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성가를 만나다] 유승훈 프란치스코

by Fr.엉OL가♥♪~™ posted Oct 1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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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성가를 만나다] 유승훈 프란치스코                                2014. 06. 15발행 [1269호]
생활성가 앨범 제작만 100여 장 ‘미다스 손’

▲ 생활성가 가수 인생 28년째. 유승훈씨는 그간 자신이 지닌 제작과 기획, 편곡 능력을 생활성가계 발전을 위해 아낌없이 바쳐왔다. 이정훈 기자

지난 3일 서울 명동 평화방송 사옥. 생활성가 가수 유승훈(프란치스코, 47)씨가 막 라디오 부스에서 나왔다. PBC라디오 인기 프로그램 ‘오늘이 축복입니다’의 한 코너를 맡아 매주 꾸준히 생활성가의 매력을 전하는 그의 발걸음이다. 그는 “한창때엔 라디오 프로그램 서너 개씩 거뜬히 했다”며 “일주일 한 번이라도 행복한 마음으로 찬양의 기쁨을 전하고 있다”면서 웃었다.

길게 흩날리는 머리칼과 짙은 턱수염, 개성 있는 안경 너머로 금세 웃음이 흘러나왔다. 1살 때 겪은 소아마비 탓에 늘 목발을 짚고 다니지만, 그의 말대로 “전성기 시절엔 기타를 옆에 끼고 날아다녔다”고 할 정도로 생활성가는 그의 삶 자체다. 끊이지 않는 미소에서 그만의 밝은 성격이, 불쑥불쑥 드러나는 진솔함에서 생활성가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선배의 모습이 교차했다.

“1992년 신상옥 형님께서 저를 교회 안으로 불러주셨죠. 그때만 해도 저는 교회음악이 뭔지도 제대로 몰랐어요. 그저 음악 하기 좋은 곳만 찾았던 때였죠. 생활성가가 제게 자연스럽게 신앙을 가르쳐줬고, 이후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많은 이들과 함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교회에 생활성가로 새로운 반향을 일으켰던 그룹 ‘신상옥과 형제들’의 초대 구성원인 그는 신씨와 함께 10여 년간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공연 260여 회를 소화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곡 분위기를 이끄는 기타 반주와 허스키하면서도 꾸밈없는 창법은 그 자체로 노래를 풍요롭게 만드는 그만의 매력이다. 대표곡 ‘십자가 바라보면서’, ‘소망’에서 그만의 색깔이 확연히 드러난다.

이후 ‘유승훈 밴드’ 결성으로 더욱 폭넓은 음악 활동을 이어간 그는 2000년대 들어 ‘생활성가 기획자’로 변신한다. 그는 2001년 가톨릭문화기획사 ‘띠앗누리’를 설립해 생활성가 음반 제작에 크게 공헌하기 시작했다. 그의 제작과 기획력, 편곡 감각을 알고 많은 가수가 그를 찾았고, 그는 후배 가수와 동료들을 위해 빚을 내면서까지 음반을 제작해줬다. 정작 자신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생활로 혈압 수치가 200이 넘었지만 알지 못했다. 이처럼 투신한 것도 하느님 일이라면 무조건 해야겠다고 여긴 그의 신념 탓이다. 수억 원의 빚을 지고 몇 차례나 스튜디오를 접어야 했던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게 찾아온 결과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음악캠프, 음악피정 프로그램을 처음 만들어 많은 젊은이가 다양한 방식으로 성가를 노래할 수 있는 문화를 정착시켰다. 현정수 신부와 이노주사, 김태진 신부를 비롯해 PBC창작생활성가제 앨범 제작 등 그의 손에서 나온 앨범만 100여 장 된다. 4년 전 새로 마련한 ‘JJD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매년 앨범 5장씩 제작하고 있다.

“몇천만 원씩 드는 음반 제작비 없이 와서 노래하도록 도와달라는데 어떻게 외면합니까. ‘어떻게든 해결되겠지’라고 여겼던 제 교만도 문제였지만, 결국 빚더미에 바닥을 치는 삶을 살기도 했었죠. 그래도 주변 도움으로 빚 없이 곡 만드는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초창기엔 거친 말도 서슴지 않았고, 선글라스에 두건을 쓴 모습만 보이다 반감을 샀던 때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기획사를 차리고 자가용을 몰고 다니는 그의 모습을 보며 오해의 시선을 던지기도 했다. 그는 “그런 시간 또한 자신이 진정한 생활성가 가수가 되도록 만드는 자양분이 됐다”고 했다. 그래선지 자꾸만 후배 가수들을 위하는 이야기를 꺼냈다.

“1세대 김정식, 신상옥 선배님이 버팀목이라면, 저희 세대는 후배 가수들에게 직접 방향과 길을 제시해줘야 합니다. 대중들은 똑똑해졌고, 동료들도 모두 음악을 전공한 친구들이에요. 그저 ‘하느님 찬양하고 싶어 노래하게 됐어요’라는 말은 이제 옛날 버전이 됐습니다. 기교와 테크닉, 음반 판매보다 중요한 것은 찬양하는 사람은 뭔가 달라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교회가 하는 다양한 사목을 잘 이해하고, 공부하면서 자신만의 신앙 체험을 쌓아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대중의 마음을 울리는 성가가 나오는 겁니다.”

그는 조만간 자신의 첫 개인 앨범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발라드, 랩,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생활성가가 자리매김하도록 기획과 제작을 도우려면 할 일이 너무 많다”고도 했다. 자가용 뒷좌석에 휠체어를 채비해 둔 것도 언제든 물심양면 생활성가를 알리려는 그의 열정을 드러낸 것이리라.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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