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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1 13:45

W.A.Mozart <대관식 미사> K.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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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Mozart <대관식 미사> K.317


초연 | 1779년 4월 4일부터 5일에 걸친 부활절 때 잘츠부르크대성당에서 연주된 것으로 추정
기본 자료의 소재 | 베를린국립도서관 소장(동 베를린)
연주시간 | 약 30분
편성 | 독창, 합창4부, 오보에2, 호른2, 트럼펫2, 트롬본2, 팀파니, 제1,2바이올린, 첼로, 콘트라베이스,
           파곳(저음현과 중복), 오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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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의 교회 작품은 불과 몇 가지 곡을 제외하고는 일반에게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수량에서 보면 상당히 많은 작품이 남겨져 있다.
20곡을 헤아리는 미사를 위시한 이들 작품의 대부분은 모차르트의 빈 이주 이전, 출생지인 고향 잘츠부르크에서 작곡된 것들이다.
이것은 그가 잘츠부르크 대사교에 봉사하는 교회 음악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을 여실히 말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차르트의 이러한 측면을특히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것은 1768년부터 1777년에 걸쳐서 씌어진 10여곡에 이르는 미사 작품인데,
만하임 파리 여행을 끝내고 잘츠부르크에 귀착한 그의 손에서 태어난 <C장조 K.317>의 통칭 <대관식 미사>는 이러한
모차르트의 미사곡 중에서 특히 알려져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이 <대관식 미사>로 불리어진 것도 이미 오래이다. 이렇게 부르게 된 까닭에 대해서는 다음의 통설이 일반적으로 믿어져 왔다.
잘츠부르크의 북쪽 교외의 언덕 위에 건립된 마리아프라인순례교회의 주제단에 장식된 성모 마리아의 대관상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
이 결코 크지 않은 성모자상(聖母子像)은 전에 기적적으로 화재를 면해서 이 아담한 교회로 옮겨져서 1744년에 잘츠부르크의
사람들에 의해서 대관된 것이었으나, 1751년의 성령 강림 대축일 후의 제5일요일(6월 4일)에 로마 교황 베네딕투스 14세에 의해서
그 대관의 의식이 다시금 거행되어 이후 매년 그 날에 미사가 봉헌되는 관례로 되었다.
모차르트는 1779년의 이 봉헌일(6월 27일)을 위해서 이 미사곡을 썼다고 하는데,
그래서 이 통칭으로 불리어지게 된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 통설은 현재는 부정되고 있다. 그 근거는 몇 가지를 들 수가 있다. 모차르트는 이 곡을 1779년 3월 23일에 완성하고 있다.
그의 작곡 관례로 보아서 6월 하순에 연주될 곡을 3개월이나 앞서 미리 써둔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
곡의 규모는 종래의 작품과 달리 상당히 큰 것이고, 또 당당하고 힘차다. 악기 편성도 크고 비올라를 빼고 있는 점은 종래와 같지만,
현4부 외에 오보에, 호른, 트럼펫 각 2에 트롬본3, 팀파니에 오르간 등,
이처럼 다양하여 마리아프라인순례교회의 작은 내부 공간에는 맞지 않는다는 점 등이다.
이상과 같은 점에서 이 미사곡은 같은 1779년 4월 4일부터 5일에 걸친 부활절 식전을 목표로 씌어졌고,
잘츠부르크대성당에서 연주되었을 것이라고 정정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 왜 <대관식 미사>라고 불리어지게 되어쓴가. 모차르트는 다음 1780년에도 C장조의 <미사 솔렘니스 K.337>를 쓰고 있는데,
 어떤 곡도 10년 정도 후의 1790년에 유럽 각지에서 거행된 레오폴트 2세의 대관식의 기념 미사에 쓰여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 이 곡이 빈에서 먼저 <대관식 미사>라고 불리어졌으리라 생각된다.

Kyrie 키리에
Andante Maestoso-piu Andante-Andante Mastoso     C장조, 4/4박자
주에게 긍휼을 바라는 이 곡은 세 개의 부분으로 되어 있다. 먼저 안단테 마에스토조로 서주도 없고 합창이 되풀이하면서
'키리에'를 외치면, 관게 받쳐진 현이 장중한 분산화음의 응답을 되풀이한다.
오보에와 바이올린의 음형을 끼고 피우 안단테의 부분이 되어 알토의 솔로가 선율적인 가락을 노래하면,
오보에가 반마디 밀리면서 이것을 모방한다. 테너의 솔로가 이를 받아 '크리스테 엘레이손'을 소프라노와 주고받고 하는데서는
단조에의 그늘이 엿보인다. 재차 안단테 마에스토조로 되고, 교묘한 코다가 받아 짧지만 빈틈없는 '키리에'를 끝낸다.

