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떠오르는 노래, 가톨릭 생활성가인들이 사랑하는 노래를 만든 이를 만난다. 오늘 함께하는 이는 ‘소나무’를 만든 채순기 바오로다.

이현정, 채순기 부부. ©️신상훈
이현정, 채순기 부부. ©️신상훈

인천 가좌동. 형수님(이현정 프란체스카)이 저녁을 아주 맛나게 차려 주신다. 내가 저녁을 들기 전 묻는다.

“형. 내가 형을 26년 전에 봤을 때, 형이 우울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지금 표정은 아주 밝네요. 근데 왜 그때 누워 있었지? 사고였나요?”

형이 말한다.

“아냐, 상훈아. 사고가 아니고, 한의학과로 대학을 들어가자마자, 중학교 때부터 아팠던 허리가 아파서 병원엘 갔는데, ‘척수 신경 종양’ 지금으로 말하면, 척수암 정도 될거야. 1983년 1차 수술을 마치고, 1986년에 2차 수술 후에, 그렇게 된 거야. 1986년 당시, 부천 원미동 성당 다닐 땐데, 본당 주임이신 서상범 신부님께서 수술비를 도와주셔서, 그나마 살게 된 거야. 그때 수술 후에, 지금처럼 가슴 아래로 쓸 수 없게 되었지. 학생들을 과외 하면서 살아보려고 노력했지만 사는 게 너무 막막했어. 너가 나를 95년에 봤을 때, 그때는 내가 정말 삶의 의지가 없었을 때였던 거 같아. 하지만 지금은 예쁜 와이프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정말 지금은 행복해.”

내가 형을 처음 만난 곳은 1992년 인천교구 농아선교회에서 열린 수화음악회 공연 때였다. 당시 채순기 바오로는 배중택 요셉과 ‘요바’라는 팀으로 활동을 할 때다. 배중택 요셉은 시각장애인이었고, 채순기 바오로는 하반신 마비를 겪고 있었다. 1994년 바오로딸 수도회에서 출시된, 창작 성가 공모2집 음반 ‘다시 보는 세상’ 앨범에 ‘소나무’라는 곡과 ‘십자가 바라보면서’라는 두 곡이 채순기 바오로의 작품이다. 2집에는 ‘님의 숨결 느끼며’, ‘눈물보단 웃음이’ 또한 채순기 작품이다. 노래 ‘소나무’와 ‘십자가 바라보면서’ 두 곡에 관해 물어본다.

“상훈아, 내가 처음 만든 노래는 ‘십자가 바라보면서’가 처음이야. 2차 수술을 마치고, 대중가요를 습작하면서 지냈는데, 갑자기 내 모습을 담은 ‘십자가 바라보면서’를 10분 만에 글을 쓰고, 곡을 붙였어. 내가 지금 들어도, 몸이 오싹할 정도로 어색하지만, 많은 사람이 좋아해 줘서 너무 고마워. 그리고 내 사랑하는 이현정 프란체스카에게 청혼할 때 불렀던 노래이기도 해. 

‘소나무’는 내가 너무 힘들고 삶의 의지도 없을 때, 부천 원미동 성당 레지오 자매님 두 분이 오셔서, 나를 위해 기도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어. 그 두 분의 모습이 나의 분신처럼 느껴졌지. 상훈아. 너한테 말하는데, ‘소나무’ 가사가 내가 처음 지었던 가사랑 1, 2, 3, 4절 배치가 달라. 슬픔이, 기쁨이, 손이 시리고, 맘이 시리고....

이 순서대로 해야 하는데, 앨범에 나온 가사 배열은 좀 다르게 나왔지. 그리고, ‘너의 이름은 단 하나 나의 분신’이었는데, 성가 음반이다 보니, 분신(두 사람의 우정이 나의 분신)이 불씨로 바꼈지. 그래도, 많은 분께서 사랑해 주셔서, 이 또한 감사해.”

'소나무' 원곡 악보. ©️채순기
'소나무' 원곡 악보. ©️채순기

우리가 알고 있던, 창작 성가 공모에 출품된 ‘소나무’와 채순기 바오로가 만든 ‘소나무’의 가사는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아래 텍스트가 처음 만들 때 가사다. 아무런 연습 없이, 저녁을 먹은 후, 함께 부른다. 채순기 바오로가 직접 부르는 ‘소나무’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서 처음 들을 수 있다.

