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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3 00:12

Palestrina - Missa Papae Marcelli, Missa Brev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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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lestrina - Missa Papae Marcelli, Missa Brevis의 미사 작품세계를 찿아 보았습니다

앨범소개 해석을 하다보니 잘 정돈된 내용이 있어 올립니다

지오 반니 피에르 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
(Giovanni Pierluigi da Palestrina, 1525~1594)
 
팔레스트리나 (Giovanni Pierluigi da Palestrina)
직   업 :  르네상스 시대 작곡가.
국   적 :  이탈리아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근교 팔레스트리나
활동년도 :  1525경 로마 근처 팔레스트리나 - 1594년 2월 2일 (로마)
 
105곡 이상의 미사곡과 250여 곡 이상의 모테트를 작곡한 대위법 음악의 대가이다.
팔레스트리나는 가톨릭의 반종교개혁이 진행중이던 시대에 살았으며 16세기 교회음악의 보수적인 경향을 대표하는 작곡가였다.
 
[ 팔레스트리나의 생애 ]
조상 대대로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 로마 근처로 이사했다.
1537년 산타마리아마조레의 바실리카에서 소년 성가대원으로 있었으며 1537~39년 그곳에서 음악을 공부했다.
1544년 고향의 마을 성당에서 오르간을 연주하고 성가대원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급료는 참사회원의 수준과 같았으며 돈과 물품으로 지급되었다.
그곳 교회에서의 그의 업적은 조반니 마리아 키오키 델 몬테 주교(뒤의 교황 율리우스 3세)의 주목을 끌었다.
 
1547년 루크레치아 고리와 결혼했고 그들 사이에서 로돌포·안젤로·이지니오 세 아들이 태어났지만 막내 아들만이 그보다 오래 살았다.
1551년 로마로 돌아와서 율리우스 교황의 부속성당 성가대의 음악감독이 됨으로써 교황에게 봉사하는 그의 첫번째 직책을 얻어
성베드로 성당의 음악을 책임지게 되었다. 30세가 되기 전에 율리우스 3세에게 헌정한 첫번째 미사곡집(1554)을 출판했다.
다음해 교황청 성가대의 가수가 되었으며, 이무렵 교황청 부속성당의 작곡가가 되었다.
팔레스트리나는 교황의 명예를 기리는 미사곡을 작곡함으로써 교황의 후원에 보답했다.
그는 자신의 음악에서 세속적인 면을 배제하지 않았는데, 불행히도 1555년 첫번째 마드리갈집이 나왔을 때 관대했던 율리우스 3세가
물러나고 종교적으로 엄격한 성향의 파울루스 4세가 즉위하게 되었다.
새 교황의 포고령에 의해 결혼한 남자가 교황청의 성가대에서 봉사하는 것이 금지됨으로써 그는 보상으로 지급된 적은 액수의
연금을 받고 동료 2명과 함께 해고되었다.
그후 5년 동안 산조반니라테라노 성당의 성가대를 지휘했지만 그의 노력은 언제나 몇 안 되는 형편없는 자질을 지닌
가수들에 의해 좌절되고는 했는데,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이 성당이 음악을 위해 지출할 수 있는 돈이 극히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시 13세 정도였던 맏아들 로돌포를 성가대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산조반니라테라노 성당의 공식 기록에는 1560년 7월 팔레스트리나와 아들이 갑자기 떠난 것으로 되어 있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 몇 년을 보낸 후 1561년 3월 산타마리아마조레에 새 직책을 갖게 되었으며 그 직책에 만족했던 그는 그곳에서
7년을 머물렀다. 이폴리토 데스테 추기경의 초청을 받아 로마 근교의 대중적인 여름 휴양지인 티볼리에 있는 저택에서
데스테가의 음악을 맡게 되었다. 그는 추기경 밑에서 4년을 일했으며 아울러 그 기간 동안 새로 설립된
세미나리움 로마눔(로마 신학교)의 음악 교사로 일하기도 했다. 아들 로돌포와 안젤로도 이 학교의 학생이었다.
1568년 빈에 있는 황제 막시밀리안 3세의 궁정에서 음악감독이 되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급료가 낮은데다 로마를 떠나고 싶지 않아 이 제안을 거절했다. 1583년 만토바 궁정에 초청되었을 때 그의 채용 조건은 아주 좋았다.
작곡가이자 다소 허세부리는 아마추어 음악가였던 만토바의 굴리엘모 곤차가 공과 친구가 되었으며
산타바르바라에 있는 그의 부속교회를 위한 특별한 작품을 위촉받았다.
1571년에는 1555년 이래로 바티칸의 음악감독이었던 작곡가 조반니 아니무차의 죽음으로 옛 직위인 율리우스 교황청 성가대의
음악감독으로 복귀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그가 돌아오기를 열망했던 총회측에서는 급료를 올려주었고 그는 당장 성베드로 대성당으로 돌아왔다.
작곡가로서의 그의 명성이 높아지자 산타마리아마조레가 그를 재고용하려 했으며 성베드로 대성당은 급료를 다시 올려주어야만 했다.
로마의 가장 뛰어난 음악가로서의 위치를 인정받은 그는 1578년 바티칸 바실리카 악장의 직책을 받게 되었다.
1570년대말 중부 이탈리아를 휩쓴 유행병으로 아내와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지녔던 위의 두 아들이 죽었고 그 자신도 심하게 앓았다.
아내를 잃은 슬픔으로 성직자가 되려는 결심을 밝혔고,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기뻐했으나 참사회원이 된 후 그는 부유한 상인의 미망인인 비르지니아 도르몰리와의 결혼(1581)을 위해
서약을 깨뜨렸다. 비록 그녀의 재산을 관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기는 했지만 그는 성베드로 대성당의
직책을 고수하면서 작곡도 계속했다.
1585년 교황청 성가대의 음악감독에 오르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봉사했던 모든 교황들은 그를 성가대의 공식 작곡가로 인정했으며 성베드로 대성당의 광장에 커다란 이집트식
첨탑을 세울 때 팔레스트리나가 교황청 성가대의 선두에 서서 행진했다는 기록도 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팔레스트리나와 안니발레 초일로에게 보다 정통적인 형식을 사용해 단성성가를 복원시킬 것을 명했다.
이들의 작업은 높은 평가를 받았고, 결국 팔레스트리나의 작업은 창작 음악의 흐름에 길을 열어주었다.
그중의 상당 부분이 그의 생애의 마지막 12년 동안 출판되었으며 그때 출판된 책 가운데는 모테트·미사곡·마드리갈집이 포함되었다.
아울러 그는 '베르투오사 콤파냐 데이 무시치'라는 직업적인 음악가협회의 설립에도 기여했다.
죽기 2년 전 새로운 교황 클레멘스 8세는 그의 연금을 올려주었으며 같은 해 동료 작곡가들은 그들의 선배에 대한 존경과
찬사의 표시로 그를 기리는 16곡의 베스퍼스(아침기도) 시편 성가를 작곡했다.
이에 답하여 팔레스트리나는 그들에게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너희가 내가 가르친 대로 행한다면 너희는 나의 벗이다"라는
가사가 붙은 모테트 〈보스 아미치 메이 에스티스 Vos amici mei estis〉를 작곡해 답례했다.
 