Gloria 글로리아
Allegro con Spirito     C장조, 3/4박자
하늘에서의 주의 영광과 땅 위에서의 인간의 평화를 기도하는 '글로리아'도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이 곡 역시 전합창의 강한 으뜸화음으로 시작되어 바이올린 2부가 약하게 이것을 받는 형태가 반복되고,
'인간에겐 평화를'로 고조된 다음, 일단 관에 이끌려 약하게 가라앉고 새로운 악상에 의해 계속된다.
이윽고 독창의 소프라노와 테너의 주고받음과 바이올린 2부및 오보에의 스타카토에 의해서 '주이신 천주 하늘의 왕'의 대목에서
제2부로 되어 독창과 합창의 교체가 계속, 이윽고 최초의 악상이 '왜냐하면 그대만이 성(聖)'의 합창에 의해서 재연한다.
이 부분은 다소 단축되어 있어 '아멘'을 노래하는 독창부터 합창이 코다를 형성하여 화려하게 악장을 닫는다.

Credo 크레도
Allegro molto-Adagio-Allegro molto    C장조, 4/4박자
신에 대한 신앙을 노래하는 '크레도'는 3부 형식과 론도 형식이 결합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
격렬한 교향적인 전주에 이어, 전합창이 '나는 믿노라 유일한 신'이라고 노래하는데, 이 사이 관현악의 격렬한 반주는 그치질 않는다.
이윽고 '또 유일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목부터 부차적인 주제가 나타난 다음 얼마간 달라진 형태로 주요 악상이 되돌아오고
다시 푸가토의 코다로 옮겨져서 제1부가 끝난다.
이어서 아다지오로 되고 f단조로 4중창이 '성령에 의해서 처녀 마리아로부터 육체를 받아 인간이 되어'를 노래하는데,
바이올린이 약음기를 달고 32분음표의 섬세한 움직임을 곁들이는 극히 표현적이고 아름다운 부분이다.
다시 알레그로 몰토, C장조로 돌아와 '다시 부활하셨노라' 이하가 노래된다.
여기서는 바이올린의 하행(下行)하는 16분음표에 받쳐져서 소프라노의 솔로부터 노래되는 제2의 부차적인 주제도 나타난다.
다시 주요 주제가 돌아오고 또 제1부와 같이 '아멘'을 반복하는 푸가토의 코다로 이어져서 이윽고 격렬하게 곡을 마친다.

Sanctus 상투스
Andante Maestoso-Allegro assai   C장조, 3/4박자
전 관현악에 의한 반주를 이끌고 전합창에 의해서 노래되는 장려한 악장이다.
'성스러워라'가 세 번 반복된 다음, 알레그로 아싸이로 변하고,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가 드높게 노래된다.

Benedictus 베네딕투스
Allegretto 2/4박자-Allegro assai 3/4박자-Allegretto 2/4박자-Allegro assai 3/4박자 C장조
계속되는 '베네딕투스'의 첫머리엔 여행 당시의 소나타 악장을 연장시키는듯한 전주가 놓여지고,
제2바이올린에 의해반주된 제1바이올린이 가냘프게 노래하는데, 이윽고 솔로가 4부로 오보에와 제1바이올린에 의한 이 선율을 타고,
'주의 이름에 의해서 온 자는 축복받게 하소서'하며 계속해 간다.
이어서 알레그로 아싸이로 '상투스'에 쓰여졌던 '호산나'가 삽입되고 재차 알레그로로 되어 '베네딕투스'가 돌아오고
다시 알레그로 아싸이의 '호산나'가 코다풍으로 이 악장을 끝맺는다.

Agnus Dei 아뉴스 데이
Andante Sostenuto F장조 3/4박자-Andante con moto-Allegro con Spirito C장조, 4/4박자
최후를 장식하는 '아뉴스 데이'에도 '베네딕투스'와 같은 전주가 놓여 있으나, 이것은 오보에로 채색되어 있다.
소프라노 독창이 '이 세상의 죄를 제거하시는 천주의 어린 양'하고 노래하는 이 선율은 전술한 바와 같이 <피가로의 결혼> 중의
백작부인의 아리아에 흡사한 것. 이어 '우리들을 연민하소서'를 끼고 다시 한 번 되풀이되고,
또 '미제레레 노비스'가 다른 선율로 노래되고서 다시 한 번 '아뉴스 데이가'가 다소 변형되어 나타난다.
안단테 콘 모토로 옮겨지고, '우리들에게 평안을 주소서'가 최초의 '키리에'에서 노래된 피우 안단테의 선율에 의해서 제시된다.
이윽고 알레그로 콘 스피리토로 변하고 '키리에'의 선율이 다시 변형되어 다루어지고 차차 고조되어 전악장을 닫는다.
첫머리의 '키리에'의 음형이 최후에 쓰여져서 미사곡 전체의 통일이 의식적으로 꾀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저|음악지우사 <모짜르트>)


