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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하신 이태석 세레자 요한신부님의 영혼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2010.01.15by 촌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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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를 위해 기도드립니다 2010.01.14by 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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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살레시오 수도회 홈페이지의 공지사항을  옮겨 와

caccm 공동체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주님 안에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이태석 세례자 요한 신부님(만 48세)이 1월 14일(목) 오전 5시 35분

서울 성모병원에서 선종하셨습니다.

빈소:서울 신길동 살레시오회 관구관 4층(02-828-3500)

장례미사:2010년 1월 16일(토) 오전 8시 30분 관구관 7층 대성당

장지:전남 담양 살레시오회 성직자 묘역


=========================================================
( 신부님 입관식은 1월15일 금요일 11시 입니다.

 입관식 이후부터는 (12시경) 신부님을 뵐 수 있습니다.

 수도회의 배려로 계속 장례미사때 까지

 신부님의 얼굴을 모든 분들이 직접 뵐수있도록 안치할 예정입니다. 

====================================================================

빈소] 잠시 두 눈을 감으셨나요


 

 

 
신길동 돈보스코 센터 살레시오회 관구 4층에 마련된 고 이태석 세례자 요한 신부님의 빈소



쫄리 요한 신부님,

나의 사랑의 깊이를 떠보시려
잠시 두 눈을 감으셨나요.

가신 후 그대는
수단 톤즈의 큰 바위 되었어라
 

........

그대는 촛불아래 바로 내 곁에서,
그대 눈빛은 그대 품에 안긴 나를 쓰다듬어 주네요.

 말해보세요.
더 이상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싶겠느냐고
이 많은 시간 동안에

  그것은 그대가 보여준 우리들을 위한
사랑 오직 그 하나!

그대여, 이제 무거운 짐 모두 내려 놓으시고
하느님 품안에서 편히 쉬세요.

우린 평생 그대를 잊을 수 없을거에요
 그대를 사랑해요!  
 동그라미 수사



  

 
                           눈물을 흘릴지라도

 

 

 

눈물을 흘릴지라도 사랑에 빠질거예요.
그건 진정한 행복에서 오는걸요.
내 전부를 그대 손에 놓이면
내 가슴은 더 강하게 뛰어요.

사랑하는 그대,
나 눈을 감고 그대 입맞추리.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그대,
내 부드러움이 그대를 깨어있게 한다면

밤은 얼마나 길지!
내 영혼을 녹여줄 그대 따뜻한 손을 느껴요.
그대의 느낌이 나를 사정없이 만들면
이 밤은 얼마나 길어질지!

우리들을 위해 오직 사랑
나, 그대를 사랑해!
그대는 촛불아래 바로 내 곁에서,
그대 눈빛은 그대 품에 누운 나를 쓰다듬어 주네요.

말해보세요.
더 이상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싶겠느냐고
사랑해!
그대를 이 많은 시간 동안에

.....

독일노래 '나, 그대를 사랑해’
번역한 우리말 가사입니다.

선종하신 요한 신부님의 영혼을 생각하며
위로의 말씀과 함께
살레시오 가족 여러분에게 드립니다.


성바오로수도회
동그라미 심재영 예로니모 수사


이태석 요한 신부님을 생각하며 

 

 

 

사랑하는 영혼 나의 벗들아 !


사랑하는 영혼 나의 벗들아

찬미의 날개 높이 펼쳐

행복이 꽃피는 임의 동산

훨훨 올라들 가자

 

 희망이 손짓하는 곳

평화가 강물처럼 흘러넘쳐

천상 오곡백과 풍성히 열매 맺는

아름다운 그 곳으로

우리 올라들 가자

... 

아름다운 영혼 나의 벗들아

기도의 향기 높이 올려

사랑이 꽃피는 임의 동산

훨훨 올라들 가자

 

기쁨이 가득한 곳

웃음과 행복이 넘쳐흐르고

사랑을 만나 함께 춤추는

아름다운 그 곳으로

우리 올라들 가자

... 

태초 그 날 생기기도

나기도 전에

그 분이 나를 꾀어내어

하늘의 뜻대로 당신 바람대로

소원 이루어졌으니

 

나와 그대의 삶은

그리움과 염원으로 함께 가는 것

웃고 울었던 지난 세월

더러 생각나더라도

슬픔에 가슴 애일지라도

나 위해 슬퍼하거나 서러워마라

... 

수단 톤즈 어린이들의

저 순진무구한 눈망울을 보아라

 꽃그늘에 깃들어 사는 가난한 이들

세상 작은 어느 것 하나도

아낌없이

소홀함없이

돌보고 섬기어라

멈추임없이

언제나 사랑을 품고

오늘을 살아라

... 

5

사랑하는 영혼 나의 벗들아

천상 예루살렘

아름다운 그 곳으로

우리 올라들 가자

 

 은총과 축복이 넘쳐흐르는

사랑의 하느님 계시어 좋은 곳

아름다운 그 곳으로

훨훨 올라들 가자

 훨훨 올라들 가자 

.. 

Thanks to 

그대 있어 빛나는 날 
나 언제나 그대들과 함께 하리니 

사랑하는 그대들이 함께 있어 주어

참으로 행복하고 고마운 날에

이태석 요한 신부  

....