'소나무', 노래 : 채순기 바오로, 신윤경 모니카, 신상훈 시몬 with 이현정 프란체스카, 최상미 세실리아

소나무

채순기 바오로 글/곡(바오로딸 수도회 창작 성가 공모 2집 1994년)

1. 하나가 슬픔에 잠길 때 눈물 흘리는 건 다른 또 하나
하나가 기쁨에 넘칠 때 웃음 짓는 것도 다른 또 하나

후렴 : 빛이 없으면 사라지는 그림자로는 모자라
내가 부르는 너의 이름은 단 하나 나의 분신
우리의 소중한 만남을 기억하는 의미로
서로의 가슴속에 심은 소나무 한 그루
우리 모습 세월 따라 가을 빛으로 변해가도
언제까지나 길이 푸르리라

2. 하나가 손이 시려울 때 오직 필요한 건 또 하나의 입김
하나가 맘이 시려울 때 오직 필요한 건 또 하나의 눈빛  

'십자가 바라보면서', 노래 : 채순기 바오로, 신윤경 모니카, 신상훈 시몬 with 이현정 프란체스카, 최상미 세실리아

십자가 바라보면서

채순기 글/곡(바오로딸 수도회 창작 성가 공모 2집 1994년)

누구나 자신의 십자가를 제일 크다고 여기듯이
나 또한 짊어진 십자가가 너무나 무거웠기에
왜 나만 이렇듯 힘드냐고 때론 주님께 원망하고
십자가 내려놓게 해달라고 눈물로 애원도 했지
그러나 지금은 주 예수 달려 계신 십자가 바라보면서
수난과 부활의 의미를 생각하네
내 십자가가 내 몸의 일부로 느껴질 때
나 또한 부활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저녁을 먹고, 다 함께 노래를 부른다. 채순기 바오로가 만든 자필 악보를 보면서. 

‘고슴도치 이야기’, ‘용서에 대하여’, ‘절름발이 사랑이야기’, ‘믿음 소망 사랑’, ‘하나의 울림되어’, ‘님의 숨결 느끼며’, ‘당신 뜻대로 하소서’, ‘사랑의 집’, ‘눈물보단 웃음이’, ‘십자가에 못박는 소리’.

1995년 12월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발매했던 ‘청소년 성가’ 책에는 채순기 바오로가 만든 성가들이 10곡 정도 실려 있다. 그 성가들도 계속 부른다. 성가를 부르던 중 형수님께서 30년 전 비디오 테이프를 보여 준다. 형이 만든 성가곡들을 후배들과 함께 부르는 앨범으로 만들, 작은 희망을 가져본다. 

요바(고 배중택 요셉, 채순기 바오로)팀으로 활동하던 30년 전에는, 신상옥과 형제들과 많은 협연을 했었다. 이번 인터뷰 겸 채순기 바오로 집을 방문했을 때 귀한 자료 또한 얻게 되었다. ‘요바’팀의 공연 모습과 더불어 ‘신상옥과 형제들’ 초창기 모습이 담아 있는 VHS테이프를 얻게 됐다. 그 테이프 안에 있던, ‘십자가 바라보면서’, ‘소나무’ 두 곡을 함께 나눠 본다.

'십자가 바라보면서', 1994년 6월 26일 서울 동성고등학교 대강당. 왼쪽부터, 신윤경, 이양신, 류정희, 최선미, 드럼 박성호, 베이스 유승훈, 신상옥, 홍성락.

'소나무', 1994년 6월 26일 서울 동성고등학교 대강당. 왼쪽부터, 신윤경, 이양신, 류정희, 최선미, 드럼 박성호, 베이스 유승훈, 신상옥, 홍성락.

노래를 부르고 나서, 형에게 묻는다. 생활성가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있는지.

“그래도 한때 성가를 만든 사람으로서, 최근에 관심 못 가져 줘서 미안하고, 성가인들이 교회의 작은 지원에도 힘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노래하는 거 보면, 미안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해. 교회의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문화환경을 못 만들어 준 것이 많이 미안해.”

(왼쪽부터) 이현정, 채순기, 신상훈, 최상미. ©️신윤경
(왼쪽부터) 이현정, 채순기, 신상훈, 최상미. ©️신윤경

채순기 바오로 부부와의 저녁식사와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을비가 몹시 내린다.

11월 위령 성월을 향해 시월의 마지막 주는 가을빛으로 모든 걸 내려놓는다. 우리들 모두 풍경으로 남고자 한다. 생명력이 푸르렀던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 끝자락에서 지나간 생명력을 기억하는 날들이 지나간다. 때론 풍경으로 기억되는 위령 성월을 맞이하자. 그리고 한 해를 마감하면서 감사하자. 기억과 감사는 또 다른 생명이자 부활이다.

‘우리 모습 세월 따라 가을 빛으로 변해 가도, 언제까지나 길이 푸르리라’ (노래 '소나무' 중)



신상훈(시몬)
Alma Art 가톨릭문화원 음악팀장 1999년
신상옥과 형제들 창단멤버 1992년
서강대 철학과 졸업 1998년
sbs효과실 음악감독 1998년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2015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