Missa - Kyrie(자비송)

희랍어로 된 "Kyrie eleison"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라는 이 기도는 상당히 길고도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4세기 초엽 동방에서 사용된 이 환호성은 원래 도문(litany)의 매 청원 끝에 연결되어 있던 신자들의 응답이었다.
부제가 기도의 지향을 발표하면 신자들은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통상적으로 대답을 하였는데
(마치 현행 미사의 "보편 지향기도"- "신자들의 기도" 때에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하듯이) 이 대답은 도문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교황 젤라시오 (492-496)는 동방 교회의 이 기도 형태를 말씀 전례의 결론으로 사용하던 것을 오래된 중재 기도의 한 형태로 바꾸면서
중재 기도의 끝에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라는 대답을 덧붙이도록 지시하였다.
이렇게 교황 젤라시오에 의해 바뀐 새 기도문과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환호성은 이때부터 미사의 시작 부분에 자리를 잡게되었다. 
거의 100년이 지난 후 미사 전례가 너무 길다고 생각한 교황 대 그레고리오 (590-604)는 미사를 좀 짧게 만들기를 원하여,
특별한 날에는 대답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만을 노래로 하고 앞에 연결되어 있던 도문의 지향을 생략할 수 있도록 허락하게 된다.
이렇게 생략된 형태의 도문이 결과적으로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정형화 되어 버렸다.

우리가 바티칸 제2차 공의회 이전에 사용하던 세 번의 Kyrie, 그리고 세 번의 Christe, 또 하나의 세 번의 Kyrie의 형태는 불어권 나라에서 고정되었으며,
이렇게 세 번씩 세 번을 기도하는 근거는 바로 삼위일체 신학의 해석에 있었다. 신약성서, 특히 사도 바울로에 의한 서간들에서 Kyrios는 그리스도를 지칭하며
그분의 신성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이 Kyrie가 참회 예식의 한 부분으로 포함되어 있지 않을 경우, 참회 예식 후에 이 Kyrie는 이어진다.
주님을 찬양하고 그 분의 자비를 구하는 이 환호성은 일반적으로 모든 신자 즉, 성가대나 선창자와 함께 노래부른다.
경우에 따라서는 성가대만이 노래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에게 언급되는 각 환호성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은 일반적으로 두 번씩 중복되고 있지만 각 나라의 언어의 특성이나 음악적인 고려,
혹은 다른 환경에 따라 세 번씩 할 수도 있다.
또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앞에 짧은 말을 덧붙힐 수도 있다 (이를 음악 용어로는 Trope라 하며, 그 예를 한글로 된 미사 통상문에서 살펴 본다면
"진심으로 뉘우치는 사람들을 용서하러 오신" 혹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성부 오른 편에 중개자로 오신" 등의 표현이 이에 해당한다)

이 "자비송"은 위에서 설명한 여러가지 방법으로 노래할 수 있지만, 노래로 할 경우 이 기도는 반드시 짧고 간단한 곡으로 해야 한다.
왜냐하면 만일 거창한 곡을 노래하게 될 경우 시작예식이 지나치게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작 예식에서 가장 비중이 큰 노래는 '대영광송'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부분인 '대영광송'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Kyrie'는 짧고 간단한 곡이 되거나
그냥 낭송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사순 시기에는 '대영광송'이 없기 때문에 조금 길거나 다성음악도 괜찮으리라 생각한다 (참조. 미사곡 선곡의 요령).
노래로 하지 않을 경우에는 모든 신자들이 부제 (부제가 없으면 사제)의 지향 다음에 응으로 기도문을 외운다.

그럼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을 몇 가지 생각해 보자.

주례 사제가 참회 예식을 시작하고 나서 잠간 침묵을 지킨 뒤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하는 기도를 하게 되면 신자들은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를 노래 또는 말로 하게 되지만,
Trope가 달린 다른 양식, 다시 말해서 "진심으로 뉘우치는 사람들을 용서하러 오신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하고 사제가 청원기도를 이끌어 간다면
성가대는 이 자비송(kyrie)을 노래해서는 안 된다(이렇게 되면 자비송을 두번 하는 결과가 된다. 여러 본당에서 가끔 목격할 수가 있었다).
청원기도가 끝나면 곧장 "대영광송"을 노래해야 하기 때문이다.


 Missa - Gloria(대영광송)

대영광송이라 불리어지는 "Gloria"는 성서의 시편과 찬가를 모델로 하여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만들어 사용한 찬미가(Hymn)의 보고(寶庫)로 부터 전해 내려오는 하나의 유산 이다.
이 찬미가는 기쁨의 찬미가이며 그 내용 역시 근본적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내용 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찬미의 노래는 처음으로 희랍과 시리아의 자료들에서 발견되는데 원래는 부활절 새벽 기도의 찬미가로 사용되었고,
점차 동방 교회의 아침 기도의 결론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찬미가는 Gaul을 통해 서방 교회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6세기가 시작될 무렵에 는 이미 Roma 미사 안에서 발견된다.

