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음악 이론
2011.08.19 21:17

그레고리안 이전의 성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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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초창기 성가였던 암브로지오 성가(Canto Ambrosiano), 로마노 안티코(Romano Antico) 그리고 베네벤따노 성가(Canto Beneventano) 에 관해서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그레고리오 성가 이전의 교회음악

가톨릭 교회 성음악의 역사 내지는 기원을 생각하면 우선 떠 오르는 것이 그레고리오 성가다. 수사본은 제쳐두고 라도 라틴어 가사에 4선 음보로 된 그레고리오 성가야 말로 가톨릭 교회 성음악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가톨릭 교회 전례음악의 진주요, 보배라는 격찬을 그레고리오 성가는 듣고 있다. 이 점 본인도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서양음악이 비롯되었다고 음악사가들은 주장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1/3만 동의한다. 그 이유는 다음에 다락방에서 그레고리오 성가를 본격적으로 다룰 때 자세히 언급하겠다.

그런데 그레고리오 성가 이전에는 교회음악이 없었을까? 하는 의문도 가지게 된다. 초기 그리스도인(이를 학자들은 Paleocristiani라고 함)들은 전례를 어떻게 했을까? 전례 중 성가를 불렀다면 어떤 형식이었을까? 의문은 꼬리를 문다. 불행히도 거의 2000년의 역사가 흘러 내려오는 동안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는 대다수의 원본 자료들은 소멸되었거나 또는 남아 있다 하더라도 찾아 내기가 수월치 않은 관계로 이 분야에 대한 연구는 대단히 어렵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한가지 예를 들면 암브로지오 성가가 그레고리오 성가집들인, Antifonarium Romanum, Usualis, Graduale Romanum, Graduale Triplex, Graduale Simplex에서 어떤 형식으로 남아 있는지에 관한 연구들이 1900년대 이후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한 마디로 명쾌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단계에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수사본 연구가들은 한가지 분야에 대해 평생을 다 바쳐 고생해도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고집들 때문에 서양의 학문은 발전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6세기말부터 7세기 초까지 로마 교황을 지낸 성그레고리오가 교황재위 당시 널리 흩어져 있던 교회 성가들을 수집한 다음 다시 전례에 맞도록 정리하여 편찬한 것이 그레고리오 성가의 시작이 된다. 그러나 그레고리오 성가 이전, 벌써 이탈리아 반도에는 교회 성가들이 있었다.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를 중심으로 암브로지오 성가(Canto Ambrosiano), 남부지방 인 베네벤또를 중심으로 베네벤따노 성가(Canto Beneventano), 그리고 중부 지방인 노르치아(이 곳에서 성베네딕토 출생)를 중심으로 로마노 안티코(Romano Antico)성가 등이 불리 워 졌는데 그 시기는 대체로 서기 2세기경부터 6세기 말 까지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학자에 따라서는 위에 언급한 성가들이 그레고리오 성가가 출현하여 보급되기 시작하던 7세기 이후도 수도원 내에서는 물론이고 신자들에게도 널리 불리 워 졌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성가들이 오늘날처럼 본당 또는 교구차원의 공동체 성가라기 보다는 주로 수도원안에서 전례 중에 불려졌고 수사들에 의해 다시 신자들에게 퍼진 것이다.

2. 암브로지오 성가(Canto Ambrosiano)

밀라노 전례의 기틀을 확립한 성암브로지오(Ambrosius Aurelius 밀라노 주교:333년 또는 340년 트레비리에서 출생 - 397년 4월 4일 밀라노에서 선종)에 의해 만들어진 성가를 암브로지오 성가라고 한다.

서기 313년, 그리스도교가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로부터 공식인정을 받은 후 이탈리아에서 그리스도교의 전파는 로마와 밀라노를 중심으로 급속히 팽창된다. 특히 밀라노는 동방 계열인 아리안 인들의 개종이 많았으며 심지어는 동방교회에서 주교까지도 탄생되었는데 성암브로지오의 전임자였던 아우쎈지오(Aussenzio:374년 선종)도 아리안 계통이었다. 따라서 밀라노 교회는 전례에 있어 로마식 외에 동방교회의 전례가 자연스럽게 유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밀라노 주교로 성성 된 암브로지오는 교구 신자들의 신앙심을 더욱 돈독히 하고 그들의 신앙관이 그리스도 중심 안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능동적인 미사 참여를 위해 전례를 더욱 장엄하고 화려하게 발전시켰고 신자들에게 성서의 내용을 보다 쉽게 이해 시키고 또 이를 암기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성가 작곡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전자의 결과로 밀라노 전례가 탄생되었으며 후자로는 가톨릭 교회 성가의 초기 형태인 찬미가(Inno)뿐만 아니라 부속가(Sequenza)를 만들어 전례 중 사용했다. 물론 그 당시의 음악은 고대 그리스 음악의 선법과 유대인들이 시나고가에서 부르던 시편성가 등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암브로지오 성가는 그레고리오 성가와 차이점이 많은데 가장 특별한 점은 멜리스마(Melisma:한 음절에 많은 음표가 규칙적 때로는 불규칙적으로 등장하며 적게는 십여 개의 음, 많게는 수 백 개의 음들이 사용되어 현란한 느낌을 줌)의 차이다. 물론 그레고리오 성가에도 멜리스마가 등장한다. 그러나 암브로지오 성가에 나타나고 있는 멜리스마보다 훨씬 더 규칙적이며 같은 음형이 반복(Centonizzazione)되는 경향이 많다. 그에 비해 암브로지오 성가의 멜리스마는 변화가 많은 다양한 음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느낌을 주고 있다.

