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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순시기도  얼마남지않았네요.   이 사순시기 잘 보내셔서 기쁜 부활 되시구요...
또 신부님의 오늘 복음 묵상을 올리게 되었네요. 제가  읽고  나누어도 좋겠단 생각에서 올리오니,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께는
양해를 구합니다. 

특히 저는  이 부분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이 세상 안에서 자신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하나도 없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배려해주셨기에 이 모든 것을 누릴 수가 있는 것이지,
나의 능력과 재주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스스로의 능력과 재주만으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모든 분들과 함께 하시고,  기억하시길 바라며 두손모아 기도 바칩니다.


2009년 4월 2일 사순 제5주간 목요일

제1독서 창세기 17,3-9

그 무렵 3 아브람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자, 하느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4 “나를 보아라. 너와 맺는 내 계약은 이것이다. 너는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5 너는 더 이상 아브람이라 불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너의 이름은 아브라함이다. 내가 너를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6 나는 네가 매우 많은 자손을 낳아, 여러 민족이 되게 하겠다. 너에게서 임금들도 나올 것이다.
7 나는 나와 너 사이에, 그리고 네 뒤에 오는 후손들 사이에 대대로 내 계약을 영원한 계약으로 세워,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 8 나는 네가 나그네살이하는 이 땅, 곧 가나안 땅 전체를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영원한 소유로 주고, 그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
9 하느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계약을 지켜야 한다.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야 한다.”


복음 요한 8,51-59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5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52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이제 우리는 당신이 마귀 들렸다는 것을 알았소. 아브라함도 죽고 예언자들도 그러하였는데, 당신은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하고 있소. 53 우리 조상 아브라함도 죽었는데 당신이 그분보다 훌륭하다는 말이오? 예언자들도 죽었소. 그런데 당신은 누구로 자처하는 것이오?”
5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나 자신을 영광스럽게 한다면 나의 영광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너희가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하고 말하는 바로 그분이시다. 55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면 나도 너희와 같은 거짓말쟁이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분을 알고 또 그분의 말씀을 지킨다.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57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당신은 아직 쉰 살도 되지 않았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다는 말이오?”
5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59 그러자 그들은 돌을 들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숨겨 성전 밖으로 나가셨다.




요즘 사순시기라서 사순특강을 하러 여러 본당을 다닙니다. 그러다보니 요즘에는 특히 말을 많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특강을 할 때 분위기가 좋으면 쉬지 않고 내리 2시간까지도 이야기하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그리고 강의 도중에 물도 마시지 않지요. 이러한 저를 보면서 사람들은 말씀을 하세요.

“신부님, 목 안 아프세요? 그렇게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시니 말이에요.”

그러면 저는 말하지요.

“저는 선천적으로 목이 튼튼해서 그런지 전혀 아프지 않아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목이 쉬어 본 적도 없거든요.”

이렇게 말하면서 튼튼한 목을 가졌다고 스스로 흐뭇해했었지요. 그런데 잘난 체 할 것 없다는 것을 요 며칠 동안 느끼게 됩니다. 글쎄 목감기가 온 것입니다. 그래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강의 때 노래를 몇 곡 부르기도 하는데 높은 음이 올라가지 않아서 돼지 멱따는 소리를 신자들 앞에서 내는 창피함도 겪게 되었지요.

이 세상 안에서 자신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하나도 없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배려해주셨기에 이 모든 것을 누릴 수가 있는 것이지, 나의 능력과 재주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스스로의 능력과 재주만으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태에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알아 볼 수가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공격하기에 바쁩니다. 이제 말로써 도저히 되지 않으니 “이제 우리는 당신이 마귀 들렸다는 것을 알았소.”라고 말하면서 억지까지 부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돌을 들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지요.

이들의 이런 모습들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들의 능력과 지위만을 드러내려는 이들의 눈으로는 예수님을 결코 알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자동차는 움직일 때에만 방향을 바꿀 수가 있지요. 멈추고 있을 때에는 아무리 핸들을 돌려도 방향이 조금도 바뀌지 않습니다. 이처럼 자기 안에 머물러서 멈추어 있으면 안 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우리들은 움직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 때부터 이어져 온 후손 대대로 지켜야 할 하느님과의 계약을 실천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나’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하느님과의 계약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으며, 나의 능력과 재주는 하느님 앞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예수님처럼 낮은 자의 모습으로 겸손하게 사는 것이 주님의 뜻에 맞게 사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알게 된다면, 누구든 이 세상에서 네 명 이상의 친구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키에르케고르)



언제 어디서든 기도할 수 있습니다(양승국, ‘생활성서’ 중에서)

열심히 노력한 끝에 좋은 결실을 얻었다면
그 순간은 바로 기도할 순간입니다.
기쁨에 찬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겠지요.
아름다운 자연을 접했다면 마찬가지로 기도할 순간입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그랬던 것처럼
창조주 하느님을 향한 찬미의 노래를 불러야겠지요.
누군가로부터 깊은 상처를 받았다면
그 순간 역시 기도할 순간입니다.
더 이상 내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그 상처를 객관화시킬 수 있도록 더불어 상처준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도록 기도할 순간입니다.

결국 기도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경 속에서도 하느님 사랑 안에 영적진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삶이 비록 고통스럽지만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용서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금 자신을 비워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모든 만남 관계
오늘 접하게 되는 일상의 모든 사건들 안에서
하느님께서 활동하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찾는 것 그것이 결국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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