이 글은 

한국 살레시오 가족 수도회와

 수단의 톤즈 공동체 가족과 어린이들,

수단어린이장학회& 이태석 신부 카페가족의

 사랑하는 분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이태석 요한 신부님의 바람과 감사의 마음을 

기도시로 적은 것입니다.

 

동그라미 심재영 예로니모 수사 드림

 

 

아프리카 수단의 어린이들과 함께


음악은....


2008년 11월 16일 형제회원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서울 신길동)


2008년 11월 28일 수단장학회에서 개최한 음악회에 참석한 이태석 신부님 


2009년 7월 춘천 사농동 여름 캠프장을 찾아 형제회원들을 만나 격려하고 기쁨을 나누는..

이태석 요한 신부님 가시는 길에....
 
하느님께서는 이태석 신부님을 너무 사랑하시어 그리도 빨리
보고 싶으셨나 봅니다.
우리들 마음에는 아직도 젊고,
해야할 당신의 사업들을 뒤로 한채 말입니다.
 
성직자로서, 의사로서, 교육자로서, 또한 건축가로서 
이 많은 일들을 혼자 하시는 모습에 내 가슴을 치며 주님의 일에 동참 한지도
일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사람에게 해 준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직자로서 일생을 바치신 신부님의 그 맑은 영성의 씨앗들이
이제는 저희들의 몫으로 열매를 맺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낍니다.
 
아프리카에서도 아주 열약한 수단 !!
그 톤즈땅에서  해맑은 눈망울을 가진 어린아이들의 꿈을 이루어 주기 위해
온 몸과 마음으로 헌신과 희생을 다하신 한국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님을
이 시간에 눈물을 흘리며 사모 합니다.
 
이태석 신부님!
진정 당신은 우리 마음에 사랑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새겨 놓으신 분이십니다.
어지러운 이 세상에
우리들의 눈을 뜨게 해 주셨고, 귀를 열게 하셨으며,
마음을 움직이게 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당신의 믿음에 그 믿음을 더하여, 진정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느끼려 합니다.
 
이 세상에서 청지기 역활에 충실하셨던 당신의 모든것을
닮을것입니다.
수 많은 이멜을 오가면서 저와 같은 나이로 친한 벗으로서 다가오셨고,
제 마음까지도 보담듬어 주셨던 일들을 이제는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사랑의 실천만이....
이것이 주님이 저희 모두에게 원하시는 일임을 깨닫고,
생을 다하는 그 날까지 저의 모든것을 봉헌하려 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19~20절에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저의 삶속의 레마로 묵상하며 실천하려고 합니다.
 
신부님 손을 한번도 못 잡아 봤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서로를 껴 앉았습니다.
그리고 같은 신앙안에 한 형제로서
진솔한 서로의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이태석 요한 신부님!!
진실로 진실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시간에 주님안에 아주 편안히 잠들고 계실
신부님의 모습을 그려 봅니다.
 
 
 
미주 아프리카 희망 후원회
간사 이인석 비오 드림
 

 
  • profile
    코이 2010.01.15 08:14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분이 하느님 곁으로 가셨군요..기도중에 기억하겠습니다.
  • ?
    스테파노0816 2010.01.15 09:50
    주님의 부르심을 온전히 순명하시다
    어렵고 힘든 길을 마다 하지 않으신 고귀하고 고귀한 신부님의 정성을 주님께서 기억하실 것이고
    남아 있는 저희도 잊지 않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신부님
    사랑합니다. 신부님
    당신께서 그렇게 뵙기를 희망하였을 우리 주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부디 부디 세상에서 못 이룬 아쉬움일랑 놓아 두시고 미소로 평안히 가십시요.... - 아  멘 -
  • ?
    가별 2010.01.15 10:22
    살레시오 수도회 홈페이지에 남기신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수녀님의 글 
    ---------------------------------------------------------------------------------------------------------
    이 한 생애,
    굵고 짧게 살다 가신 이태석 신부님!
    그 생애가 너무 아름다워 슬프기만 합니다.

    아들을 선교사로 떠나보내시는 것을 못내 섭섭해하셨다는 어머니와
    희망 안고 눈망울 반짝이는 수단의 꿈꽃들을 남겨두고
    어찌 그리 먼 길을 가까운 듯 단숨에 달려가셨습니까!

    인간의 눈에도 이리 아름다운 당신이기에
    하느님의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눈부시게 아름다웠나 봅니다.
    그렇게 빨리 하느님 곁으로 불리워 가셨으니 말입니다.

    암 세포가 자라기까지 자신을 돌보지 않고 투신한 당신,
    투병의 고통을 기쁘게 봉헌하신 당신,
    모든 것을 다 주님과 세상에 아낌없이 내어놓고
    홀연히 먼 길 떠나는 당신이
    오늘은 마냥 부럽기만 합니다.

    당신은 남아 있는 우리 모두에게
    엄동설한에도 지지 않을
    꽃 한 송이 피우고 가셨습니다.