 
[ 음악 ]
팔레스트리나의 작품은 그 숫자가 엄청날 뿐만 아니라 세속작품이나 종교작품 모두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105곡의 미사곡들은 서로 다른 양식들로 작곡되었으며 성부의 숫자도 4~8성부로 다양하다.
테너 성부에 정선율을 두는 오랜 기법은 〈Ecce sacerdos magnus〉·〈L'Homme arme〉·〈Ut, re, mi, fa, sol, la〉·
〈Ave Maria〉·〈Tu es Petrus〉·〈Veni Creator Spiritus〉 등의 미사곡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 제목은 그 작품에 사용된 특정 정선율의 출처를 말하고 있다.
대위법에 대한 그의 뛰어난 솜씨는 그의 몇몇 카논 미사에 잘 나타나 있다.
단성성가의 선율을 작품의 구조 속에 용해시켜 자유롭게 작곡된 다른 성부와 거의 구별되지 않게 하는 데 뛰어난 재질을 발휘했는데,
이것은 찬송을 주로 한 그의 몇몇 미사곡 속에서 분명히 보여진다.
그가 미사곡에서 가장 즐겨 사용한 기법은 새로운 작품의 창작을 위해 자신이 이전에 작곡한 음악이나
다른 사람들의 음악을 기점으로 삼는 패러디 기법이며,
그밖에 많은 미사곡들 중에도 그의 선배나 동료 작곡가들의 음악적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이 있다.
만토바 공을 위해 작곡한 9곡의 미사곡 중 영광송과 신앙고백송에서는 단선율로 된 단성성가와 다성음악을 시종 교대로 등장시키는
기법을 사용했다. 마지막으로 적지만 중요한 미사곡 유형은 음악적 소재도 완전히 독창적인 자유로운 양식의 미사곡인데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곡은 4성부를 위한 〈미사 브레비스 Missa brevis〉이다.
현존하는 250여 곡 이상의 모테트들은 미사곡만큼이나 다양한 형식과 양식을 갖고 있다.
미사곡과 비교할 때 단성성가를 기초로 작곡된 모테트는 그다지 많지 않고,
대부분 분명한 형식을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미사 가사의 형태를 반영하기도 한다.
그러나 상당수의 모테트들은 미사곡만큼 성공적인 솜씨로 단성성가를 패러프레이즈하고 있다.
〈Cum ortus fuerit〉·〈Accepit Jesus calicem〉 등의 모테트들은 카논 미사곡과 같은 차원이며
〈Accepit Jesus calicem〉은 분명히 작곡가가 가장 좋아했던 작품이었다.
이러한 가정은 지금 바티칸에 있는 초상화가 이 작품의 사본을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사실에서 뒷받침된다.
솔로몬의 〈아가〉에서 가사를 취한 29곡의 모테트들은 '마드리갈리즘'(마드리갈에서 즐겨 사용한 음화 기법)의 많은 보기들을 제공하고 있다. 생생한 시각적 형체를 떠올리게 하는 암시적인 악구의 사용은 청각과 시각 모두에 분명하게 느껴진다. 봉헌송에서 그는 대개 최상성부에 전통적인 선율을 패러프레이즈시켰던 찬미가와는 달리 전통적인 정선율 기법을 버리고 자유로운 양식의 작풍을 보여주었다. 〈예레미야 애가 Lamentations of Jeremiah〉에서 히브리어 가사를 갖는 부분과 라틴어 가사를 갖는 부분을 효과적으로 대비시켰는데 전자는 멜리스마 양식(유려하게 흐르는 듯 노래하는 양식)으로, 후자는 보다 단순하고 엄숙한 양식으로 작곡했다.

