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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반드시 치유된다."     
                                                           
박은미 : 가톨릭대학교 인간학교육원 교수, 품 심리상담센터 원장


작년 6월, 1학기말 어느 아침이었다.

일 못 하는 사람이 사고만 친다더니, 그날따라 작은 딸의 방에 한 달 이상 방치되어 있던 커튼을 달고 싶은 마음에 망치를 들었다가,
왼쪽 엄치손가락을 크게 다치고 말았다. 손톱 언저리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데, 붕대로 친친 감고 약국에 가서 소염제만 사다 먹었다.
손톱은 빠지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잘 아물겠거니 하는 안이한 생각에서 한 행동이었다.

마침 그 날이 성적 마감일이어서 학교로 가서 일처릴르 끝내니 이미 5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6시경에는 한 수녀님과 약속이 있었다. 붕대로 감싼 손가락에서는 여전히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병원에 가야 한다고 펄쩍 뛰시는 수녀님 손에 이끌리다시피 부근의 정형외과에 갔다. 붕대를 푸니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하여,
엄지손톱 옆의 살이 터지고 손톱은 반쯤 들려 있었다. 혹시 뼈를 다치지 않았는지 뢴트겐 검사도 하고, 파상품과 항생제 주사도 맞았다.
몇 바늘 꿰매야 한대서 마취 주사를 맞았는데,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아팠다.

의사는 혀를 차면서 다친 뒤 6시간(Golden Time) 이내에 와야 꿰맬 때 아프지 않은 거란다.
실밥을 풀 때까지 약 3주 정도는 손에 물이 닿지 않게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병원 문을 나왔다.
엄지손가락 상처를 통해 나는 여러가지를 배웠다.

첫째로, 다친 부위와 정도에 따라 치유되는 시간은 다를지라도 상처는 반드시 아문다.

 내 손가락도 한 달정도 지나면서 새 살이 나오고, 손톱 뿌리는 상하지 않았는지 먼저 손톱은 빠지고 새 손톱이 조금씩 자라났다.
크리스마스 무렵이 되어서야 손톱이 원래 상태로 회복된 걸 보니, 손톱 하나 다친 것이 치유되는 데도 6개월이나 걸렸다.

둘째로, 상처는 제때 처치를 받아야 덜 고통스럽게 치유될 수 있다.
 
Golden Time 내에 오면 마취 주사 없이 꿰매도 아프지 않은데, 그 시간을 놓치면 아픈 마취 주사를 맞고서야 꿰맬수 있다고 한다.
의사의 말을 통해 상처를 입었을 때 곧바로 치유 체계로 전환하는 우리 몸의 신비와 상처에 안이하게 대처하려던 나의 어리석음을 동시에 깨우칠 수 있었다.

셋째로, 몸의 아주 작은 부분에 상처를 입었지만 그 부분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긴장한다.

엄지손가락 하나 다쳤을 뿐인데, 그것도 왼손이었는데도 그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해 오던 사소한 일 하나 하나에 불편이 스며들자,
몸뿐만 아니라 정신에까지 새로운 힘이 들어가면서 더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내 자신이 느껴졌다.
나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가 긴장하여, 내가 불편해 하지 않도록 가족들이 더 적극적으로 가사를 처리해 주기도 하였다.

우리는 몸과 마음에 갖가지 상처를 입으며 살아간다. 우리 몸의 놀라운 자연 치유력 덕분에 물리적인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잘 아문다.

그런데 마음의 상처는 어떨까. 같은 상처를 받아도 행동으로 드러나는 양태는 사람마다 제각각이어서 인과 관계를 찾느라,
혹은 상처가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이미 상처가 심각한 상태에 도달해서야 대처하는 등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상처를 받은 기간이 길면 길수록 치유되는 시간도 길어진느 건 당연한 일이다.

자녀가 사춘기 무렵부터 걷잡을 수 없는 반항을 시작했다면,
부모와 자녀 관곌르 회복하려는 시도가 자녀의 나이만큼의 시간에 걸쳐 이루어져야 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때로는 관계를 해치는 지금까지의 태도로부터 새롭게 바꾸려는 시도에 나선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위로와 안도감을 느끼며
스스로 치유에 나서는 청소년들도 많다.

손가락을 다치고 나서 만나 뵌 한 신부님께서는 웃으시며, "손 다쳐서 가족들이 잘 도와준다고 또 다칠라"하신다.
아픈 것으로 주위 사람을 통제할 수도 있다는 뼈 있는 일침이셨다.
망치로 손톱을 내리치고 나서 비명을 지를 정도로 아픈데 아무도 알아 줄 사람이 없으니 소리내서 울기도 민망하던 기억이 나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마 그때 누구라도 곁에 있었으면 아픔을 알아 달라고 한참을 울었을 것이다.
주위 사람, 가족들의 관심과 사랑을 끌려고 신체적, 정신적 통증을 선택하는 인간 심리의 창의성이 나의 작은 상처를 통해 몸으로 체득되었던 순간이었다. 

몸의 상처든 마음의 상처든, 모든 상처는 다시 아문다.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Golden Time 내에, 흉터가 험하게 나지 않도록 효과적으로 대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몸과 마음의 치유 정도는 아마 크게 달라질 것이다.

E-Mail :empark932@hanmail.net, 

                                                                              - 살레시오 가족 2009. 3 ~ 4 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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