    용서하세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이혜정 수녀
      
  • profile
    두레&요안나 2010.01.15 12:06
    하느님 품으로 가신 이태석 요한 신부님위해 기도드립니다,
    부디 당신을 품으로 가신 신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안에서 행복하세요
  • profile
    어떻게 어떻게 이런일이~이렇게 아름다운 천사같은 분을....ㅠ.ㅠ

    힘들고 어려운일에 평생을 봉사하신 신부님~하늘나라에서 하느님 품에서

    이젠 행복 과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아멘~ㅠ.ㅠ
  • ?
    ♣안드레아♪~♫ 2010.01.15 14:38
    오래전에 선하신 선생님 한분이 제게 해주신 말씀에~~
    착하고 좋은일을 하는 훌륭한 사람이 불의의 사고나 지병으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는 것은
    하느님나라에 급하게 중요한 일을 맏아서 할 천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데려가신거라는...

    남아있는 우린 마음 아프고 서운하지만
    이요한 신부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신 주님의 말씀을 생각해봅니다  
    이제 주님곁에서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 ?
    아리솔 2010.01.16 04:51
    건강 회복하시길 기도 드렸는데...
    앞서 말씀들 하신대로 하느님께서 급히 더 필요하신 곳이 있으셨나봅니다.
    따뜻하고 정이 많으신 분, 마음속에 오래오래 담아 두고
    힘들때마다 기억하겠습니다.
    이태석신부님께 평화의 안식을 주소서!

  • ?
    가별 2010.01.16 08:46
     2010년 1월 16일  이태석 세례자 요한 신부님(살레시오 수도회 소속)의 장례미사가 있는 날입니다
    아래의 글은  살레시오 수도회 홈페이지에  성바오로 수도회 심재영 예로니모 수사님께서  선종하신 이태석 세례자 요한 신부님을  기억하며, 떠나 보내는 마음으로  올리신 글을  옮겨 와 봅니다.
    참 2분 사이가 각별하셨나 봅니다.
    .

    요한 신부님, 사랑합니다
     축복의 길, 하느님 함께 편히 가시옵소서 

     


    사랑하는 이태석 요한 신부님.

      어느 날 그대는 안개처럼 다가와
    내 마음 꺼진 심지에 불을 부치고
    깊은 잠에서 나를 깨우네요

      사랑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커다란 눈망울 따뜻한 미소
    그대를 바라보면 나는 소년이 됩니다
    그대여 떠난다 말하지마
    그대가 가면 다시는 사랑할 수 없음을 압니다

      그대를 생각하면 가슴 떨리고
    이렇게 외롭고 슬퍼질까요

      사랑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사랑의 시' 중에서

    * * *  

    요한 신부님,
     
    당신의 화사한 얼굴은
    벌써 봄의 싱그러움을 노래합니다.

     다가올 봄은 희망을 얘기하고
    무덤을 향해 달려가는 사도들처럼
    우리의 꿈도 흐르는 물처럼
    당신을 향한
    부활의 기쁨, 행복, 사랑 가득 싣고
    흘러 흘러갑니다.

      그대와  함께 찾아올
    만남의 기쁨
    사랑, 축복을 가득 안고 말이죠.

    ... 

    요한 신부님, 사랑합니다. 
    축복의 길, 하느님 함께 편히 가시옵소서.

    2010년 1월 16일
    예수님, 성모님, 성 요한 보스코 마중나오시는 길에

    동그라미 예로니모 수사 드림

     

     

     

  • ?
    가별 2010.01.16 08:49



    굿뉴스 - 우리들의 묵상 2007년 1월 28일 해외 원조 주일 아침 묵상 글  - 노병규님의 글 입니다.


     

    나눔

    모랫더미 위에 앉아 한 아이가
    또 다른 한 아이에게 리코더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아마 먼저 배운 아이가
    또 배우고 싶어하는 다른 아이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겠지요.


    이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나눔’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이들은 무엇을 나누고 있는가.
    돈도, 빵도, 옷도 물질적인 그 무엇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은 분명 무엇인가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나눔이
    결코 물질적인 것이 아님을
    다시 깨달아봅니다.


    내가 먼저 알고 있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

    내가 할 줄 아는 것을
    다른 이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내가 먼저 얻은 것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어 갖는 것….


    나는 나눌 것이 없는 것만 같았는데 
    그러고 보니 나눌 것이
    넘치도록 많았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이 아이들이 제게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의 눈빛만 보면
    부끄러워지나봅니다. 
    가진 것이 너무 많은 것만 같아
    미안해지나봅니다.


    이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할 것들을
    저 혼자  다 갖고 있는 것 같아
    몸둘 바를 모르겠나봅니다.  
    이제 제가 가진 것들을
    조금씩 나누어야겠습니다.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들을
     이쯤에서 멈추어야겠습니다.
    이제 마음에서 맴돌던
    그 다짐들을 행해야겠습니다.


    저의 그 작은 나눔이
    이 아이들에게 한 조각의 빵이 되고, 
    희망이 되어 이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어놓을 수 있는 힘이 된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제가 한 생명을 살리고,
    그의 미래를 변화시킬 힘을
    가지고 있었다니….


