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28 20:27

소 풍 - 도종환

조회 수 1400 추천 수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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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 풍 - 도종환

                                                      
밤나무 연두색 잎이 돋아 오르고 
아침부터 뻐꾸기가 웁니다.

바람이 커다란 옷감을 펼쳐 
나무들의 푸른 이파리를 흔들어 깨우며 
산을 넘는 게 보입니다. 

골짜기마다 군데군데 모여 서 있는 
침엽수의 짙은 녹색 사이로 자라 오르는 
연두색 활엽수 잎들, 

그리고 연회색 이파리를 일제히 뒤집으며 
햇빛을 털어내는 
나무들의 군무가 장관입니다.

하늘이 티 하나 없이 파랗고 햇살 밝은 오월 아침.
아이들 손잡고 소풍을 가고 싶습니다. 

칙칙한 교복은 모두 벗어버리고, 
저마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조금씩 멋도 부려보고, 
창이 있는 모자도 하나씩 쓰고, 
입이 찢어지게 웃고 떠들며 
교문을 나서고 싶습니다. 

길가에는 민들레 하얀 씨앗이 
동그란 보석처럼 맺혀 있고 
저게 애기똥풀이다 아니다 떠들며 걸어가고 싶습니다.

차 온다고 줄 좀 맞추라고, 여러 명씩 손잡고 걷지 말고 
길 가장자리로 둘씩 걸어가라고 하다가, 
나도 슬그머니 아이들 손을 잡고 걸어가고 싶습니다. 

보리는 쑥쑥 자라 오르고 
사과꽃은 하얗게 핀 길을 걸어서, 
걸어서 봄소풍을 가고 싶습니다. 

별것도 아닌 이야기를 하며 까르르 웃어대는 
맑은 웃음소리에 섞여 봄길을 걸어가고 싶습니다.

빈터에 자리를 깔고 앉아 김밥도 나누어 먹고,
 “선생님 이거 엄마가 갖다 드리래요.

”가방에 지고 온 고구마 몇 개를 
내 앞에 밀어놓고는 쏜살같이 달아나는 아이, 

그 옆에 놓여 있는 담배 두 갑이 든 봉투, 
그리고 사이다 한 병, 그 옆에 반장 엄마가 싸다 준 김밥, 
이런 것들을 쳐다보며 
낮술 딱 두어 잔만 하고 싶습니다.  

보물찾기는 촌스럽고 노래자랑도 시시하지만 
아이들 손에 끌려가 반강제로 노래 한자락 하다가 
민망한 스냅 사진도 여기저기서 찍히고 

평소에 교실에서는 전혀 몰랐던 아이들의 
숨은 장기에 놀라 눈이 동그래지고 싶습니다. 

오후에 학교에 돌아와서도 
다사로운 햇살이 좋아 집에 들어가기는 싫고 
공연히 밍그적 거리다 다가와 

“선생님 쓰레기 다 치웠는데요, 
우리 맛있는 것 좀 사주시면 안돼요.”몸을 비비꼬며 
말을 꺼내는 미란이를 보고 
옆에 있던 애들도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지르는 
오후의 빈 운동장.

내가 웃기만 하고 대답이 없자,
“선생님, 그냥 두 글자로 된 거요.”

나는 오뎅, 튀김, 라면, 김밥, 만두....
이런 두 글자들을 떠올리다 “그래, 좋다. 사 줄게.”하고 
대답을 하고는 학교근처 식당으로 몰려갔는데 

문을 들어서며 큰소리로 음식을 주문하는 
미란이의 목소리.

“아줌마, 우리 탕슉!”
바로 터져 나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쏟아지는 인사.
“고맙습니다, 선생님. 잘 먹을 게요.”

그런 왁자지껄함에 쌓여 한번만 더 
아이들에게 속아 넘어가고 싶습니다.

아니 할 수만 있다면 오월에는 
교생이 되어 여학교 교실 문을 들어서고 싶습니다. 

어제 산 새 양복을 입고 처음 만나는 학생들 앞에서 
설레며 서 있고 싶습니다. 

