이혼을 한 뒤에 위자료나 퇴직금 전액을 헌금 명목으로 갖다 주어 그 피해가 정도 이상으로 심각함을 드러냈다. 가계치유에 빠지는 사람은 이렇듯 영적 육적으로 연약한 사람만이 아니기에, 이를 이용해 거액의 돈을 손에 쥐고자 하는 사람한테는 더욱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사례 4> 한 본당의 사목위원인 ㅁ씨는 영성체 뒤에 가계치유 기도를 바친다. 성체를 모신 뒤에 이 기도를 바치는 이유는 기도를 바침으로써 효과가 더욱 좋아진다는 권유를 들었기 때문이다. 가계치유 기도가 폭넓게 신자들에게 퍼져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례 5> 가계치유에 빠진 어머니가 조상들의 죄 때문에 딸에게 음란기가 있다면 어린 딸을 방치하여 굶어죽게 한 사례도 있다. 그런가하면 “어머니 태중의 나쁜 영향을 끊어주십시오.” “조상의 나쁜 영향을 끊어주십시오.”를 되풀이하여 기도하게 하는데, 이렇게 가계치유에 빠진 사람들은 그릇된 성모신심으로 나주 성모에 현혹되기도 하여 계속 자기들끼리 만든 기도 모임을 확장해 나가기도 한다.

가계치유의 핵심내용은, 가계(家系) 안에서 조상들이 지은 죄가 크거나 한이 풀리지 않은 상태일 때 그 나쁜 영향이 후손들에게 미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를 미사나 기도 등을 통해 풀어야한다는 것이다. 또한 유전적인 이유로 정신적 ∙ 정서적 장애가 있거나, 만성적인 질병과 반복되는 가정의 재난이나 불화, 사고, 단명, 대를 잇는 가난, 불임과 유산, 종양 등으로 자식이 없는 여성들에게 가계에 좋지 않은 영적인 흐름이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하며 이를 치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집안의 우환을 모두 조상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또한 가계치유를 성경에 근거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세를 불려나가는데, 문제는 이렇게 그릇된 교리로 신자들을 현혹시키고 이를 치유해 준다고 하면서 그 대가로 적은 액수에서부터 거액의 금품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요구하는 돈보다 적게 내면 “사탄이 아직 떠나지 않고 골목과 집에 가득하다.”며 돈을 더 요구하거나, 가계치유를 반대하는 본당신부나 사무장이 좋지 않은 일을 당했을 경우에는 “가계치유를 반대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몸과 마음이 허약한 신자들을 가계치유를 하게 부추긴다.

고통과 절망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찾아온 이들을 치유라는 무기로 회유하고 두려움으로 협박하여 금품을 갈취하는, 남의 약점을 이용하여 전혀 신앙적이지도 인간에 대한 연민에 근거하지도 않은 이러한 행태는 어디서 많이 본 수법이 아니던가. 마치 사이비 종교의 교주들이 순진하고 무지한 신도들에게 금품을 갈취하는 방법과 흡사하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요한 9,1-3).

가계치유는 가톨릭 정통 교리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
“교회의 세례를 통하여 죄를 용서받는 것이 가톨릭 교회의 교리인데, 가계치유에서는 그 ‘죄가 (소멸되지 않고) 유전된다.’는 커다란 신학적인 문제를 가집니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은 새로운 생명의 표징이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는 것이며, 죄(원죄와 본죄)를 씻어내는 것이며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씻긴 죄가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란 믿음은 세례성사의 (은총) 효과를 부정하는 것이며, ‘원죄’를 넘어선 ‘조상 죄’ 대물림은 인간에게 더욱 큰 죄의 부담을 주어 사랑과 위로, 기쁨과 희망을 주어야 할 신앙이 그 본질을 잃어버릴 위험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가계치유, 무엇이 문제인가’, 인천교구장 사목적 권고에서).

모든 인간은 독립된 인격체로 “죄라는 유전 인자는 없다. 죄는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인격적인 결단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조상들의 죄가 후손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은 죄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현혹하는 것이다”(대구대교구장 서한에서).

이렇듯 개인의 고통과 아픔을 이용하여 조상의 죄에 대한 불안감과 기복적인 신심을 조장하여 기도와 미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갖게 하는 가계치유. “기적과 은총은 미사예물과 미사 횟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한하신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것이고 우리는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고 서한은 강조한다.

2007년 7월, 전국 사목국장 회의에서는 2000년 이후 신자들 사이에 서서히 파고든 가계치유의 폐해를 지적하였고, 사안이 중차대하다고 판단하여 그해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 안건으로 올렸다. 주교회의 역시 신자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는 가계치유와 관련된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 각 교구별로 이 문제에 지혜롭게 대처하면서 구체적인 사례들을 취합해 나가기로 결정하였다.

주교회의 결정에 이어 11월에 “한국 천주교회가 우려하는 ‘가계치유’에 관한 수원교구 교구장의 사목권고”가 발표되었으며, 대구대교구장의 “가계치유를 위한 기도와 미사에 대한 교구장 서한”과 “가계치유, 무엇이 문제인가” 하는 인천교구장의 사목적 권고가 잇따라 발표되면서 신자들에게 가계치유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앞서 예로 든 것처럼 내가 이런 처지에 놓인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인간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의 삶을 살기도 한다. 한 본당수녀는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들과 하느님의 뜻을 알기 힘든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가계치유 기도가 사람들을 현혹시킬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하였다. 그리스도교는 공동체의 종교다.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사목적인 배려는 물론, 신앙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교우들의 따스한 눈길 또한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경향잡지, 200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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