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03 22:52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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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을 떠나 보내면서...

 

+ 그리스도의 평화
 
 
故 노무현 前 대통령을 보내면서 
 
혼란스러웠던 지난 한 주간을 보내면서... 어떤 형태로든 한국 현대사에 또 한장의 획을 근 사건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물론 정리될 것 같지도 않고, 때로 정리한다는 것이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혼란스러운 날들이었습니다.
 
한국의 정치현실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한국 사회는 혼란스럽습니다.
게다가 전 세계의 경제적 혼란으로 잃은 엄청나게 많은 서민들의 일자리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현실.
한마디로 한국은 서민들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
모든 것이 갖춰진 사람들에게는 한국 사회는 희망이요 즐거움이요, 사는 것이 낙일 수도 있습니다.
가진 것을 주체하지 못해서 허영에 들 뜬 사람들과
더 가지기 위해서 아우성 치는 사람들.
못 가진 것에 대한 상대적 빈곤감으로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현실 때문에 목숨을 끊는 사람들...
 
정상적인 세상은 분명히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현실들을 애써 우리들 밖으로 내밀어 외면해온 것도 사실입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비리 조사로부터 그가 퇴임 후 평화로운 봉화 마을에로 촌로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다고 했을 때부터 비극은 시작된지도 모릅니다.
평생을 서민들을 위해서 살고 싶었던 인물이었지만, 한국 정치의 현실이 싫어서 떠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바꿀 수도 없었던 그 괴리감 속에서 살아온 인생.
아마 그가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그토록 극단적인 결단을 내리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최소한 자신이 살 수 있는 길은 있었을테니까요.
 
하지만 그에게 너무 막다른 길이었나 봅니다.
피해 나가기에는 너무 자신의 자리가 컸던 모양입니다.
대통령까지 했고, 그 신분을 안고 살기에는 현실 세계는 그를 촌로로, 아주 평범한 사람으로 살게 놔두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현재 권력과 부를 누리는 이들이 스스로의 도덕성을 마비시키는 데 너무 걸림돌이었을테니까요.
 
어째든 노무현씨는 황망하게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솔직히 최근 측근 비리 조사와 뇌물 수수혐의로 검찰 조사와 소환으로 누렇게 뜬 그의 얼굴, 애써 웃어보이려는 그의 얼굴에는 이미 망가질때로 망가진 그의 인생 여정이 보였습니다.
 
여러 방송에서 이미 보았듯이, 그가 봉화 마을에서 평화롭게 사던 영상들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습니다.
어쩌면 그는 대통령까지 오르지 않았어도 한국 정치 현실에 커다란 화두를 남겼을 만한 인물이었을텐데.
한국인들은 그를 아직 대통령으로 모실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그가 대통령의 권좌에 앉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추모의 글에서, 그가 우리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를 대통령으로 모실 자격이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제의 영결식과 노제에서 보여준 한국민의 슬픔과 애도는 참으로 컸습니다.
그것은 노무현 개인에 대한 슬픔이라기보다는 도덕과 원칙, 신뢰를 몸으로 살다가 결국 자신이 가진 한계의 벽에서 무너진 한 인간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현실에 대한 슬픔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원래 우리는 공감하는 민족입니다. 정도 많고, 이성적 논리보다는 감성적 직관에 익숙합니다.
검찰의 진실 공방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시기때처럼 수구세력과 언론에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고,
그것을 혼자서 견대 내기에는 너무 벅찼는지도 모릅니다. 그 고통을 우리가 상상할 수는 없었겠지요
더구나 도덕적 결벽증까지 가진 그에게 자기의 평생 동지였던 이들과 가족까지 검찰로 끌려가게 만든 상황은
이미 그가 자살을 선택하기 이전에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지옥을 체험하게 했을 겁니다.
 
그래서 그의 유서에는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불교의 가르침에 더 많은 위로를 받았는지도 모릅니다.
천주교 영세를 받았지만, 그가 받은 영세는 정의구현을 위해 뛰던 가톨릭교회에 대한 매력 때문이었지
생과 사를 이해하는 그리스도교 고통에 대한 이해와 부활 신앙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가톨릭 신앙은 세상 속에서 정의를 외치고 하느님나라를 외치는 현실적인 종교로 보였을 겁니다.
 
이제 그를 떠나 보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는 스스로 이러한 삶의 굴레를 벗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일 없이... 그냥 그렇게 떠나는 것이 모두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래도 그것이 최선이었느냐에 대해서는 아직도 할 말이 많습니다.
 
어떤 무식한 천주교 신자가 그랬다더군요. "노무현이는 자살했기 때문에 구원 못 받아요"...
그를 애도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의 죽음을 비양대는 많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치 영결식장에서 묘한 웃음을 던지는 듯한 이명박씨의 사진을 보면 더 그렇습니다.
 
죽음은 삶의 종결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생사일여는 불교의 순환적 세계관에서 나온 말이지만,
사실 그리스도교도 생사일여를 체험한 우리 식의 말은 죽음과 부활이 하나라는 것입니다.
죽음이후에 부활이 오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죽지 않으면 부활을 체험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참으로 죽지 않으면 참된 영원을 체험할 수 없다는 우리들의 근본 진리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사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는 그 순간 지금 여기에 와 있다고.
세상에 살면서 천국도, 지옥도 우리들의 체험 영역의 하나 입니다.
죽어서 체험할 천국과 지옥이라면 그건 상상과 다름 없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현실이 되려면, 그것이 현실 속에서 체험되어야 합니다.
다행히 우리 삶이 늘 천국이지 않고, 우리 삶의 늘 지옥이지 않다는 것이 그래도 다행입니다.
그래서 삶은 우리에게 언제나 과제이고 도전인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죽음의 순간에, 우리의 삶이 종결될 때,
나의 삶의 의미와 그 모든 것에 대한 평가를 하느님께 맡기는 삶.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요한이 어찌 될 것인지 묻는 말에
그런 것은 상관 말고 "너는 나를 따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시대의 아픔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남이 어찌될 지를 걱정하기 보다는 우리 자신들의 선택과 결단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남이 나를 따르는 것을 본 받으라고 하시기 이전에
우선 "너는 나를 따라야 한다"라는 소명을 주십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보내는 모든 국민들이 한결같이 외친 말이 있습니다.
 
"당신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이제 당신의 뜻을 우리가 따르겠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하고 지나간, 굴곡 많았던 인간의 생에 대한 응답이 이럴진데
신앙의 우리들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마음은 어떨지.. 반성해봅니다.
 
이제 성령강림대축일을 맞습니다.
우리 시대는 성령을 참으로 필요로 하는 시대입니다.
아니 이미 우리의 존재와 더불어 살아가는 성령을 체험하고 깨닫는 일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위로자, 협조자, 동반자.. 빠라클리토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이 세상 끝날까지 함께 이끌어 주심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이 있는 곳에 희망과 사랑이 넘쳐 납니다. 신앙이 없다면 그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고, 어떤 사랑도 베풀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과 희망도 결국 우리가 사랑해야 드러나는 법입니다.
삶으로 희망을 살고, 믿음을 살 때... 그 때 사랑은 세상의 빛이 될 것입니다.
고통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생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용기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듯 싶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의혹이 여전히 남아 있는 현실 앞에서
그의 죽음과 생의 의미를 속단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가 남겨준 인생의 메시지 만큼은 우리모두가 귀 기울여 들어야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신학하는 즐거움 카페지기

송용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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