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21 05:38

마태 13장 (1 -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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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1    그날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앉으셨다.

 

2 그러자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물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다.

 

5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7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8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들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9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

 

10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리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12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13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14 이렇게 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저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15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와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16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설명하시다

 

18    그러니 너희는 씨 뿌리는 사라의 비유를 새겨들어라.

 

19 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20 돌밭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21 그러나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는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22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23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

 

 

가라지의 비유

 

24    예수님께서 또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25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26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27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28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하고 묻자,

 

29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30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겨자씨의 비유

 

31    예수님게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

 

32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누룩의 비유

 

33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비유를 들어 가르치시다

 

34     예수님게서는 군중에게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35 예언자를 통하여

 

              나는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리라.

              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것을 드러내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가라지의 비유를 설명하시다.

 

36    그 뒤에 예수님께서 군중을 더나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와, “밭의 가라지 비유를 저희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7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르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38 밭은 세상이다. 그리고 좋은 씨는 하늘 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들이며,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

 

40 그러므로 가리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41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42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43 그 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보물의 비유와 진주 상인의 비유

 

44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팔아 그 밭을 산다.

 

45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46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그물의 비유

 

 

47    또 하늘 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48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가득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49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50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비유를 끝맺는 말씀

 

51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제자들이 !” 하고 대답하자,

 

52 예수님게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곶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53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들을 다 말씀하시고 나서 그곳을 떠나셨다.

 

 

나자렛에서 무시를 당하시다

 

54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55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56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은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57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는 존경받지 못한다.”

 

58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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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투리 2009.03.18 20:34

    예전 성서공부 창세기연수 갔다온후 개신교에서 성모님을 비판하는 성서적 근거와
     
    그에대한 답변을 창세기연수 신부님 홍상범 신부님께서 답변해 주신 내용입니다.


    카톨릭은 마리아를 영원한 동정녀라고 해서 평생 처녀로 지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예수님의 4형제 아고보, 요셉, 시몬, 유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 13/55)

    또한 예수님은 누이들도 있습니다. (마태 13/56)

     

    예수님의 친형제 자매는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형제라는 야고보,요세(요셉),시몬,유다스(유다)는

    친형제라고도 하지 않고 사촌형제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형제라는 용어는 친척형제도 형제라고 하였습니다.

     

    열교 개신교는 유대인 바리사이파와 같이 성모마리아가 평생동정녀라는 것을

    부인하기 위해 예수님의 친형제가 있었다고 하나 그건 예수님을 욕되게 하는

    신성모독입니다.

     

    이것은 열교 개신교의 창시자에 해당하는 인물(루터,칼뱅, 츠빙글리)들도

    이구동성으로 성모마리아는 평생동정녀 였다고  인정했던 것과도 배치되는 문제이며

    모순입니다.

     

    야고보서의 저자로 추측되는 사도 야고보가 예수님의 형제라고 하는데

    정경에는 끼지못한 외경  『야고보의 최초 복음 』에 의하면

    복음서에 나오는 형제들과 자매들은 성모마리아의 자식이 아니라는 증언이 나옵니다.

    이는 그 시대적 사실이 반영되었다는 증거이며 전승으로 이어져온 내용 중에 하나입니다.

    카톨릭은 마리아가 죽지 않고 하늘로 승천해 하늘 여왕이 됐다고 가르칩니다.
    몽소승천 교리는 A.D. 1951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선언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늘에 있는 사람의 아들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고 명시합니다. (요한 3/13)
    천주교의 마리아 숭배는 고대 이교도들의 여신 숭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성모 승천은 비록 성서에 기록된 사실은 아니지만 초대 교회 때부터 내려오는 전승과 특히 구원의 역사인 구세사(救世史) 안에서 마리아가 차지하는 탁월한 역할을 바탕으로 교회가 선포한 믿을 교리다.



    교회가 성모 승천 축일을 언제부터 기념하게 됐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그 기원은 약 4세기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순교자나 성인들을 그들의 사망일에 기념하던 관습에 따라 4세기 중엽에 '복되신 동정녀 기념일'을 성모의 죽음과 승천을 기념하는 축일로 지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 6세기쯤에는 축일의 이름이 '도르미시오(dormitio)'라고 불려지기도 했다. 도르미시오란 '일시적으로 잠에 떨어짐'이란 뜻으로, 지상생활을 마친 후 성모 마리아의 상태를 표현했다. 그후 8세기에 들어와서 이 축일을 기념하는 날짜가 8월15일로 확정됐으며 이때 축일의 명칭도 '도르미시오'에서 '마리아의 승천'으로 바뀌었다.



    이후 성모 승천 대축일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1월1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월25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12월8일) 등과 함께 교회 전례력에서 성모 마리아를 특별히 기념하는 대축일 중 하나로 지켜져 내려왔다.



    그러나 성모 승천이 가톨릭 교회의 믿을 교리로 공식 선포된 것은 불과 50년 전의 일이다.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1월1일 교황 비오 12세는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신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지상의 생애를 마치신 뒤 영혼과 육신이 함께 천상의 영광에로 들어올림받으셨다는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계시된 진리”라고 선포함으로써였다.



    이 선언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마리아의 승천은 마리아가 자신의 힘으로 하늘에 오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으로 하늘로 들어올림받았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마리아의 승천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구별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권능의 힘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리아의 승천을 전에는 몽소승천(蒙召昇天) 또는 피승천(被昇天)이라고도 불렀다.



    덧붙여서 생각할 것은 예수 승천과 마찬가지로 마리아의 승천이 나타내는 '하늘'은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점이다. 달리 말해서 마리아의 승천은 '마리아가 지상생활을 마친 후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누리시는 충만한 영광에 들게 되었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가 마리아의 승천을 '믿을 교리'로 선포하면서까지 마리아에게 각별한 영예와 공경을 바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마리아가 구세사에서 수행한 역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마리아는 아들을 낳으리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처녀임에도 불구하고 순명으로 '예'하고 응답했을 뿐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실천하는 데 일생을 바침으로써 구원사업의 뛰어난 협조자가 되었고 나아가 모든 신앙인들의 모범이 되었다.



    바로 이런 역할로 인해 마리아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지상생활을 마친 후에도 그 육신이 부패되지 않고 영혼과 육신이 함께 하느님의 영광 속에 들게 되었다고 교회는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마리아의 승천은 또 우리에게는 희망의 표지가 된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지난 1974년에 발표한 교황 권고 '마리아 공경'에서 성모 승천 대축일은 “마리아의 완전하심과 복되심, 동정의 몸과 흠없는 영혼이 누리시는 영광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완전히 닮으심을 기념하는 축제일”이라며 “따라서 이날은 교회와 전인류에게 그 바라던 종국적인 희망이 실현됨을 보여주는 축일”이라고 설명했다. 즉 마리아의 승천은 인류 구원의 역사가 완성되었을 때 그리스도 안에서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누리게 될 구원의 영광을 앞서 보여주는 위로와 희망의 표지라는 것이다.



    따라서 신앙인들에게는 일생을 오로지 하느님의 뜻에 순명한 마리아의 모범을 따라 일상생활 속에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깊이 헤아려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자세가 요청된다. 이것이 마리아 공경의 올바른 자세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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