    나누면서도
    제가 더 풍요로워짐을 느낍니다.
    제 것을 나누어주었는데도
    아무것도 줄어들지 않고
    자꾸만 자꾸만 나눌 것이
    더 많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나눔은 참 신기한 요술 항아리입니다.
    게다가 제 마음에 기쁨과 행복까지
    선물로 주니
    아무래도 이 나눔은 삶을
    행복으로 이끄는 비밀열쇠인 것만
    같습니다.

     

                - 이태석 신부 -

     

     

       이태석 신부는 질병과 내전, 굶주림으로 얼룩진 아프리카의 최빈국 수단에서 선교활동 및 의료봉사 등 아름다운 사랑을 실천하는 성직자이자 의사이다.
       1987년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안정된 의사의 길을 포기한 채, 자신의 꿈이었던 신부가 되기 위하여 다시 신학대학에 입학하여, 2000년 사제 서품을 받고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 지역에서 현재까지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그곳에서 희망을 잃고 죽어가는 오지 주민들과 아이들에 대한 자선 의료봉사를 시작으로 전무했던 의료시설을 개선하기 위해 주민들과 직접 모래와 시멘트로 병원(진료소)을 지어 매일 200여명의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수단어린이 돕기 후원회인「치박치박」을 결성하여 모금운동을 통한 아프리카 수단 오지 아이들과 주민들을 돕고 있으며, 후원회의 도움을 받아 최근에는 학교건물을 재건축하고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며 전쟁으로 희망을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희망을 찾아주는 등 교육활동에도 열성을 보이고 있다.
       그는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신부로, 인술로 세상을 구하는 의사로서 어려운 이웃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이태석 신부님의 곡 <묵상>가사 중에서...

     

    십자가 앞에 꿇어
    주께 물었네 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
    총부리 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이들을 왜
    당신은 보고만 있냐고
    눈물을 흘리면서
    주께 물었네
    세상엔 죄인들과
    닫힌 감옥이
    있어야만 하고
    인간은 고통 속에서
    번민해야 하느냐고

    조용한 침묵 속에서
    주님 말씀 하셨지
    사랑 사랑 사랑
    오직 서로 사랑하라고

    난 영원히
    기도하리라
    세계 평화 위해
    난 사랑하리라
    내 모든 것 바쳐
     

     
     

  • ?
    가별 2010.01.16 08:51
    굿뉴스 - 언론에서 본 가톨릭 란 -  서울대교구 홍보실 2004년 7월 15일  글 

     2004. 7. 15 경향신문, 한겨레

    이태석신부 ‘仁術로 평화의 씨앗 뿌린다’

    수단서 의료선교 펼치는 이태석신부


    방금 밭을 매다 온 농부 같은 구릿빛 피부의 이태석 신부(42)는 며칠전 머나먼 아프리카 수단에서 4년 만에 돌아온 참이었다. 인제대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과정을 거쳐 군의관으로 제대한 그가 무슨 인연으로 내전과 기아, 말라리아로 고생하는 수단에 가서 고생스런 의료선교를 하고 있을까.

    군의관 제대후 신학공부 2001년 서품
    反軍지역서 예수섬기듯 주민에 봉사


    “예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해주는 것이 내게 해주는 것과 다름없다’고 하셨습니다. 10남매의 9번째 아이였던 저는 어렸을 때부터 신부가 되고 싶었지만, 바로 위 형님이 신부가 될 때 어머님이 무척 서운해 하시는 걸 보고 참았어요. 하지만 91년 군의관으로 제대한 후에도 생각이 바뀌지 않아 샬레시오 수도원에 입회했어요.”

    생필품 부족에 ‘맥가이버’


    다음해 광주 가톨릭대학 철학과로 진학하면서부터 줄곧 이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누굴까 생각했다. 졸업 후 로마 샬레시오 대학에서 공부하던 99년 여름, 마음속으로 아프리카 선교의 결심을 굳히고 케냐로 떠났다. 거기서 수단 톤즈에서 20년 가까이 선교를 하던 제임스라는 인도 신부님을 만났다. 그때 이집트, 에티오피아, 케냐, 우간다에 빙 둘러싸인 수단이라는 곳에 대해 알게 됐다.

    “제임스 신부님은 수단에서 반군에게 잡혀 18개월간 포로생활을 한 적도 있었대요. 풀려난 후 다시는 수단에 안오리라 결심하고 케냐로 나왔다가 다시 수단이 그리워 돌아왔다고 하더군요. 그 신부님의 권유로 수단행을 결심했죠.”

    2001년 귀국해 사제서품을 받은 이신부는 제임스 신부를 따라 남수단 룸백 교구의 톤즈에서 선교 생활을 시작했다. 인도인 신부와 수녀들이 모래와 진흙으로 진료소를 만드는 것을 도와주었다. 진흙 진료소는 1년 뒤, 근사한 시멘트 진료소로 다시 문을 열었다.

    진료소에 필요한 전기는 직접 만든 간이 태양열 발전설비를 통해 공급받는다. 여기선 간단한 가구나 생활용품도 직접 만들어 쓰는 ‘맥가이버’가 될 수밖에 없다.