특히 알렐루야(Alleluia)의 마지막 음절인 "-ia"에는 거의 의무적이다 싶이 긴 멜리스마가 사용되었다. 지금도 그라두알레 트리플렉스에 수록되어 있는 그레고리오 성가중 알렐루야를 보면 긴 멜리스마들이 사용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부활 대축일 미사 때 알렐루야인 Pascha nostrum은 음절 ia위에 모두 45개의 음이 나타나기도 한다.

(1) 암브로지오 성가의 종류

가) 찬미가(INNO) : 찬미가(INNO)와 찬가(LAUDA)가 어떻게 다른지에 관해서는 밝힐 필요가 있다.

Hymnus(찬미가:이탈리아어로는 Inno(인노)라고 부름)와 Lauda(찬송가 또는 찬가)는 두 가지 모두 야훼를 찬양하는 성가들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맥락이나 전례와 성음악적 관점에서 비교해 볼 때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우선 성음악사 적으로 볼 때, 인노는 4세기 경부터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교구를 중심으로 교회 안에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Lauda는 라틴어의 Laus(찬양, 찬미, 칭송)에 어원을 두고 있는 이탈리아 말이며 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특히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13세기부터 시작해 19세기까지 교회 안팎에서 널리 불리어 졌던 성가다. 그러니까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인노는 라우다보다 약 900년 정도 앞 서 교회전례 안에서 널리 불리워졌던 성가다.

Inno의 가사가 라틴어로만 씌어졌음에 비해 Lauda는 라틴어보다 그 지방의 사투리(이를 교회용어로 Lingua volgare:링구아 볼가레라고 지칭함)가 즐겨 사용되었다. 그리고 Inno는 철저히 교회 또는 수도원 안에서 성무일도등 기도시간 다시 말해 전례 중에 엄격하게 사용되었으나 Lauda는 일반 신자들의 집에서도 자유롭게 불리워졌을 정도로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의 성가였다. 요즘으로 볼 때 생활 성가쯤 되었다고 생각하면 거의 틀림없을 것 같다.

Inno와 Lauda의 음악적 차이점을 알아 보자. Inno는 약 천 여년간의 역사를 내려 오면서 오직 단성부로만 작곡되어 왔으며 단순한 멜로디에 신심을 채워주고 야훼를 찬양하는 긴 절의 성시들이 라틴어로 씌여지는등 형식을 매우 중요시 했다. 반면 Lauda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13세기경, 단성부로 시작된 Lauda는 16세기 중반 이후 8성부까지 다성부의 화성음악으로까지 발전했다. 1570년 로마교구에서 발행한 성가 집(Secondo Libro delle Laudi)에는 3성부에서 최고 8성부까지의 성가곡들이 담겨 있다. 그런데 Lauda의 화성을 보면 중세의 다성음악 폴리포니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폴리포니아의 화성진행이 수평적임에 비해 Lauda는 같은 다성음악이면서도 화성진행이 수직적이었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나라 성가 집에 수록된 성가들의 화성양식과 거의 같다고 볼 수 있겠다. 차이가 난다면 Modalita'(교회화성법)와 Tonalita'(세속화성법)정도라고 보면 틀림없다.

그러면 거의 동시대에 작곡되고 불리워졌으면서도 라우다와 폴리포니아의 화성진행이 왜 다를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 까닭을 알아보자.

