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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죄가 존재하게 하시는 목적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죄로 인해 인간의 나약함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

 

베드로는 죽더라도 그리스도를 배반하지 않겠다고 장담했지만


하룻밤 만에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합니다.

 

덕분에 베드로는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깨닫고 닭이 우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죄를 짓기 이전보다 죄를 지은 다음에 그리스도를 더 사랑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제자가 되기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임을 더 깊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더 많이 용서 받은 사람이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죄를 더 많이 지어서 더 많이 용서 받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이 더 많이 용서 받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더 많이 사랑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

 

제가 신학교 들어가서 행복하지 못하다가

 

며칠 단식하고 내 자신의 처지를 조금 더 알아 나를 불러주신 주님께 감사하게 되고


행복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얼마 전에 하였습니다.

 

내가 행복해지는 이유는 나와 같은 죄인을


이렇게 큰일을 위해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내 자신이


주님께 합당하지 않은 사람임을 알아 갈수록 주님을 더 사랑하게 되어 더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내 자신이 주님께서 불러주시기에 합당하게 생각될 때는 주님께 대한 감사보다는


내 자신이 주님께 무엇을 해 드리고 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자주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인이라고 말씀하고 다니셨다고 합니다.


제자는 듣다못해 “지금 온 세상이 스승님을 이미 성인으로 알고 있는데


어찌 가장 큰 죄인이라 하십니까?”


성인은 대답합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총을 다른 이에게 똑같이 주었다면


나만큼 못 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네. 난 정말 얼마나 큰 죄인인지...”

 

왜 성인들은 한결같이 자신을 벌레만도 못하다고 하고


사람에게 밟히는 모래만도 못하다고 하는 것일까요? 일부러 겸손한척 하려고 그러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성인이기 때문에 진정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빛이십니다. 누구든지 빛에 가까이가면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됩니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실이 악하여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


이것이 벌써 죄인으로 판결 받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과연 악한 일을 일삼는 자는 누구나 자기 죄상이 드러날까 봐 빛을 미워하고 멀리한다.”


                                                                                             
(요한 3,19-20)

 


따라서 하느님께 가까이 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때문에


더 많은 결점을 찾아내는 반면,


하느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더 많은 죄를 지으면서도 어둠 속에 있기 때문에


자신이 무슨 죄를 짓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인들은 일주일이 멀다 하고 고해성사를 원하지만


아직 어둠에 있는 이들은 ‘내가 무슨 죄가 있어서 고해를 하느냐?’며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늘 많이 사랑하였기 때문에


많이 용서받았던 여인은 이미 자신의 죄를 눈물로 속죄할 줄 알았기 때문에


빛 안에 있었던 것이고,


스스로 깨끗하다고 생각했던 바리사이파 사람은 오히려 예수님과 그 여인을 비난함으로써


스스로 어둠에 있음을 증명하게 된 것입니다.

 


“많이 용서 받은 사람이 많이 사랑한다.”는 말씀의 의미는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지 알아야 얼마나 많이 용서 받았는지도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있는 성인들만이 스스로의 죄가 얼마나 크고


또 그것을 용서해주시는 하느님의 자비가 얼마나 더 큰지를 알기 때문에


하느님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다른 이보다 더 낫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의 심판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다만 나의 죄가 얼마나 크고

또 그것을 용서해주신 하느님의 자비는


또 얼마나 더 큰지 만을 묵상합시다. 그러면 더욱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빌라의 데레사를 지옥으로 데려가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던 그녀의 지옥의 자리를 보여줍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지옥에 다 자리가 있고 지옥에 갈 운명이었습니다.

 


자신의 지옥 자리를 본 후


아빌라의 데레사는 지옥에 가지 않게 해 주신 은총만으로 평생 감사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열심히 살면 천국 가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착각하며 살기 때문은 아닐까요?


누구도 자신의 힘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용서의 대가’는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내가 얼마나 부당한 죄인이고

또 그리스도의 수난으로써 얼마나 많은 죄를 용서 받았는지
깨달읍시다.


그러면 감사와 찬미가 저절로 솟아나게 될 것입니다.

 


만약 미사 때 갖추어야 할 마음자세가 무엇이냐고 물을 때,


 
오늘 이 여인의 마음가짐이 바로 그 모델일 것입니다.


용서 받은 이의 감사와 찬미를 넘어선 사랑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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