    “새벽 5시45분 일어나 미사를 드리고, 오전 중에 진료를 합니다. 오후에는 쉬어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몸에 무리가 오고, 당장 말라리아에 걸리거든요. 저녁엔 동네 아이들이 찾아옵니다. 기타와 피리, 오르간을 가르치고 제가 작곡한 노래와 율동을 가르치는데, 아이들이 그렇게 신나고 재미있어 할 수가 없어요. 다른 오락거리가 전혀 없으니까, 교회에 오는 것이 유일한 오락이지요.”

    작곡한 복음송 ‘대 히트’


    가톨릭 청소년 가스펠송 집에 실린 ‘묵상’이란 성가를 작곡한 것으로도 유명했던 이신부는 수단에서도 작곡 실력을 발휘해 ‘꼼바니’를 작곡했다. 100여년전 아프리카에 선교를 하러 왔던 이탈리아 꼼바니 신부를 기리는 흥겨운 노래로 금방 입에서 입으로 퍼져 이 지역내에서 최고의 히트송이 되어버렸다. 그가 작곡한 또 다른 성가 ‘네게 평화를 주겠다(I’ll give you peace)’는 내전중인 남북 수단의 평화회담을 기념한 노래다. 현재 수단은 미국이 지원하는 북수단 이슬람 정권과 남수단 반군이 총부리를 겨누고 있고, 이신부가 있는 톤즈는 남부 반군의 세력권에 있다.

    “수요일에는 이동진료를 나갑니다. 이 톤즈 지역 진료소는 ‘국경없는 의사회’가 하는 곳과 이곳 두 군데 뿐이거든요. 거리상으로는 몇㎞ 안되는 가까운 이웃마을이라도, 도로가 없고 길이 험해서 꽤 오래 걸려요. 죽을 병에 걸린 사람들이 며칠동안 들것에 실려 오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여러 사람이 번갈아 들것을 메야 하기 때문에 한 20여명이 떼지어 와서 진료소가 시끌벅적해요. 10살 이전에 반수가 사망하는 이곳에서는 정말 치료를 받는 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이지요.”

    수단에 뼈를 묻고 싶은 이신부의 눈에는 ‘치박(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며 달려오는 산토스, 약, 바보야, 아돌 같은 아이들 얼굴이 벌써 어른거린다. 하지만 4년 만의 한국행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 지난 4월 수단에 들른 수원교구장 최덕기 주교를 비롯한 교구민들이 오는 30일 여는 ‘치박, 치박’이란 수단돕기 모임 발족행사를 비롯해 여러 자선행사에 참여해야 한다. 이날 행사에서 이신부는 탤런트 권상우에게 영세를 주고, 권상우도 명예회원으로 참여하게 된다. 또한 내달에는 산부인과 실습 등 진료소 운영에 필요한 의료기술을 배울 계획이다.

    “저와 함께 그곳에서 봉사할 한국인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의지도 되고, 한국말도 할 수 있으니까 좋을 것 같아요.”

    추석을 어머니와 함께 지내고 9월말이나 10월초에 다시 비행기를 타는 이 신부는‘sdbgiolee@inmarsat.ocicnet.net’이라는 인공위성을 통한 긴 인터넷 연락처를 적어주었다.

    〈2004-07-15 경향신문, 이무경 기자, 문화20면〉





    남수단서 사랑의 의술 피는 이태석 신부

    전쟁·질병·하루 죽 한끼‥
    죽음 가까워도 생명은 피고


    로마의 살레시오 신학대학교 졸업을 앞둔 여름 방학때였다. 아프리카 선교를 꿈꾸던 이태석(43) 신부는 케냐의 나이로비로 답사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나이로비는 유럽 도시의 축소판이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아프리카의 아픔과 상처’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실망했다. 그때 30여년간 남수단에서 활동해온 제임스 신부를 만났다. 그는 이 신부에게 남수단을 권했다. 나이로비에서 2800km 떨어진 곳이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하는 것이 나에게 하는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그들을 두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사람이 저렇게도 가난할 수 있구나, 저렇게 죽음 가까이서도 살 수 있구나….“

    45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 잘 해야 하루에 수수 죽 1끼만 먹는 사람들, 여기저기 깔린 지뢰에 팔다리가 날아간 사람들, 간단한 열병이나 맹장염에도 죽어가는 아이들. 10여일간 지프를 달려 도착한 남수단 톤즈에서 그는 보았다.

    수단은 22년째 내전중이다. 정권은 북쪽의 아랍계가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수단의 2/3를 차지하고 있다. 수단의 원주민들은 제 고향에서 쫓겨나 척박한 남쪽으로 이주해야 했다. 그런데 거기에 석유가 잔뜩 매장돼 있을 줄이야. 북수단은 원주민을 남수단에서마저 내쫓으려 했다. 이에 맞서 남쪽 주민들도 무장했다. 이른바 ‘반군’이다. 미국은 남수단에 매장돼 있는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북수단 정부를 지원했다. 남수단을 쉽게 먹어치울 것으로 기대했다. 북수단은 남수단 사람들을 아예 말려 죽일 생각으로 남부 지역을 철통같이 봉쇄했다. 남쪽 사람들은 북쪽에서 옷가지 하나 반입할 수 없다. 모든 물자는 남쪽으로 2800km 떨어진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육로로만 들여올 수 있다.