라우다가 일반 신자들 중심의 성가였다면 미사곡, 모테트등 폴리포니아는 로마 교황청에서 설립한 Scola Cantorum(7세기 초 성그레고리오 교황에 의해 설립된 교회 성음악 전문 성가대로써 전문 성가대원 육성을 위한 교육을 전담했다)에 소속된 가톨릭 교회 성음악 작곡가들이 (그 중 대표적 인물이 바로 Giovanni Pierluigi da Palestrina 임) 교황이 집전하는 장엄미사에 사용될 곡으로 썼기 때문에 우선 곡의 길이가 길어야 했고 다양한 기법을 사용해 장중하고 화려한 느낌을 주도록 했다. 또한 그레고리오 성가로부터 계속되어 오던 가사의 중요성을 음악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수직적인 화성보다 비화성음이 많이 충돌되는 수평적 화성법을 이용함으로써 주제가 명확히 드러나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교회 성음악 작곡기법은 후일 바하에까지 영향을 주어 비로서 대위법이라는 새로운 작곡기법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서양음악사에서 바하가 대위법을 처음 시도한 음악가로 소개하고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바하 이전에 이미 로마를 중심으로 크게 발전되었던 폴리포니아 음악들중 특히 모테트를 분석해 보면 대위법적으로 작곡되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정리를 해 보면 라우다가 주교좌급 대성당이 아닌 작은 본당에서 일반 신자들 또는 수도원에서 애창되었다는 점에서 볼 때, 우선 쉽게 노래할 수 있어야 된다는 필요성때문에 쉬운 수직적 화성으로 발전되었다. 반면 폴리포니아는 전문으로 교육 받은 성가대원들이 불렀기 때문에 난이도가 수직적 화성보다 월등히 높은 대위법적인 수평적 화성 기법 사용이 가능했다고 본다. 또한 성가의 두 요소인 멜로디와 가사 중 가사의 중요성을 높이기 위해 반복하고 있는데 이는 폴리포니아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Lauda의 첫 시작은 아씨시의 성인 프란체스코였다. 성프란체스꼬는 태양과 자연을 찬미했던 그 유명한 시를 짓고(시 제목:Cantico di Frate Sole/태양형제의 찬가) 그 위에 멜로디를 붙여서 노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은 가사만 남아 있기 때문에 확실한 멜로디는 알 수 없으나 지금도 아씨시에 가면 프란체스꼬 회원들이 저녁기도를 바칠 때 라우다를 노래하는데 매우 단순한 멜로디와 화음이 듣는 이들로 하여금 감동을 자아내게 한다. 성인이 직접 지은 라우다도 그 보다 더 단순했으면 했지 절대로 폴리포니아처럼 복잡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Inno와는 달리 가사도 지방언어를 그대로 사용했고 음악적 형식도 비교적 자유로웠던 Lauda는 16세기 중반, 당시 로마의 살아있는 성인으로 추앙 받던 필립보 네리에 의해 오라토리오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지 하게 되며 이는 다시 피렌쩨로 올라 가서 1598년 이탈리아 오페라의 효시인 다프네(Jacopo Peri 곡)를 탄생시킨다. 세속음악의 대명사인 오페라까지 교회음악에서 파생되어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Lauda를 부를 때는 가사 표현에 매우 주의를 해야 된다. 수직적 화성이다 보니 비화성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가사가 화음에 묻히게 될 경향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가사가 화음에 묻힌다 함은 코랄 식 수직적 화성은 대체로 주 3화음 또는 부3화음을 사용한 까닭에 각 음들간의 배음의 폭이 더욱 커진다. 소프라노 파트가 아무리 소리를 지른다 해도 이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성가대원 들만이 가사가 들릴 뿐이다. 아래층에 있는 신자들의 경우 아는 성가일 때 그래도 가사를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성가대의 화성적인 소리는 잘 들리나 가사는 명확히 들리지 않는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처럼 성당건물을 지을떄 음향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는 풍토에서는 더욱 심하다. 신자들과 같이 노래할 때 가능하면 제창으로 부르라는 권유를 오래 전에 한 적이 있다. 모두 음향과 배음관계에서 비롯되는 문제점과 또한 성가에서 가사가 멜로디보다 한 수 위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 였다. 흔히들 성가는 두 번의 기도라고 말한다. 가사가 성서의 내용이기 때문이지 성가의 멜로디가 아름다워서는 절대로 아니다. 굳이 멜로디를 찾는다면 차라리 베르디나 푸치니의 아리아가 훨씬 더 아름답지 않은가?

나)부속가(Sequenza):가톨릭 전례음악에서 인노와 함께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성가가 바로 부속가이다. 지금 새로 바뀐 전례지침서에서는 부속가에 대한 중요성이 많이 희석되어 있지만 불과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부속가는 알렐루야와 거의 동격으로 취급되었다. 다시 말해 복음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알렐루야를 부른 뒤 다시 복음내용과 맡는 성시 또는 산문에 멜로디를 붙여 노래한 것이 부속가였다. 따라서 부속가를 부를 때는 반드시 일어나야 했다.

부속가를 부를 때 서야 되는가? 또는 앉아야 되는가? 부속가가 알렐루야 전이냐? 후냐? 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전례에 관한 질의응답의 전문 싸이트인 전례학 동호회(http://www.liturgia.org)라는 홈페이지에서 그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해 다룰 문제라고 생각된다. 다만 본인의 성음악 다락방에서는 부속가의 유래와 발전단계 그리고 성음악적인 면에 대해서만 취급하도록 한다.

부속가도 인노와 마찬가지로 밀라노 전례의 시조로 일컫는 성암브로지오에 의해 처음 전례 안에 삽입되었다. 성암브로지오는 복음을 더욱 장엄하게 선포하기 위해 복음과 알렐루야 사이에 부속가를 더 만들었는데, 초창기에는 부속가가 두 개가 있었다. 처음 부속가는 알레루야 전에 불렀고 두 번째 부속가는 알렐루야 다음에 불렀다. 부속가 - 알렐루야 - 부속가 - 복음으로 이어지는 전례가 부속가 없이 알렐루야 - 복음으로 이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장엄했음은 우리가 느낌으로 알 수 있다.

