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27 13:09

복자 교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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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일치·쇄신으로 이끈 ‘하느님의 종’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오는 5월 1일 시복되는 요한 바오로 2세는 26년의 재위기간 동안 세계평화와 그리스도교 일치를 강조하고, 많은 나라를 다니며 평화를 역설했다.
 
2005년 선종, 세계의 가슴을 울렸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5월 1일 '시복'이 결정 됨으로써 선종한 지 6년 만에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용서와 화해를 청해 칭송받던 교황, 덕망 높고 인자했던 교황의 모습을 세계는 아직 잊지 못한다.

가톨릭신문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시복 발표를 맞아 많은 복자와 성인 교황 가운데 '복자 교황들'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이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시복되면 교황 가운데 복자는 10명이 된다.



■ 제2차 리옹공의회 소집한 복자 그레고리오 10세

동방교회와의 재일치 공포
 
 
1274년 제2차 리옹공의회를 소집한 교황. 당시 5월 7일~7월 17일 이어진 공의회에서는 교황의 요청으로 새로운 십자군 원정이 결정됐다.

유럽의 정치적 상황은 상당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 선출 당시 십자군을 돕기 위해 이스라엘 아크르 지역에 있었던 그레고리오 10세는 처음부터 십자군과 동방교회의 재일치, 개혁 등에 대한 열정을 품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그리스도교의 일치를 통해 예루살렘 성지 문제를 해결하고 권위를 보여주고자 한 교황의 의중이 담겨 있었다.

공의회 결과, 동방교회와 가톨릭교회의 재일치가 공포된 것은 오늘날까지 큰 의미로 남는다.



■ 몽골까지 그리스도교 확장한 복자 인노첸시오 5세

'칸' 대사에게 세례 베풀어

도미니코 수도회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교황이 됐다. 수도회 입회 후 학덕을 연마해 1259년 파리에서 신학 교수가 된 이래 1264년, 1268년부터 1269년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다. 여러 주제에 관한 명제들과 성서 주석, 강론을 썼다.

제2차 리옹공의회에서 두각을 드러냈으며, 그리스와의 일치를 위해 노력했다. 주목할 것은 몽골제국의 칸이 보낸 세 명의 대사에게 세례를 베풀어 '몽골'까지 그리스도교를 확장시켰다는 것이다.



■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히어로' 복자 요한 23세

시대 발맞춰 변화하는 교회 구현



'좋으신 교황'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요한 23세는 '5년'도 채 되지 않는 재임기간 동안 많은 업적을 남겼다. 즉위 직후 추기경 회의에서 추기경 수를 70명으로 제한하는 규정을 폐지하고 로마교구 시노드, 공의회 개최, 교회법전 개정작업 등 계획을 발표했다. 이 같은 노력은 급변하는 세상에 교회가 전적으로 적응하는 데에 기반이 됐다.

교황의 업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최다. '회개와 쇄신'을 기본 정신으로 한 공의회의 목적은 현 시대에 발맞춰 쇄신하는 교회, 즉 '교회 현대화 운동'에 있었다. 교황은 공의회를 통해 교회 규율과 조직을 현 시대에 맞게 쇄신하고, 궁극적으로는 교회의 일치를 지향했다.

시대의 필요와 요구에 적응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하도록 준비한 교황은 교황직과 수위권을 동료 주교들의 단체성과 연결시키는 한편, 교회 일치를 위해 상호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음적 검소함과 겸손한 모습의 교황은 많은 이들에게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로 기억된다. 특히 로마교구장으로서 본당, 병원, 교육, 자선단체 등을 자주 방문하며 착한 목자상을 몸소 실천하기도 했다. 교황 요한 23세는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 절차가 시작돼, 2000년 9월 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베드로 광장에서 시복됐다.



■ '보편적 사랑의 증인' 요한 바오로 2세

전 세계 평화·일치의 선구자

오는 5월 1일 시복되는 요한 바오로 2세는 26년의 재위기간 동안 세계평화와 그리스도교 일치를 항상 강조했다. 특히 세상 속 교회의 역할에 대해 전임자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포클랜드 전쟁과 걸프전 발발 당시 평화를 역설했고, 유고슬라비아와 루안다의 절망적 상황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교황은 많은 나라를 방문한 것으로 유명하다. 즉위 이듬해인 1979년 후반 폴란드·아일랜드·미국·터키 등을 방문했다. 그후 유럽과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아시아의 110여 개 나라를 순방했다. 1981년 베드로광장에서 일반 알현 때 저격을 당하기도 했으나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만나기 위한 교황의 해외 순방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한국에는 1984년과 1989년 두 차례나 방문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일치'를 위해서도 다양한 노력을 펼쳤다. 동방교회와 우호적 관계를 증진시키고, 세계교회협의회를 방문해 교회일치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오류를 인정하고 화해를 청하는 교황이기도 했다. 1992년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에 대한 중세교회의 재판이 오류였음을 인정했고, 2000년 대희년에는 베드로 대성전에서 '용서의 날' 예식을 거행하며 갈릴레오 사건은 물론 가톨릭교회 구성원들이 역사 안에서 잘못한 일들에 대해 하느님의 용서를 청했다.

사회정의에 대한 진보적 시각과 달리 신앙과 윤리 문제에 있어서는 보수적 입장을 취했다. 이때문에 생전에 '확실성의 교황'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전통교회의 규율, 성체성사, 마리아 신심 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많은 이들을 시복시성했다.



● 복자는 어떤 존재인가

생전 덕행·순교 사실 등 검토

지역·단체 등 공경 권역 제한

복자는 하느님 나라에서 하느님을 뵙는 '지복지관(Beatific Vision)'을 누리는 영혼을 묘사하는데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다. 생전의 덕행과 순교 사실 등을 검토해 시복되며 교회가 평판이 높은 인물을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해 교회법에 따른 시복절차가 이뤄지도록 한다.

복자와 성인은 여러 점에서 다른 공경방식을 가진다. 교회가 성인으로 공경하는 이들과 복자로 공경하는 이들의 차이는 그 당사자의 성덕의 차이가 아니다. 이들 모두가 지복지관을 누릴 수 있는데, 복자가 성인보다 더 많은 영광을 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복자에 대한 공경 예식은 성인에 대한 공경 예식과는 달리 전체 교회에 '의무적인 것'이 아니다. 복자에 대한 공적 경배는 교황이 허락한 특정 교구와 지역, 국가, 또는 수도 단체 내에서만 이뤄지며, 성인처럼 세계 교회 어디서나 공경 받지는 못한다.

또 성인과 달리 복자의 그림을 그릴 경우 후광을 그려 넣을 수는 있지만, 머리 위에 금테두리를 그리지는 못하며, 신자들의 기도의 중재자로서 교회의 공식 기도문 안에 포함되고, 신자들이 복자의 유해를 공적으로 경배하도록 전시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1925년 시복된 79위와 1968년 시복된 24위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984년 시성돼 '성인'이 됐다. 따라서 우리나라에는 103위 성인으로 공경 받는 '성인'만 있을 뿐, '복자'는 없다.

현재 한국교회는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순교자', '증거자 최양업 신부' 등에 대한 문서를 교황청 시성성에 제출해 심사를 받고 있다.


이지연 기자 (mary@catimes.kr)
오혜민 기자 (oh0311@catimes.kr)

?Who's 두레&요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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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요안나입니다,
저는 광주 교구 송정2동 원동 본당에
다닌  신자인 요안나입니다,
여렸을때 신동에 다녔다가
현제는 원동에 다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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