    남수단 톤즈의 아이들과 함께. 천주교 수원교구 제공


    그러나 내전은 장기화됐다. 세계 여론도 나빠졌다. 그러자 미국은 최근 남북 수단의 평화회담을 중재하는 양의 탈을 뒤집어 썼다. 내전은 2년째 소강상태다. 그러나 북수단은 회담을 진행하면서, 다른 한편에선 야금야금 남부에 대한 인종청소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3300만 주민 가운데 200만여명이 죽었다. 300만여명이 제 고향에서 쫓겨났다. 20여만명이 국경을 넘었다.

    “너무 불공평했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저들이 왜 저토록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는 건지. 영양 상태만 좋으면 쉽게 이길 수 있는 말라리아나 홍역으로 죽어가고, 배앓이로 죽고, 지뢰를 밟아 죽고, 총 맞아 비명횡사합니다. 아이들이 열병에 걸려 신음하면 부모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마당에 물을 뿌려놓고 열이 내리길 기다리는 것 뿐입니다.”지난 3월엔 홍역이 돌았다. 감염된 아이들의 20%가 사망했다. 5살 이하 아이들은 거의 모두 감염됐다고 한다.

    이 신부는 로마로 돌아와 본부에 톤즈를 선교지로 신청했다. 소속도 서울에서 아프리카 관구로 옮겼다. 그곳에 뼈를 묻을 작정이었다. 그곳엔 이미 제임스 신부와 피터 신부, 그리고 수녀 3명이 원주민과 함께 살고 있었다. 2001년 서울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뒤 곧 톤즈로 날아갔다. 그에게는 간호 수녀 2명과 함께 진료소가 맡겨졌다.

    의대 졸업후 사제의 길로‥로마 유학중 수단 참상 목격


    늦깍이 신부인 그는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 의대에서 인턴과정까지 밟았다. 어릴 적부터 사제가 되기를 꿈꿨다. 그러나 성직자 혹은 수도자로 형과 누나를 보내며 어머니가 마음 아파하는 모습이 마음에 걸려 의대(인제대)에 진학했다. 그러나 군의관 생활을 마친 그는 결국 91년 살레시오 수도회에 들어갔다. 92년 광주 살레시오 신학대를 거쳐 로마 살레시오 대학에서 성직자 수업을 받았다.

    톤즈엔 하루 200여명의 환자가 찾아오는 진료소가 있고, 나환자 병동이 따로 있다. 전쟁고아와 기숙학생 등 150여명이 함께 생활하는 기숙사, 800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교가 있다. 그는 이곳 이외에 1주일에 한번씩 넓디넓은 관할 구역 오지마을을 찾아다니며 이동진료를 한다. 그가 찾아가는 날은 마을의 모든 주민이 모이는 날이 되었다. 아파서 모이고, 심심해서 모이고, 구경하고 싶어 모인다. 물론 아이들이 가장 많다.

    하루 200명 환자 보살피며 아이들 음악교사·밴드도 운영


    아이들은 그가 나타나면 ‘쫄리, 쫄리’라고 연호하며 몰려든다. 세례명 요한(존)에 성 이(리)씨를 합쳐 그들의 발음으로 부른 애칭이다. 그는 아이들의 우상이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톤즈의 아이들은 낮 2-3시면 어김없이 그의 진료소로 몰려온다. 거기서 아이들은 춤추고 노래하며 논다. 때론 다함께 음악극도 한다. 아직 이름을 붙이지 않았지만 밴드도 운영한다. 피리 오르간 드럼 베이스 기타 등 갖출 것은 갖췄다. 그는 아이들에게 음악선생이다. 악기와 노래를 가르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아이들이 부를 노래를 만드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가 지은 가스펠송 ‘꼼보니’는 이제 톤즈의 시민가요가 되었다. “즐거운 노래, 찬미의 노래를 다함께 불러요. 꼼보니는 평화의 사도, 꼼보니는 아프리카의 아버지, 고통을 즐거움으로 승화시켰네….” 아이들 2-3백명이 몰려와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는 모습은, 전쟁터 속의 한 작은 낙원을 구현한다. 평화회담에 맞춰 ‘평화를 이루려면 다함께 손을 잡아야 한다’는 내용의 <너에게 평화를 주리라>도 작곡했다.

    “해주는 것보다 받는 행복 커”


    “나환자 병동에 레지나라는 환자가 있습니다. 손가락 발가락이 다 떨어져 나간 말기환자입니다. 가진 거라곤 저주받은 병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항상 행복합니다. 작은 것에 고마워하고, 항상 즐겁게 삽니다. 다른 환자들과 잘 어울리고, 그들을 보살피려 합니다. 레지나에게서 나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내가 그들에게 해주는 것보다 그들이 내게 돌려주는 행복과 가르침이 더 큽니다.”