실제로 16년 전쯤, 당시 본인이 아직 교황청 성음악 학교에 적을 두고 있을 때, 밀라노에 간 적이 있었다. 당시 마지막 학년이었던 본인은 그레고리오 학과 학생들과 함께 성암브로지오 대축일 밤, 밀라노에 있는 암브로지오 성당에서 밀라노 전례를 실제로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복음 전 부속가를 두 개 불렀는데 평소 로마식 전례에 젖어 있던 본인에게는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했던 미사보다 훨씬 더 강한 충격적인 감동을 받았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그 때 미사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이 본인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복음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성가(부속가)의 역할이 그렇게 중요한지를 피부로 직접 경험했던 것이다.

성암브로지오는 알렐루야(Alleluia)의 마지막 음절인 "-ia"위에 있는 멜리스마적인 음들에서 기본음들만 발췌해 간단한 멜로디를 구성하고 다시 성시를 가사로 붙여 놓았는데 이것이 바로 부속가의 효시가 된다. 그리고 이 성가가 알렐루야에서 인용되었다고 해서 라틴어의 "Sequens(그 다음, 이어서라는 뜻)"를 사용해 "Sequentia(이탈리아어로는 Sequenza)"로 명명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부속가는 밀라노에서 처음 시도되었지만 10세기 이전까지는 인노와 그레고리오 성가의 후광에 가리어 이탈리아 안에서는 큰 발전을 하지 못했다.

성암브로지오 이후 부속가는 이탈리아에서 보다 스페인으로 건너가 그 곳에서 발전을 했는데 그 때가 약 6세기경으로 밝혀지고 있다. 지금도 모자라비꼬 수사본에는 부속가 수 십편이 남아 있다. 그리고 다시 이 부속가는 갈리아 지방(지금의 프랑스 남부)으로 전파되었다가 10세기 경 스위스의 상갈렌에 있는 분도회 수도원으로 다시 전파되었고, 이 때부터 비로서 부속가는 정형적인 산문시의 규칙적 운율을 가지고 정리된 것이다.

부속가의 전파과정을 다시한번 정리해 보면 이탈리아(밀라노)-스페인-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로마)다.

서양 음악사에서 일부 학자들은 상갈렌 수도원에서 전례음악 책임수사 였던 Notkero Balbulo(912년 선종)가 부속가를 최초로 시도한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수사본들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중세기 이후 부속가는 인노와 함께 교회 안팎에서 크게 유행했다. 그러면서 원래의 전례용 또는 교육용이라는 목적을 상실하고 일종의 대중가요처럼 번진 것도 사실이었다. 중세기 교회음악사를 보면 세속음악이 가사만 탈바꿈하여 미사곡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이와 반대로 미사곡이 가사를 바꾸어 세속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지금도 유명히 알려져 있는 Palestrina의 미사곡 Sine Nomine의 주제는 당시 이탈리아에서 크게 유행했던 사랑의 연가 마드리갈에서 따 온 것이다. 지난 1970년 대 한국에서 크게 유행했었던 대중가요 "사랑해 당신을"이라는 멜로디가 가사만 바꾸어 미사곡으로 사용했다고 가정해 보자. 신자들은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하고 미사곡을 부르고 있지만 사랑해 당신을 이라는 유행가 멜로디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유형의 성가들은 세 차례에 걸쳐 계속되었던 트리엔트 공의회(1545-47, 1551-52, 1561-63)에서 된서리를 맞았다. 당시 공의회에서는 미사곡 특히 Kyrie와 Agnus Dei 앞에 긴 성시를 먼저 노래했던 Troppi(뜨로피)들을 모두 삭제했다. 그리고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전례를 재정리했던 교황 비오 5세때 부속가들 거의 대부분이 없어지고 대신 네 곡만 남게 되었다. 지금 트리플렉스에 수록되어 있는 Stabat mater dolorosa는 1668년 성모님 고통을 현양하는 미사(septem dolororum B.M. Virginis)에 삽입되었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교회 전례음악 분야는 얻은 것 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는데 이에 대해서는 후일 본인의 성음악 다락방에서 교회 음악사 과정에서 보다 자세히 언급될 것이다.

현재 남아있는 부속가들에 대한 소개를 하면 다음과 같다.

1. Victimae paschali laudes : 헨리 3세의 지도 신부였던 Vipone(1000-1046)가 작곡했으며 원본은 아인시델른 제 336번 수사본에 있다. 성모님과 막달레나의 대화체로 씌여 있는 성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 부속가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으며 중세기 때는 이 곡을 테마로 사용해 성극(Dramma liturgico)도 했다고 한다. 성극은 독일지방에서 크게 유행했었으며 이 부속가는 지금도 부활 대축일 미사 때 부르고 있다.

