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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등 시민과 늘 함께한 ‘광주의 어른’
 
천주교 광주대교구장을 지낸 윤공희 대주교(86·사진)가 20일로 사제품을 받은 지 60주년을 맞는다. 윤 대주교는 일제강점과 광복, 6·25전쟁과 민족분단, 그리고 5·18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제의 본분을 충실하게 지킨 ‘광주의 어른’이다.
 
1973년부터 제7대 광주대교구장으로 재직하다 2000년 11월 30일 은퇴한 윤 대주교는 현재 전남 나주시 광주가톨릭대 주교관에서 기도와 독서, 산책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사제 서품 60주년을 맞은 소회에 대해 그는 “하느님의 은혜로 건강하게 지내 늘 감사한 마음”이라며 “사제로서 봉사하는 삶이 보람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고 회고했다.
 
윤 대주교는 평남 진남포에서 태어났다. 공산 정권이 들어서 성당이 문을 닫자 사제의 길에 들어서기 위해 1950년 1월 가족을 두고 홀로 월남했다. 그해 3월 20일 사제품을 받고 성직자의 길에 들어선 그는 60년 동안 한결같이 소외된 이웃을 보듬었다.
 
광주대교구장으로 있던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수많은 시민이 피를 흘리며 쓰러질 때 올곧은 정신으로 시민과 함께했다. 그는 “광주시민들이 민주화를 부르짖고 정의를 외치는데 교회가 함께할 수밖에 없었고 정부의 탄압 속에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교회가 진실을 말하는 노력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당시 윤 대주교는 고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5·18 희생자와 부상자를 걱정하는 편지와 함께 긴급구호자금을 받기도 했다.
 
윤 대주교는 광주의 아픔이 채 가시지 않은 1984년을 잊을 수 없다.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이 광주였기 때문. 윤 대주교는 “교황께서 시민들이 겪은 시련을 언급하셨고 ‘용서’를 주제로 강론을 하셨다”며 “5·18은 민족의 큰 시련이었지만 인권 존중에 대한 교훈을 얻은 만큼 그 교훈을 잘 살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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