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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6-11

6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7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8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
   그가 일어나 서자,
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10 그러고 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는,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11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묵상

제가 첫 보좌를 할 때 신자 분들이 가끔 와서 “신부님, 좀 일찍 주무세요.”,

혹은 “신부님, 참 일찍 일어나시네요.”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그걸 어떻게 아세요?”라고 물으면, “예, 집에서 다 보여요.”라고 대답하십니다.

왜냐하면 사제관의 앞쪽이 아파트 단지이기 때문에

아파트에서 보면 사제관에 불이 켜있는지, 꺼져있는지 다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듣고는 창문도 제대로 열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은 과히 좋은 느낌은 아닙니다.

샤워를 하고 벌거벗고 거실로 나왔는데 창문이 열려있어

밖이 보이면 깜짝 놀라 벽에 딱 붙습니다.

그리고 벽을 따라서 안보이게 움직여서 창문을 닫습니다. 그제야 마음이 편해집니다.

 

또 제가 쳐다보다가 큰일 날 뻔 했던 적도 몇 번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밤에 돌아오다가 어떤 남학생이 여자와 앉아서 있는 것을 슬쩍 봤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고 그 남자는 뭘 쳐다보냐며 계속 와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무서워서 못들은 채 하고 빨리 걸음을 걸어서 도망쳤습니다.

한 번은 군대 첫 휴가를 나와서 친구와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는데 불량배들이 들어와

함께 술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는 모습이 저로서는 매우 웃겨 보였습니다. 말은 못 하였지만 슬쩍슬쩍 보며

재밌어 하였습니다.

보스가 술을 따를 때는 아무 대나 보지도 않고 따릅니다.

그러면 졸개가 병 있는 곳으로 가서 술을 받고 머리를 포장마차 밖으로 내밀고 마시고

다시 제자리에 앉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집으로 가려는데 그 졸개가 나오더니 담배를 같이 피우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쳐다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었고 저를 이 지역의 건달로 알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담배를 못 피웠는데 기침이 나오는 것을 참고 눈물을 흘리며 건달 연기를 했고

보스가 졸개를 불러서 간신히 집에 올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시선만으로도 상대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예수님은 적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눈에 가시였기 때문입니다. 어둠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빛이었고

그래서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는 빛을 제거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오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안식일 법을 어기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식일 법을 어긴다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눈을 부라리며 예수님을 주시하였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트집거리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 앞에서 당당하십니다. 오히려 그들의 잘못을 더 밝게 드러나게 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안식일은 거룩히 쉬며 주님을 찬미하라고 주님께서 거룩하게 지정하신 날입니다.

그 날에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미움으로 눈이 멀어있는 그들이기 때문에 아주 간단한 질문조차 대답하지 못합니다.

옳은 일을 하건 남을 해치는 일을 하건, 사람의 목숨을 구하건,

사람을 죽이건 그들에겐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다만 안식일에 일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트집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면 긴장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긴장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잘못하는 것이 없어도 누군가가 사제관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 때문에 긴장이 되는데,

예수님은 어째서 미워하는 사람들이 트집을 잡기 위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의연하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실천하실 수 있으실까요?

 

그것은 그 분이 평상시 혼자 있을 때도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음을 의식하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혼자 있을 때, 이미 하느님께서 당신께 단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보고 계심을

알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에 주목하기 보다는 하느님의 시선에만 집중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시지 않고 항상 혼자 있을 때도


나를 바라보고 계시는 하느님께만 잘 보이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 분이 보는 앞에서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시선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어떻게 사람의 시선을 두려워 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눈이 한 순간도 나를 떠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죄를 짓기 위해 눈을 감아버리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바로 죄를 짓기 위해 하느님께서 바라보시는 것을 잊고 뱀과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죄를 지은 이후부터는 하느님의 시선은 사랑의 시선이 아니라

심판관의 무서운 시선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로부터 더 숨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시선을 떼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죄를 짓기 위해 하느님의 시선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며 살면, 사람의 시선조차도 커다란 짐이고 그래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정말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면

먼저 하느님의 시선 앞에 당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세상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처럼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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