2. Veni Sancte Spiritus : 이 곡은 성령강림 대축일 미사 때 부르며 작곡자는 켄터베리의 대주교였던 Stephan Langton(+1228)으로 밝혀져 있다.

3. Lauda Sion Salvatorem : 가톨릭 교회의 대 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지은 성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작곡자는 불분명하나 이 곡과 매우 흡사한 "Laudes crucis attollamus"를 작곡한 Adam de St. Victor일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이 부속가는 후일 성체와 성혈 대축일이 선포되면서 대축일 미사전례 시 부르도록 했다.

4. Dies ira dies illa : 이 부속가는 위령미사 때 부른다. 작곡 미상으로 되어 있는 이 곡은 성 프란체스꼬의 친구로서 성인의 자서전을 썼던 첼라노의 톰마소(Tommaso da Celano +1256)수사에 의해 크게 전파되었다. 그리고 나폴리 국립 도서관과 몬테 카시노 도서관에 12세기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부속가의 일부가 발견되기도 했다. 그런데 현행 로마 미사 지침서에서는 이 부속가를 삭제하고 대신 "Laeta dies"로 교체했다.

5. Stabat mater dolorosa : 이 부속가는 또디의 야꼬뽀네(Jacopone da Todi)에 의해 1303년에서 1306년 사이에 작곡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14처 기도 행렬 시 부르는 고통의 어머니는 제 2선법으로써 13세기경 부터 Via crucis(14처 기도)를 할 때 불리 워 진 것이다. 그리고 이 부속가는 17세기 중엽 이후 교회전례 안에서 부르도록 허락되었다.

원래 부속가는 성가대와 회중, 또는 독창자와 회중이 다 함께 부르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이미 극에 달해 있었던 그레고리오 성가의 쇠퇴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자국어 미사를 허용함에 따라 라틴어의 사용빈도가 교회전례 안에서 줄어지면서 그레고리오 성가는 더욱 침체되었다. 따라서 부속가를 성가로 부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며 특별한 그레고리오 성가 교육을 받지 못했고 접해 보지도 들어 보지도 못한 일반 신자들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 대축일과 성령강림 대축일 부속가는 반드시 노래로 불러야 한다는 교황청 전례 지침이 있으나 사실 이를 그대로 따르는 교회는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런데 1972년 교황청 전례위원회에서 발표한 규정 집을 보면 부속가는 성가대와 독창자 또는 성가대를 둘 로 나누어 서로 교송형태로 부를 수 있다고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상기 규정 집에서는 부속가를 알렐루야 바로 전에 부르며 앉아서 불러야 한다고 못 박아 놓았다. 부속가가 알렐루야에서 비롯되었다는 전례사적 의미를 완전히 무시한 처사다. 부속가는 제 2 독서와 전혀 관계가 없다. 실기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는 이론가들의 탁상머리 전례논쟁이 빚어 낸 과오였다고 본인은 주장한다. 따라서 로마를 비롯해 유럽의 성음악 학자와 뜻 있는 일부 전례 학자들은 교황청 전례위원회를 상대로 부속가를 다시 예전 위치로 되찾아야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부속가는 알렐루야 다음에 부르며 일어나야 하고 끝에 아멘과 알렐루야를 노래하도록 말이다. 그와 함께 삭제해 버린 "Dies ira dies illa"도 다시 복원시킬 것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노력들이 언젠가는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로마 전례가 뿌리 깊은 로마의 본당들에서 부활 대축일 미사 때 부속가를 알렐루야 다음에 부르고 있으며 아멘과 알렐루야로 종결하고 있는 본당들이 제법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내 년 부활 대축일 미사 때는 적어도 독창자와 성가대가 부속가를 올바로 부르고 이를 듣는 신자들이 감명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라틴어로 부르는 것이 원칙이나, 우리말로 개사해서 부르는 것도 일반 신자들의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다.

(2) 암브로지오 전례

밀라노 전례를 따로 암브로지오 전례(La Liturgia Ambrosiana)라고도 부른다. 로마 교황청에서 인정하는 전례양식은 크게 두가지가 있다. 전자는 로마식 전례이며 후자는 밀라노 전례이다. 한국 가톨릭 교회는 로마식 전례를 따르고 있다.

로마식 전례와 밀라노 전례에서 크게 다른 점은 미사다. 성무일도는 두 전례 모두 거의 같은 양식을 가지고 있다. 로마식 전례에서 입당송을 "Introito"라고 부르는데 반해 밀라노 전례에서는 "Ingressa"라고 부른다. 로마식 전례에서는 입당송을 주례사제가 나올 때 부르기 시작하고 그레고리오 성가를 보더라도 입당성가 마지막에 시편의 후렴구를 부르도록 되어 있으나 밀라노 전례는 입당성가를 주례사제가 제단에 도착한 후 부른다. 그리고 입당성가는 안티포나 형식으로 시편을 후렴구로 동반하지 않는다. 동방교회에서는 미사전례 중 입당예식을 매우 성대하게 하고 있는데 이 점은 밀라노 전례도 거의 동일하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입당성가 후, Litania(모든 성인들의 호칭 기도)를 부르기도 한다.