그의 성모찬가(마그니피카트)들은 주로 8곡으로 이루어진 4부작인데 그 각각은 여덟 '음' 중 하나의 음에 기초했다.
이러한 알테르나팀(중세 후기부터 미사음악에서 사용된 단성성가와 다성음악이 교대로 이어지는 수법) 구조는
이미 만토바 미사에서 사용했던 것이다.
그의 마드리갈은 일반적으로 그의 종교음악만큼 관심을 끌 만한 것은 못 되지만 동시대 작곡가들의
어떤 작품에서도 찾을 수 있는 회화적이고 목가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
대화체로 된 소네트를 마드리갈 형식에 도입한 초창기 실험이 특히 의미가 있는데
그 대표적인 작품인 〈Vestiva i colli〉는 이후 자주 모방되었다.
페트라르카의 시에 곡을 붙인 작품도 매우 높은 평판을 얻고 있다.
 
 
팔레스트리나가 이탈리아 다성음악의 정점을 대표한다는 19세기말의 견해는 어떤 면에서 그의 명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그의 음악을 고정된 선입견으로 몰아가고,
게다가 그 영향으로 대학이나 연구 기관에서 치르고 있는 '팔레스트리나 양식으로 된 대위법' 시험이
원래는 상당한 탄력성을 두고 사용했던 팔레스트리나 양식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기 때문이다.
새로운 작곡가 세대는 팔레스트리나의 음악을 교회 대위법의 상징으로 우러러보도록 배웠고 사실 그의 작품들 가운데 많은 부분,
특히 미사곡들은 아직도 우러러볼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비록 낭만주의시대 작곡가들의 관심으로 말미암아 업적이 소개되기는 했지만 그는 바흐와는 달리
19세기에 이미 상당한 정도로 알려져 있었다.
팔레스트리나의 음악이 이전부터 소개될 수 있었던 것은 주로 그의 음악이 작곡을 처음 하는 작곡가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잘 정돈된 형식적 체계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엄격 대위법은 이런 방법으로 습득되는 기법과 관련되어 있다.
그의 시대에 팔레스트리나는 당시의 지배적인 양식을 사용하여 정신적인 면과 기교적인 면 모두에서 완벽할 만큼 뛰어난 작품을
작곡했던 최상급의 작곡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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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lestrina - Missa Papae Marcelli, Missa Brevis

01. Missa Papae Marcelli - Kyrie

02. Missa Papae Marcelli - Gloria

03. Missa Papae Marcelli - Credo

04. Missa Papae Marcelli - Sanctus

05. Missa Papae Marcelli - Benedictus

06. Missa Papae Marcelli - Agnus Dei 1

07. Missa Papae Marcelli - Agnus Dei 2

08. Missa brevis - Kyrie

09. Missa brevis - Gloria

10. Missa brevis - Credo

11. Missa brevis - Sanctus

12. Missa brevis - Benedictus

13. Missa brevis - Agnus Dei 1

14. Missa brevis - Agnus Dei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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