    아프리카의 아득한 황무지에 붉디붉은 노을이 깔리면, 그의 하루도 저문다. 저녁기도 시간이다. 아주 멀고 험한 곳에 가 있는 아홉번째 자식을 위해 기도하고 계실 어머니와 가족, 따듯했던 교회 식구와 친구들을 생각하며,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처럼 그 자신이 좀 더 겸손해지기를 간구한다. 노을이 땅거미로 바뀔 때까지, 오로지 신만이 이룰 수 있는 하늘의 평화가 가난과 전쟁과 죽음의 땅 수단에 깃들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목마르다’고 하신 예수의 모습을 떠올리며 목마름의 묵상을 한다. 사는 것 자체가 목 마르고 배고픈 톤즈 사람들이 거기에 있다.

    <2004-07-15 한겨레, 곽병찬 기자, 노느매기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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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별 2010.01.16 08:58
    Goodnews 자유게시판 2010년 1월 15일 - 곽일수님의 글입니다.

    원본  출처는 한겨레 신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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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 선종
    어머니가 슬퍼하신다며 암투병도 숨겨 달랬는데…

    보고싶다는 아이들에게 이젠 천상의 음악 합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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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일 이태석(요한) 신부의 부음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날 가능성이 있다고는 보았지만 이렇게 쉽게, 이토록 허망하게 가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한 때문이었습니다. 이날 새벽에 선종한 그의 나이는 불과 48세.
     
    남수단 최초 ‘브라스밴드’ 결성…음악으로 마음 치유

    저는 7개월 전 그와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살레시오수도회에서 만났습니다. 45℃가 넘는 열사의 나라 아프리카 수단에서 8년 동안 살다온 그는 수단인과 다름이 없을 정도로 새까맸습니다.
     
    1987년 인제대 의대를 졸업한 후 군의관 복무를 마치고 광주 가톨릭대를 거쳐 살레시오회에 입회한 의사 출신인 고인은 2001년 사제품을 받은 후부터 2008년 11월까지 아프리카 남부 수단의 톤즈 마을에서 봉사했습니다.
     
    Untitled-3 copy.jpg

    이 신부는 톤즈 마을에 병실 12개짜리 병원을 짓고 한센병을 비롯한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을 보살폈으며, 학교와 기숙사를 세워 가난한 어린이들이 자립하도록 도왔습니다. 고인은 20년 동안 200만명이 사망한 내전으로 인해 깊은 상처를 입은 어린이들을 치유하기 위해 남수단 최초의 브라스밴드를 만들어 아프리카 특유의 리듬감과 음감을 가진 아이들의 천재성을 발굴해내 큰 감동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뜻밖에 대장암 선고를 받고 국내에 머무르면서 항암 치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인터뷰를 하기 전에 요구한 게 있었습니다. 자신이 암투병 중이란 사실을 절대 발설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노모가 자신의 암투병으로 인해 고통받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몸을 돌보지않고 아프리카에서 헌신한 ‘대가’로 얻은 병에 대해 써야만 그의 삶에 대해 제대로 조망할 수 있음이 분명했지만 저는 그와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얼굴에 암의 그림자가 짙었지만 암투병 사실은 한 줄도 쓸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 외로울까 한때 수도자 꿈도 포기했던 그였건만…
     
    Untitled-5 copy.jpg고인은 어려서부터 수도자가 되고 싶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로 위의 형이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가자 자기마저 수도자로 출가하면 어머니가 너무도 쓸쓸해할까 두려워 수도자의 길을 접을 정도로 효자였습니다. 그가 아홉살 때 홀로된 어머니는 10남매를 키우느라 산전수전을 다 겪었던 분이라고 합니다. 그는 어머니의 기대대로 의대에 들어가 의사가 되었습니다. 남들이 선망하는 의사가 되었지만 그래도 그는 가슴 속에서 꿈틀대던 수도자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뜻을 저버리고 수도자의 길로 접어들었고, 아프리카까지 가서 헌신하다가 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어머니가 그 사실을 알고 억장이 무너질 것이 두려워 저에게 그 얘기만은 하지 말라고 단단히 약속을 받은 것입니다.
     
    사제가 된 이 신부가 아프리카로 날아간 것은 2001년이었습니다. 그가 도착해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데 한쪽 구석에서 여자의 비명이 들리고, 쿵하고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고 합니다. 만삭의 임신부가 심한 산고를 이기지 못하고 흙바닥에 넘어져 있었습니다. 일단 나무 아래로 그를 옮기고 열명의 여자들이 ‘인간 커튼’을 두르자마자 아이가 나왔습니다. 미사 중에 태어난 아이를 위해 이 신부가 “식기 전에 세례를?!”이라고 농담할 수 있을 때만 해도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그 뒤 그에게 오는 임신부들은 집에서 애를 낳다 순산을 못해 도움을 청하는 이들 뿐이었습니다. 장가도 안 간 그가 그렇게 받아낸 신생아가 무려 수백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고열과 구토에 시달리는 하루 수십명의 말라리아 환자들, 콜레라로 심한 설사를 하며 탈수돼 심장이 멎어가는 원주민들, 지난 2005년까지 20년 동안 200만명이 사망한 내전으로 팔다리가 잘리거나 가족을 잃어 정신적으로 깊은 상처를 가진 사람 등 하나 같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신부는 어려서부터 음악에 남다른 소질이 있어 피아노와 기타 등을 즐겨 쳤습니다. 어린 시절 성당에 있는 풍금을 치며 이를 지켜봐주던 십자가 위의 예수님의 따스한 시선을 느끼곤 했던 그는 음악으로 전쟁의 상흔이 박힌 아이들을 치유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2년 전 남수단 최초의 브라스밴드를 만들었습니다.
     