입당예절이 끝나면 곧바로 로마식 전례에서 Gloria(대영광송)에 해당되는 Laus Angelorum(천사들의 찬양)을 부르며 노래가 끝나면 바로 이어서 Kyrie를 세 번을 부른다. 그러니까 Kyrie가 로마식 전례에서는 Ordinarium(미사 통상부분)에 속하나 밀라노 전례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Kyrie는 복음선포 후와 영성체 후 다시 세 번을 반복해서 부른다.

말씀의 전례를 보면 제 1 독서에서는 예언서(성인들의 축일 시는 축일 고유문으로 대체됨)가 낭독되고 이어서 그레고리오 성가의 Graduale(층계송)에 해당되는 Psalmellus(시편송)가 교송형식으로 불려진다. 제 2 독서는 서간문을 낭독하며 이어서 그레고리오 성가처럼 알렐루야를 부르는데 알렐루야 대신 post epistolam(서간문 후)라고도 부른다. 알렐루야 다음으로 복음을 읽기 전과 읽은 후 각각 안티포나를 부르는데 복음 전 안티포나를 ante evangelicum(복음전), 복음 후 안티포나를 post evangelicum(복음후)이라 한다.

봉헌송은 밀라노 전례에서도 로마처럼 Offertorium이라고 부르며 성가 형식도 그레고리오 성가와 같다. 다만 Credo의 경우 밀라노는 Symbolum(상징)이라고도 부른다.

Sanctus(거룩하시도다) 역시 로마와 같으며 그 후 암브로지오 전례 특유의 성가들이 불려진다. 제단 위에 놓여진 빵을 주례사제가 자를 때 부르는 성가를 confractorium(꼰프락또리움)이라고 부르며 로마식 전례의 영성체송(communio) 대신 부르는 성가를 transitorium(뜨란시또리움)이라 한다.

로마식 전례의 그레고리오 성가에서는 미사의 변하지 않는 통상부분(Ordinarium)이 "Ite missa est"(미사가 끝났습니다) 까지 포함해 모두 6개 이나 암브로지오 전례에서는 3개, Gloria, Credo, Sanctus만이다. 1913년 발간된 밀라노 전례서에 따르면 Agnus Dei와 Benedicamus Domino가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많은 전례 학자들은 그 멜로디가 Kyrie와 같다는 점을 들어 Agnus Dei는 밀라노 전례의 통상부분에 속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3) 암브로지오 성가의 특징

암브로지오 성가를 그레고리오 성가와 비교해 볼 때 여러 가지 점에서 차이가 뚜렷이 나타난다. 시편송의 낭송부분에서 그레고리오 성가가 5도 음정을 주로 사용했던 반면 암브로지오 성가는 4도 음정의 사용이 빈번하다. 한편 모든 성가에서 cadenza(종결부분)을 보면 의외로 매우 단순한 점이 암브로지오 성가에서 많이 나타난다. 최고 3도 이상의 음정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예를 들면 RE-MI-FA-RE, 또는 LA-SI-DO-LA의 단조로운 형식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알렐루야와 봉헌송등에서는 그레고리오 성가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음정의 변화가 많은 멜리스마를 사용하고 있다. 이 경우 암브로지오 성가는 성가대 또는 회중이 함께 노래하기 보다는 독창자에게 노래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특별히 잘 훈련된 독창자만이 노래할 수 있을 정도로 길고 음정의 변화가 심한 멜리스마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때는 2도 음정도 빈번히 사용하고 있다.

바로 위와 같은 사실때문에 후세 음악학자들은 암브로지오 성가의 특징을 "단순한 곡은 매우 단순하며 복잡한 곡은 매우 복잡하다"고 정리를 한 것 같다.

그레고리오 성가에서는 전례 중 안티포나를 부를 때 안티포나 한 개에 시편이 계속되나 암브로지오 성가의 경우 두 개의 안티포나를 부르며 한 개의 시편이 후창으로 부르도록 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그리고 Psalmo Responsorio의 경우 그레고리오 성가는 응답부분(Responso)이 시편과 계속 연결되고 있으나 암브로지오 성가의 경우 응답부분이 없이 시편만 계속 낭송되고 있다.

3. 로마노 안티꼬(Romano Antico) 성가

로마노 안티꼬(Romano Antico) 성가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로마식 전례에서 가장 오래 된 전례성가다. 이 성가를 다른 말로도 표현하고 있는데 "Canto basilicale"(대성당의 성가), "Canto-ante-gregoriano"(그레고리오 이전 성가), "Canto vecchio romano"(로마 옛 성가) 또는 "Canto paleoromano"(초기로마성가)등이다. 이러한 명칭들은 수사본들에 기록되어 있는데 학자들 대부분은 로마노 안티꼬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학자들에 따라서 로마노 안티꼬 성가가 로마식 전례에서 불려지기 시작한 때는 약 2세기 경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그레고리오 성가가 체계를 확립했던 7세기 초부터는 더 이상 로마노 안티꼬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주장과 11세기 이전 로마 교회에서 불리워 졌던 모든 성가들을 로마노 안티꼬 성가로 간주하는 학설도 있다. 그러나 양 쪽 모두 확실한 증거를 제시할 만큼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자료는 거의 없다. 다만 8세기 부터 11세기 때까지의 수사본들의 연구를 통해 로마노 안티꼬 성가의 윤곽을 정리해 가고 있는 실정이지만 수사본들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은 까닭으로 연구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성가의 명칭이 비록 로마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이 성가의 탄생지는 이탈리아 중부에 위치한 노르치아(Norcia) 지방이라는 학설도 있으며, 전파 지역도 스위스의 상갈렌을 포함해 독일, 프랑스, 영국까지 로마노 안티꼬 성가는 크게 알려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 성가는 그레고리오 성가가 이미 체계화되었던 8세기에도 로마 교황청의 공식성가 였다는 주장도 나와 있다.