이 노래는 본래 주교만이 불렀던 것으로 그가 주재하는 주일미사 때나 순교자들의 축일 때에 사용되었다.
사제는 일년에 단 한번 즉 부활 전야 미사 때에만 이 노래를 부를 수 있었는데 11세기 때 부터 사제들도 주일에 거행되는 모든 미사와 축일때 대영광송을 노래하게 되었다.

대영광송은 원래 모든 회중들의 노래였기 때문에 단순하게 작곡되었었다.
그러나 이 찬미가가 화려한 음악작품으로 꾸며지면서 성가대에 의해서 불리어지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우리는 이 찬미가를 부르는데 기본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Missa - Sanctus(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의 이 기도문은 이사야서 6장 2-3절의 환영에서 영감을 받아 쓰여진 것으로 초대 교회는 회당 (Synagogue)예식의 아침 기도 때에 이 기도문을 노래로 불렀다.
아마 이 기도는 유대-그리스도교 신자의 영향을 받아 동방 교회의 성찬 기도에 사용하게 된 것으로 추정되며,
5세기 중엽에는 서방 교회에서도 이 기도문을 일반적으로 받아드려 노래로 불렀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라는 표현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백성들이 부르던 환호송에서 그 전례문을 취한 것이다 (마태 21:9 참조).
6세기 중엽부터 Gaul 지방에서는 이 문장이 '거룩하시도다' 에 이미 합쳐졌고 그로부터 일세기 후에는 로마에서도 하나의 기도로 이루어져 사용되었다.

원래는 '거룩하시도다'가 전체 신자들에 의해 불려졌지만, 중세기 초에 이 기도의 노래는 성가대에 일임되었다.
그 이유는 다른 성가들과 마찬가지로 평민들은 라틴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으며, 예술적인 작품을 전례에 도입하려는 교회와 작곡가들의 노력으로 신자들이 노래부르기에는
너무 힘들었기에 입을 다물게 되고 잘 훈련받은 성가대가 이를 노래하게 되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전례 중에 성가대가 계속해서 이 기도를 노래하는 동안, 사제는 혼자서 성찬기도를 계속했었다.
지금과 같이 사제와 신자들이 함께 '거룩하시도다'를 노래하는 것이 아니고, 사제와 성가대는 각자 다른 기도를 계속한 것이다.
성변화가 이루어진 후에 부르는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Benedictus)이 노래되기 시작하면서 더욱 복잡한 멜로디를 가진 것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Missa - Agnus Dei(하느님의 어린양)

평화의 인사 뒤에 하는 "하느님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라는 기도는 일종의 연도
(도문, litany)로서, 사제가 영성체를 위해 성체를 쪼개고 (fractio panis) 성혈에 작은 성체 조각을 넣을 때 하는 기도이다.
쉽게 말하자면, 사제들의 영성체를 위해 성체를 나누는 동안의 공백을 메꾸기 위한 기도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따라서 이 기도는 전적으로 신자들의 몫이다.

이 기도는 교황 세르지오 1세 (687 - 701)에 의해 로마 미사에 들어오게되었고,
신자들에 의해 노래로 불리어졌지만 장엄하고 화려하게 전례를 꾸미려는 교회와 작곡가들의 노력으로 전례에 사용되는 음악들이 더 이상 신자들이 따라 부르기에는
너무 어렵게 되자 이 기도 역시 성가대에 그 자리를 내어주고 말았다.

그 당시에만 해도 큰 도시에 성당이 그리 많지 않았었고 주일마다 도시의 모든 신자들이 주교와 함께 한 성당에 모여 다 같이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때 많은 사제들도 같이 미사를 봉헌하였기에 fractio panis의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렸다. 그래서 이 기도를 노래하는 방법은 지금과 같이 세 번만 노래부른 것이 아니고,
성체 나누는 시간이 끝날 때까지 몇 번이고 계속해서 노래불렀던 것이다.(교구 신앙대회나 서품식 때, 많은 신부님들이 성체를 나누어 가지는시간을 상상해 보면 조금 이해가 쉬울까요?)

처음엔 이 기도의 응송이 지금 우리가 미사에서 하듯이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였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이 마지막 응답이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로 바뀌게 되었다.
이 마지막 응송은 10세기 부터 삽입된 것으로 9세기 때부터 빵의 나눔 뒤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한 평화의 인사와 연결되다 보니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라고 바뀌었다고 전례음악가들은 생각한다.


[참고자료 : 김종헌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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