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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를 뿌리고 또 거두며 / 이해인
                                     

'해인글방'이라는 이름을 붙인 나의 작업실 앞 빈터에 올 봄엔 몇 가지
꽃씨를 뿌렸습니다. 너무 촘촘히 심었던 몇 그루의 나무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난 빈터를 그냥 두기 허전해서 올해는 먼저 어머니가 보내주신
분꽃씨, 백일홍씨, 친지들이 편지속에 넣어 보내준
나팔꽃씨와 과꽃씨들을 심었습니다.

비 온 뒤의 3월 어느 날 꽃씨를 뿌리면서 '부디 잘 자라서 내게 고운
얼굴 보여주렴.'하고 기도했지만, 단단한 꽃씨가 아닌 풀풀 날리는
얇디얇은 나팔꽃씨를 내 어설픈 솜씨로 땅에 묻을 땐 '과연 싹이 돋고
꽃을 피울까?' 의심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매일매일 열심히 꽃밭을 들여다보며 물도 자주 주고, 꽃삽을 들고 나가
손질도 하다가 바쁜 것을 핑계로 소홀한 적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며칠 동안 외출을 하고 온 어느 아침, 제일 걱정했던 나팔꽃들이
황홀할 만큼 아름다운 보랏빛 옷을 걸치고 활짝 웃고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아니 웬일이야? 정말 곱다!"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반기며 감격스러워했습니다.
나팔꽃이 제일먼저 피더니 이어서 백일홍, 분꽃, 과꽃도
차츰 정다운 모습을 드러냈고, 며칠 사이에 쑥쑥 키도 많이 자랐습니다.

꽃이 아름답다고 멀찍이서 감상하는 것과 흙 냄새를 맡으며
직접 심어서 피운 꽃을 보는 것은 참으로 큰 차이가 있음을 새롭게 절감하면서
앞으로는 해마다 꽃씨를 심기로 다짐하였습니다. 뜰에 꽃씨를 뿌리는것은
나의 삶에도 아름다운 희망과 기쁨을 뿌리는 것임을 다시 체험하고 싶기 때문이지요.

어떤 일로 매우 답답하고 우울해하다가도 내가 나름대로 정성 들여 가꾼
작은 꽃밭에서 꽃들의 밝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위로받은 적도 많았습니다.
사소한 일로 괴로워할 때마다 꽃들은 내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습니다.

"무얼 그걸 가지고 그래요?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바뀌듯이
모든것은 다 지나간다니까요... 
아파하는 그만큼 삶이 익어가는 것이라면서요.
그러니 제발 마을 넓히고 힘을 내세요."

질 때는 뒷정리 잘하는 꽃
당번 활동 끝내고
꼭 짜놓은 물걸레처럼
꽉 오므리고 떨어지는 꽃

하루 내내
분필가루 날리던 칠판
깨끗이 닦아내고
내일 쓸 분필 하나 올려놓듯
뒷정리 잘하는 꽃
잘 여문 씨앗 하나 드고 간다

-이상문의 동시<뒷정리 잘하는 꽃>에서

많은 꽃나무들은 때가 되먼 꽃을 떨구면서 그 자리에 잘 여문 씨앗들을
사랑의 흔적으로 남깁니다.
나의 어머니나 친지들이 그들의 꽃밭에서 꽃씨를 받아 나에게 나누어주었듯이,
나도 이젠 흔한 꽃씨 한 톨이라도 소중하게 거주어 이웃과 나누는 기쁨을 누려야겠습니다.

군대에서 꽃씨가 필요하다고 글을 보낸 어는 독자에게,
자기 집 정원엔 꼭 우리수녀원에서 거둔 꽃씨를 받아 꽃을 피우고 싶다는
해외의 어느 벗에게,이젠 나도 어렵지 않게 꽃씨를 보낼 수 있게 되어
흐뭇하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내 작은 뜨락의 꽃들이 지면서 꽃 자리에 놓고 갈 그 씨앗들이 여물길 기다렸다가
어느 날 고운 봉투에 고운 마음으로 넣어 선물로 날려보낼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꽃마음으로 설레입니다.

도종환 시인의 시에 곡을 붙여 바오로딸 수녀님들의 고운 음성으로
음반을 내기도 했던 '꽃씨를 거두며'라는 노래를 나는 요즘 기도 삼아
자주 흥얼거려봅니다.

아이들과 함께 꽃씨를 거두며
사랑한다는 일은 책임지는 일임을 생각합니다.
사랑한다는 일은 기쁨과 고통, 아름다움과 시듦,
화해로움과 씁슬함
그리고 삶과 죽음까지를 책임지는 일이어야 함을 압니다.

시드는 꽃밭 그늘에서 아이들과 함께
꽃씨를 거두어 주먹에 쥐며
이제 기나긴 싸움은 다시 시작되었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도종환의 시 <꽃씨를 거두며>에서 

이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면 나도 꽃씨를 거두며
이 시인처럼 말할 것입니다.

"아, 그렇군요, 사랑한다는 일은 책임지는 일임을, 삶과 죽음까지를
책임지는 일임을, 꽃씨를 거두며 좀더 잘 알아듣겠군요!"

- 이해인의 산문집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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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찬미예수님 요안나입니다,
저는 광주 교구 송정2동 원동 본당에
다닌  신자인 요안나입니다,
여렸을때 신동에 다녔다가
현제는 원동에 다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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