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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 ‘꼬꼬마’ 시절, 빌려신은 스케이트화로 피겨선수의 꿈을 키운 김연아(20·고려대)가 마침내 올림픽 챔피언이 됐다. 온갖 시련과 난관을 꿋꿋이 이겨내고 세계 피겨스케이팅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김연아의 여정을 최근 발행된 그의 자서전 <김연아의 7분드라마>(중앙출판사)를 통해 되짚어봤다.

2004년 9월 연습 링크에서 두 손을 모으는 포즈를 취한 김연아. | 경향신문 자료사진

“떨리는 마음이 차차 사라지자 스케이트장은 새로운 세상이 되었다.”

-다섯 살 때 과천 실내스케이트장에서 아빠의 손을 잡고 처음 스케이트를 배웠다. 김연아는 장래 금메달리스트답게 처음 배운 날 속도를 붙이며 시원한 바람을 즐겼다.

“미셸 콴의 비디오를 보고 나면 어김없이 거실을 빙판삼아 한바탕 ‘스케이트 판’을 벌이곤 했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피겨 경기를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돌려보는 것은 어린 김연아의 하루 일과 가운데 하나였다. 본 후에는 마치 미셸 콴이라도 된 양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는 줄도 모르고 따라하기에 몰두했다.

“쌤! 당기셨죠? 에이, 거짓말하지 마세요.”

-초등학교 5학년 여름 연습할 때 잡아주는 줄 없이 처음으로 트리플 점프(토루프)를 성공한 순간에 터져나온 말. 김연아는 같은 해 살코, 러츠, 플립까지 일사천리로 성공시켰고 6학년 여름 루프까지 뛰며 트리플 점프 5종을 완성했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건 바나나우유 내기! 어떤 종류든 나는 목숨 걸고 해서 꼭 내기에 이기고 만다.”

-김연아는 어릴 때부터 승부욕이 강했다. 악셀 연속으로 뛰기, 트리플 5종 모두 뛰기 등 내기를 하면 이겨야 직성이 풀렸다.

“99도까지 열심히 온도를 올려놓아도 마지막 1도를 넘기지 못하면 영원히 물은 끓지 않는다.”

-김연아는 마음먹은 건 꼭 해내고야 만다. 마지막 1도의 한계를 버티지 못하면 결과는 확연히 달라진다는 진리를 어릴 때부터 깨닫고 있었다.

“오늘 이거 안되면 집에 안가!”

-초등학교 5학년 트리플러츠를 시도하던 어느날, 거듭된 실패에 독한 마음을 먹은 김연아는 결국 그날 러츠를 성공시키고야 말았다.

“나 그만둘래. 진짜 아파서 못하겠어. 엄만 알지도 못하면서….”

-김연아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사춘기와 발목인대 부상, 아버지 회사가 어려워진 상황이 겹치면서 피겨를 그만두기로 했다. 하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전국체전에서 1위를 하면서 슬럼프를 극복해 다시 스케이트화를 신었다.

“왜 하필 저 아이가 나랑 같은 시대에 태어났을까.”

-2004년 주니어 그랑프리파이널에서 처음 맞붙은 아사다 마오에게 져 2위를 한 후, 이때부터 아사다는 김연아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었다.

“난 어찌됐든 피겨를 할 수밖에 없는 팔자구나.”

-김연아는 2006년 각종 부상으로 인한 고통에 시달리며 피겨를 그만두려 결심했으나 얼마 안 가 다시 피겨로 돌아왔다. “나름대로 자기 꿈을 가지고 달리는 친구들에 비해 나만 중도하차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경기할 때 가장 두렵고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첫 포즈로 음악을 기다릴 때다.”

-김연아는 그 순간 “정말 소름이 끼치도록 두렵고 이 세상에 혼자인 것처럼 외롭다”고 말했다. ‘강심장’으로 보이는 김연아도 경기에 임하는 순간에는 긴장감에 떨었다.

“결론은 미소 70%, 노려보기 30%다.”

-김연아는 시니어 첫 시즌(2006~2007년) 쇼트프로그램이었던 ‘록산느의 탱고’를 통해 표현력에 눈을 떴다. 매일 거울을 보며 ‘썩소(썩은 미소)’를 연습한 끝에 답을 찾았다. 지금 김연아의 트레이드마크인 노려보는 듯하면서 밝은 미소는 이런 연습을 거쳐 탄생했다.

“나는 이제 일등이 아니면 축하받지 못하는 사람이 된 건가.”

-김연아는 2008년 경기 고양에서 열린 그랑프리파이널에서 중압감 탓에 아사다 마오에게 져 2위에 오른 후 ‘힘내’라는 문자메시지들을 받고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위로가 아니라 축하를 받고 싶었다”고 했다.

“2010년 올림픽 때도 내가 이 경기장, 이 자리에서 장내에 울려 퍼지는 애국가를 들을 수 있을까? 과연 그런 날이 올까?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정말 간절하게….”

-김연아는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1년 앞둔 2009년 2월 밴쿠버 퍼시픽 콜로세움에서 열린 4대륙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해 기분 좋은 징조를 보였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웃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김연아는 2009년 3월 미국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 싱글 첫 200점을 돌파하며 우승한 후 시상대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으아, 이게 얼마 만에 먹는 삼겹살이냐.”

-김연아에게는 언제나 엄격한 식단이 따라다녔다. 2009년 3월 미국 세계선수권에서 여자 싱글 첫 200점을 돌파하며 우승한 후 컵라면, 초밥, 김밥에 이어 삼겹살을 먹으며 행복해했다.

“올림픽에서는 하늘이 정해주는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것 같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왔다.”

-김연아는 “올림픽이 최고의 대회인 것은 맞지만 4년에 한 번 열리는 대회다. 생애 한 번이 될지도 모르는 기회를 잡는 사람이 내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수없이 되뇌었다.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이미 세계챔피언이 됐다고 생각했다. 그게 올림픽에 대한 부담을 더는 데 도움이 됐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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