무슨 그럴듯한 이야기를 해야 하나 
밤새 궁리하다 정작 교실에서는 자꾸만 말을 더듬고 
철학적인이야기를 열심히 했는데 
교과와 관련이 없어 지도교사에게 지적받고 싶습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턱을 고인 채 
나를 쳐다보는 아이에게 자꾸만 눈이 가고 
그러다 시선을 둘 곳이 없어 창밖을 내다보고 싶습니다. 

그 예쁜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치는 
풋내기 교생이 되고 싶습니다. 

선생님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해도 
아이들은 내 편일 거라고 굳게 믿는 
1개월짜리 교생이 되고 싶습니다.

며칠 전에는 이십여 년 전에 가르친 제자에게서 
메일이 왔습니다. 

결혼했다가 혼자가 되었지만 
대학원 진학하여 공부도 시작했고 
세 살 어린 남자친구도 생겼다고 했습니다. 

다른 친구들 소식도 소상하게 전해왔습니다. 
누구는 3학년 5학년 아이 둘 키우기에 바쁘고, 

누구는 전화만 하면 아들 자랑이고, 
또 누구는 
대학선생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제자들에게서 오는 소식은 언제나 반갑습니다. 
세월을 건너뛰어 금방 다시 열 몇 살짜리 소녀와 
초년교사 시절로 돌아갑니다. 

흉도 같이 보고 같은 편이 되어 힘내라고 
격려도 해 줍니다. 
일마다 다 잘 되었다고 하고, 
잘 될 거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소식이 끊어진 제자 생각에 
서운해지곤 합니다. 

학교 다닐 때 얼마나 가깝게 지냈는데 
어떻게 이렇게 소식 한번 전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섭섭해집니다. 

그러다가 혹시 내가 그 애를 
실망스럽게 한 일은 없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 애가 매우 섭섭하게 느낀 일이 있어 
천천히 마음을 거두어 버린 것은 아닐까. 

가까이 있다면 묻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고 
서로 사는 게 바빠서 연락도 자주 하지 못하고 
그러다가 그만 나중에는 연락하기도 미안해서 
영영 소식을 끊고 지내는 것처럼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하늘은 푸르고 
추녀 끝에는 양철물고기가 몸을 흔들어 
제 몸으로 저를 때리며 풍경이 웁니다. 

풍경소리 아래 나 혼자 앉아 있습니다. 
아직도 뻐꾸기 울고 그 소리 혼자 듣고 있습니다. 

공연히 슬퍼져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만 바라봅니다. 

눈을 감으면 더 생각이 날 것 같아서 
눈을 뜨고 앉아 나뭇잎 바라봅니다. 



--
아마도 안드레아님 방송 못하것 같아서리
이럴게 제가 아마 방송 못들어 갔서리
촌사람님 방송하것 같아 오늘은 이럴게
글과 함께 신청과 함께 올립니다,
오늘도 이제 주일이 다가오는 목요일입니다,
진짜루 시간이 빨리갑니다,
다음달은 달력을 보니 2월달이네요
오늘도 존 하루 마무리 하세요^^**
[깔릭스] 주님 사랑 우리 안에
203.갓등1_01.내발을씻기신예수
이럴게 두곡 청해요^^**

?Who's 두레&요안나

profile

찬미예수님 요안나입니다,
저는 광주 교구 송정2동 원동 본당에
다닌  신자인 요안나입니다,
여렸을때 신동에 다녔다가
현제는 원동에 다니고 있습니다,

  • ?
    촌사람 2010.01.29 01:13
    찬미 예수님!
    요안나님 글 감사드립니다.
    어릴때 소풍 가던 생각납니다..
    보따리에 사이다 한 병,사과 두 어개 계란 한 두개..김밥 한 줄.ㅎㅎㅎ
    그래도 소풍간다는 생각에 전날 설레임에 잠 못이루던 기억들..
    아련히 멀어져간 우리의 소중한 추억들 입니다..
    기쁜 추억을 떠올리게 하시는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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