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 흐르는 밤에 Act 2 입니다.
이렇게 Act 2로 쓰게 된 날이 아마 오늘이 최초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면 아까 빼먹은 이야기를 더 할까 합니다.
오늘 2번째 시간으로 내가 이웃을 위해 초가 되자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아까 말씀 드렸다시피 초는 자기 자신을 태워서 다른 사람을 위해 빛이 되어준다고 했습니다.
과연 내가 해야할 것은 과연 어떤 것 일까요?
내 자신이 초처럼 항상 희생을 하며 내가 봉헌을 하면서 빛을 이루는 그런 하루를 보내야 할 것 입니다.
방금 희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는데요. 요즈음은 희생을 하려는 형제,자매님을 눈을 씻고 봐도 없는 것 같아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자기 밖에 모르고 자기만 잘 하면 그만일 것 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정말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봉헌금도 바치는 것도 어쩔 수 없이 내는 것 같고요. 내가 한 주간을 주님께 바치면서 이렇게 봉헌 합니다. 하는 의미로 봉헌 금을 내는 것인데 오히려 자기가 쓰고 남은 몇천원으로만 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가톨릭이 천주교(天主敎)가 천주교(千主敎)가 되지 않겠습니까?
우스개 소리로 주께 드리네 라는 성가를 들으시면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 없이 바치네." 라고 시작이 될 것인데, 이 것을 보면 그런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게 있는 모든 천원짜리 한 장을 아낌 없이 바치네." 라는 것으로만 느낍니다.
오늘날 우리는 초를 들고 행렬하는 것을 잘 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주님 봉헌 축일이 교우들이 많이 참석하지 않는 춥고 이른 평일 아침에 미사가 거행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초를 들고 행렬하는 것은, 우리를 만나러 오신 주님을 찾아 불을 밝혀 들고 하느님의 집(또는 제대)으로 나아가는 의미를 더 잘 드러내줍니다.
우리는 '주님 봉헌 축일'을 지내면서 봉헌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합시다. 더 나아가 우리도 주님을 찾아 만나고 함께하는 기쁨으로 주님의 봉헌에 동참하여 나 자신을 봉헌하도록 합시다. 성전에 봉헌되신 주님의 봉헌 축일에 진정한 봉헌을 느끼며 나의 새 삶을 기쁜 마음으로 드려야 할 것입니다.
항상 희생하며 봉헌하는 수도자들을 위해 기도 해주시길 바라겠고요. 여러분 모두 초와 같은 봉헌의 삶을 살아나가시길 바랍니다.
신청곡 : P. 김선호 하느님 이들이 , 가톨릭성가 216장 십자가에 제헌되신 , P. 임석수 가난함을 주소서.(한 곡이라도 없을 시엔 219장 주여 몸과 맘 다 바치오니 부탁 드립니다.)
평신도로서,
봉헌하는 삶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