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성가를 만나다] 신상옥 안드레아

by Fr.엉OL가♥♪~™ posted Apr 10, 201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 - Up Down Comment Print
[생활성가를 만나다] 신상옥 안드레아        [1267호  2014년  06월  01일]
교회에 ‘생활성가 돌풍’ 일으킨 ‘하느님의 가수’

교회에 ‘생활성가 돌풍’ 일으킨 ‘하느님의 가수’

▲ 신상옥씨는 인터뷰 내내 기타를 매고 자신의 노래를 쉼없이 들려줬다. ‘하느님 가수’답게 그에겐 노래가 기도이자 기쁨이었다.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QR코드를 찍으면 신상옥씨의 ‘임 쓰신 가시관’을 들을 수 있다. 이정훈 기자 신상옥씨는 인터뷰 내내 기타를 매고 자신의 노래를 쉼없이 들려줬다. ‘하느님 가수’답게 그에겐 노래가 기도이자 기쁨이었다.

지난 5월 13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한 음악회.

오랜만에 생활성가 가수들이 대거 출연한 이날 공연에서 기타를 든 신상옥(안드레아, 50)씨가 마지막 무대에 올랐다. 곧이어 그가 자신의 대표곡 ‘임 쓰신 가시관’과 ‘내 발을 씻기신 예수’를 부르자 낮고 중후한 음색이 성전 구석 짙게 깔렸다. 관객들은 가슴에 손을 얹거나 눈을 감은 채 감상에 젖어들었다. 그를 두고 가장 교회적인 생활성가를 부른다고 해야 하는 순간이다. 듣는 이들은 하나같이 그의 노래 몇 곡으로 묵상에 잠기듯 자신의 신앙을 성찰한다. 신상옥 음악의 힘이다.

“두 곡은 신학생 시절 동기들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만든 거예요. 생각지도 못했는데, 주님께서 이 노래를 통해 제 목소리를 드러내 주셨죠. 지금까지도 저를 드러내려고 썼던 곡들은 하나도 안 알려지고, 조용히 기도하며 쓴 곡들만 주님께서 세상에 알려주셨어요.”

1983년 서울 가톨릭대 신학생이 된 그는 신학교 시절부터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감출 길이 없었다. 신학생 때 낙산중창단, 갓등중창단을 결성해 기도하듯 곡을 쓰고, 주님을 노래했다. 당시 신학교를 방문했던 김수환 추기경은 “여기 유명한 노래가 있다며? 한 번 들어보자” 하고 청했는데, 신학생 모두 한목소리로 ‘임 쓰신 가시관’을 불러 전교생이 휴가를 얻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는 ‘하느님의 가수’가 되기 위해 1992년 신학교를 나왔다. 그 길로 친형제들과 ‘신상옥과 형제들’을 꾸려 전국 각지를 돌며 수천 회에 이르는 공연을 열었다. 이들이 콘서트를 했다 하면 ‘서태지와 아이들’ 부럽지 않을 정도로 공연장이 꽉 찼다. 1990년대 그레고리오 성가만 교회음악으로 여기던 시절, 그는 다양한 빛깔의 복음환호송, 화답송, 주님의 기도 등 60여 곡에 이르는 자작 미사곡을 내며 그야말로 회중을 위한 성가곡으로도 돌풍을 일으켰다. 지금까지 20여 장의 생활성가 앨범과 성가 300여 곡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작곡을 곧 기도하는 시간으로 여기며 임해온 투철한 음악적 실험정신 덕분이다. 그가 청년미사 때 직접 생활성가를 노래했던 한 본당은 교중미사보다 청년미사 참례자가 더 많아지는 일이 벌어질 정도였다. 지금도 청년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 가운데 하나인 ‘사랑한다는 말은’은 이해인 수녀의 시 ‘황홀한 고백’을 그가 노래로 써서 1993년 1집에 낸 곡이다.

“동기 신학생들이 보좌 신부로 소임하는 동안 저는 30대에 훌쩍 떠버렸어요. 30대는 그야말로 잘난 맛에 살았죠. 그런데 40대 들어서는 이렇다 할 노래가 나오지 않아 방황하던 때가 많았습니다. 기타를 놓고 지휘봉만 잡고 작곡에만 몰두한 때도 있었죠. 음악적 방황 속에 우울증까지 겪기도 했어요. 그런데 역시 신상옥은 기타를 매야 하더라고요.”

그는 자신을 ‘전천후 가수’로 불러달라고 했다. 트로트, 가요, 생활성가 등 어느 곳에서든 즐거운 분위기만 만들 수 있다면 어떤 노래든 할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이 주님께서 원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한때 그는 생활음악연구소 소장을 역임하며 생활성가 보급과 저변 확대에도 헌신하는 등 선배 가수로서 생활성가호(號)가 현대 교회음악 흐름에 순항하도록 도왔다.

그는 ‘생활성가 가수 양성 교육’과 같은 틀로 다양한 장르를 얽매는 것은 시기상조일뿐 아니라 생활성가가 교회 안에서 자리매김하는 데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긴다. “각자 스타일로 활발히 노래하고, 훗날 역사가 쌓이면 그때 이 같은 교육을 하는 것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또 “어떤 무대를 가면 가끔 하대받거나 ‘내가 왜 이런 무대에 서야 하지?’라고 여겨질 때도 있는데, 그런 순간이야말로 주님 위해 가장 열심히 해야 할 때라고 후배 가수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고 조언했다. 

“50대가 됐다고 가수 인생이 끝났느냐고요?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라고 봐요. 항상 목청껏 하느님 자랑하며 살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제가 가진 음악적 고민을 더욱 나눠야 한다고 여깁니다. 돌아보면 좋았던 시간, 힘들었던 시간은 모두 거쳐야 할 과정이었습니다. 더욱 기쁜 마음으로 노래하며 모든 이가 하느님과 가까워지도록 도울 겁니다. 우린 이미 천국에 와있으니까요.”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Who's Fr.엉OL가♥♪~™

profile
“인간이 무엇이기에 아니 잊으시나이까, 
                       그 종락 무엇이기에 따뜻이 돌보시나이까!”(시편 8,4)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