(1) 로마노 안티꼬와 그레고리오 성가의 차이점

로마노 안티꼬 성가는 곡의 처음 시작부분의 음정이 2도에서 3도를 주로 사용하고 있는데 비해 그레고리오 성가는 5도 이상의 음정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입당송(Introitus)에서, "Factus est Dominus"(그라두알레 트리플렉스 p.281), "Iustus es Domine"(G.T. p.332), "Da pacem"(G.T. p.336), "Statuit ei Dominus"(G.T.p445)를 보자.

그레고리오 성가는 모두 "레-라-시b-라"의 음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반해 로마노 안티꼬 성가는 "라-시"의 두 음으로 구성된 뻬스만 반복되고 있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비잔틴 음악의 영향을 받았던 암브로지오 성가와 마찬가지로 곡의 도입부분에서 4도 내지는 5도와 6도의 음정을 사용함으로써 선율적 움직임이 많도록 하여 성가 표현의 다양함을 추구했던 것에 비해 로마노 안티꼬 성가는 뿡뚬(Punctum: 한 음으로 된 음표), 뻬스(Pes:두 음의 음표), 또르꿀루스(Torculus:세 음의 음표)를 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성가의 시작부분이 매우 단순하고 곡의 흐름도 단조로운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나 로마노 안티꼬도 그라두알레(Graduale:화답송)에서는 그레고리오 성가와 마찬가지로 후렴과 응송 마지막 가사 음절 위에 긴 멜리스마의 음군이 나타난다. 그런데 로마노 안티꼬 성가의 그라두알레를 분석해 보면 멜리스마가 사용된 곳의 선율이 비슷한 형태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그라두알레 "Uxor tua(fol.139)"의 응송 마지막 가사인 tue에서 "-e"의 음절에 나타나고 있는 음들을 보면, "레-도, 미-레-도, 미-레-도, 미-파-레-도-도-시-라-솔" 의 음들이 선율적 구성을 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유사한 진행들이 다른 곡들의 멜리스마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유사진행을 "첸또니자찌오네(Centonizzazione)"라고 하는데 이는 그레고리오 성가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는 반면 암브로지오 성가에서는 그 사용 예가 극히 드물다.

(2) 로마노 안티꼬 성가의 음악적 특징

유럽에서 로마노 안티꼬 수사본 연구의 대표적 학자인 이탈리아의 보니파치오 바로피오(Bonifaccio Baroffio: 전 교황청 성음악 대학 학장)의 주장에 의하면 한마디로 지방색이 강하고 매우 서민적(provincilale e folkloristico)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로마노 안티꼬 성가가 로마 교황청이라는 막강한 위력을 뒷 배경으로 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식 전통보다는 전파되어진 지방에서 토착화가 쉽게 되었다는 것이 Baroffio의 주장이다. Baroffio는 "로마노 안티꼬 성가의 선율적 특징"이라는 그의 학술 논문에서 이 성가가 본고장인 로마에서는 음정의 순차적 진행(gradi congiunti)이 멜로디에 주로 사용되었음에 비해 독일과 프랑스 지방에서는 도약진행(intervalli disgiunti)의 음정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수사본들의 연구대상들 중 그레고리오 성가와 암브로지오 성가는 원본에 가까운 자료들이 발견되어 연구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반면 로마노 안티꼬 성가는 자료 부족으로 인해 연구의 어려움을 겪고 있음은 이미 언급하였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체계적 기틀을 확립시킨 성그레고리오 교황이 암브로지오 성가와 로마노 안티꼬 성가를 과연 어떻게 그레고리오 성가의 범주 안에 삽입시켰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집고 넘어가야 될 난제들 중 하나라고 본다.

어차피 그레고리오 성가가 한 개인 또는 여러 명의 음악가들에 의해 새로 작곡되어진 곡들 보다는 당시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 전역에 흩어져 있던 수도원 또는 교구 중심의 성가들을 채집하고 다시 전례에 맞도록 취사선택 되었다는 관점에서 지금 우리가 부르고 있는 그레고리오 성가가 이름만의 그레고리오 성가인지 아니면 암브로지오 성가, 로마노 안티꼬 성가, 모자라비꼬 성가, 갈리아 성가, 베네벤따노 성가 또는 아뀔레아 성가에서 발췌된 것인지에 대한 연구가 시급하나 워낙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며 또한 수사본을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만이 가능한 작업이기 때문에 이 분야는 성음악 또는 전례음악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이들에게 해결해야 할 큰 과제를 남겨주고 있다.

4. 베네벤따노 성가 (Canto Beneventano)

베네벤따노 성가는 이탈리아 남부 베네벤또 지방을 중심으로 불려졌던 전례성가다. 이 성가는 7세기 초부터 시작되어 11세기 까지 로마 가톨릭 교회 전례에서 사용되었다. 로마노 안티꼬 성가와 마찬가지로 이 성가는 수사본 자료의 희귀성 때문에 연구의 어려움을 겪어 왔으나 다행히도 20세기 초반에 10세기에서 13세기 사이로 추정되는 수사본 12개가 발견되어 그 때부터 연구작업이 활발히 이루어 지고 있다. 베네벤또 교구청 도서관에서 발견되었던 수사본인 Missale Antiiquum(옛 미사경본)은 10세기때의 것으로 가장 오래된 것으로써 그 안에 70 여개의 성가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수사본들이 세기를 거치면서 지역별 또는 수도원별로 특징적인 기호음표(Notazione semiologiuco)들로 변형되었으나 베네벤따노 수사본은 원형 그대로 표기되어 있어 10세기 이전 음표를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치를 인정 받고 있다.

3세기 이후 이탈리아에서 가톨릭 교회의 전례 중심지는 로마와 밀라노였는데 베네벤또 역시 전례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후세의 전례 학자들은 이탈리아의 3대 전례 중심지로 로마와 밀라노 그리고 베네벤또를 꼽고 있다.

베네벤또 성가는 암브로지오 성가와 그레고리오 성가 그리고 비잔틴 성가의 영향을 크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발견되어진 수사본에 의하면 선율이 매우 단순한데 특히 뻬스와 클리비스 등 두 음으로 구성된 네우마 음표를 빈번히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전반적인 성가의 단순한 흐름에 비해 사용된 기호 음표는 그 종류가 매우 많으며 한편으로 다른 수사본들인 상갈렌, 라온, 아인시델른 등과 비교해 볼 때 모양 역시 독특하다. 예를 들면 한 개의 음표를 나타내는 비르가(virga)와 뿡뚬(punctum)의 경우 다른 수사본 들에서는 둘 내지는 세가지 종류 밖에 없으나 베네벤따노 수사본은 비르가만 스물 아홉 가지의 종류가 있고 뿡뚬은 스물 네 가지나 된다. 그리고 수사본에서 표기되어 있는 전체 네우마를 종류별로 분석하면 375 가지로써 현재까지 발견된 수사본들의 기호 음표들 중 가장 많은 종류를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그레고리오 성가 이전에 이탈리아를 비롯해 그 주변국들에서 불려졌던 초창기 성가들에 대해서 알아 보았다. 다음 시간부터는 그레고리오 성가의 시작과 음표(네우마) 사용법, 창법, 선법, 반주법, 지휘법 들에 관해 차례로 자세히 소개하려 한다.

본인이 강의 중 계속 역사적 사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까닭은 지금 다시 옛 날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 교회의 전례 성음악에 대한 시작과 발전과정에 대한 지식을 습득함으로써 지금 우리 교회가 안고 있는 성음악 토착화 문제라던가 전례 음악의 바른 사용 그리고 이왕이면 성가를 새로 작곡할 때 보다 더 교회적인 접근방법으로 시도 해 보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성가집에 수록되어 있는 성가만이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항상 우리 주위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으시고 현존해 계시듯 성가도 얼마던지 새로 지을 수 있다.

새로운 노래를 주님께 불러 드려라라는 시편 구절대로 교회음악을 사랑한다면 성가를 작곡함에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성가를 부름에도 부지런해야 할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교회정신이라는 용어가 사방에서 인용되고 있다. 성음악 분야도 예외는 아니라고 본다. 본인이 알고 있기에는 한국 천주교회내에도 전례 성음악을 로마 또는 독일 등지에서 전공하신 분들이 제법 있는 것으로 안다. 그 분들의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기대하면서 마친다.

아래에 상기 3개 수사본의 예를 올려 놓았다. 로마노 안티꼬와 베네벤따노 수사본들은 원래의 형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암브로지오 성가는 10세기 이후 남부 유럽지역에 있던 분도회 수도원에서 다시 수사본으로 만든 것이다. 따라서 수도원들 마다 독특한 표기법으로 인해 같은 네우마라도 서로 다르게 표기된 음표들이 상당수 보인다

*참고문헌및 도서목록:

1. Fonti E Paleografia del Canto Gregoriano / Huglo, Agustoni, Cardine, Caglio

2. MSS. Romano Antico(Cod. Vat. lat. 5319)

3. MSS. Beneventano(Bibl. Capitolare VI 33, V.38 e VI 40 )

4. Storia del Canto Gregoriano / A.F.Ernetti

5. Musica Liturgia / V. Donella

6. Graduale Triplex, Romanum e Simplex

7. Usualis

8. Encl. Ut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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