    투병중에도 아이들 그리던 그의 모습이 눈앞에 선해
     
    그의 청에 따라 한국에서 온 트럼펫과 트롬본, 클라리넷 등의 수많은 악기들의 대부분은 그도 처음 만져보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도레미파솔라시도도 처음 들어보는 아이들을 가르치자면 그가 먼저 배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고액의 레슨을 받아도 악기를 다룰까말까하는 한국에선 상상도 안 가는 얘기지만 그는 설명서를 보고 혼자 악기를 익혀서 아이들에게 가르쳤습니다.
     
    Untitled-4 copy.jpg그런데 기적과 하느님의 은총은 이 신부에게만 온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까막눈의 아이들이 하루 이틀만에 원하는 음을 불어냈고, 이틀 만에 <주 찬미하라>를 연주했다고 합니다. 합주 연습 후 나흘째 되는 날 첫 합주곡을 다같이 연주해 냈다는 것입니다. 수십년 간 울려퍼지던 총성 대신 클라리넷과 플루트, 그리고 트럼펫의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처음으로 울려퍼졌다고 합니다. 연주가 끝난 뒤 아이들은 “총과 칼들을 녹여 그것으로 클라리넷과 트럼펫을 만들면 좋겠다”고 했답니다. 그 밴드가 대통령이 국빈을 맞을 때 초청공연을 할 정도가 됐으니 ‘주 찬미’가 나오지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프리카 특유의 리듬감과 음감을 가진 아이들은 그야말로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천재’들이었다고 이 신부는 미소지었습니다.
     
    수단에서 헌신하면서 자신을 돌볼 틈이 없어 병든 몸을 치유하기 위해 남몰래 잠시 한국에 들어온 그에게 아프리카의 아이들은 매일 “보고 싶다”며 성화 섞인 편지를 보내온다고 했습니다. 검게 그을리고 야윈 이 신부의 눈동자에서 해맑은 아프리카 친구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그리며 순진하게 웃던 그의 검은 눈동자가 지금 바로 제 앞에 있는 것처럼 또렷하기만 합니다.
     
    이 신부의 빈소는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살레시오 관구관에 마련됐습니다. 장례미사는 16일  오전 8시30분 살레시오 관구관 4층 성당에서 봉헌된답니다. 장지는 전남 담양 천주교 공동묘역 살레시오 성직자 묘역입니다. 02-828-3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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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별 2010.01.16 09:15
         

    굿뉴스 - 우리들의 묵상 - 2003년 3월 10일 은표순님의 글  ( 선종하신 이태석 신부님의  생전  편지글이  소개 되어 있습니다.)

    이제 선종하신 신부님을 기억하며, 그분의 생전의 뜻을 기리며, 우리가  그분이 살았던  생애를 기억하며  이어가야 할 것 같아 

    몇 개 댓글을  계속 올렸습니다. 

       ☞ 평등 ☜

     

    『"그 때에 그 임금은 자기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희는 내 아

    버지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니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

    하여라.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

    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또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주었다.’ 이 말을 듣고 의인들은 이렇게 말할것이

    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렸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31-46.}

     

    오늘 복음에 비추어 어떤 신부님 한분을 소개 해 드리겠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의대를 졸업

    하시고 레지던트 과정중 수도원에 입회 하셔서 서품을 받으신 후 지금은 아프리카 수단에서

    의료 선교활동을 하시고 계십니다. 살레시오 가족지에 실린 신부님의 편지를 기재해 드리겠

    습니다.

     

    『 가난함 속에서 부르는 희망의 노래』  이태석 신부  {살레시오회}

     

    살레시오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하느님이 주신 철인 같은 건겅 덕택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또한 이곳의 생활과 문화에 잘 적응해 가고 있습니다. 이곳 주민들은 주로’딩카’

    라는 토속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아랍어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5~6학년 이상

    이면 영어를 꽤 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주민들과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환자들과 의사소통을 위해 하는 수 없이 딩카를 공부하고 있고 지금은 어느정도의 대화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주민들이 아랍어를 잘 섞어 쓰기 때문에 딩카라고 생각하면서 배운 단

    어들이 나중에 알고보면 아랍어인 경우가 꽤 있습니다. 이곳 병원에는 하루에 120~130명 정도의 환자가 찾아옵니다.40% 이상이 말라리아 환자들입니다. 그리고 더러운 물이나 지저

    분한 음식으로 인한 설사 등의 전염병 환자들도 아주 많습니다.

     

    『’감사’란 단어가 없는 곳에서 감사를 일깨우며』

     

    일주일에 두 번은 숲속 마을로 이동 진료를 가고 있습니다. 지프차에 약품들, 물, 비스킷. 주사약, 붕대 등을 싣고 숲속을 향해 달립니다. 마을에 도착하면 모든 주민들이 한꺼번에 달려옵니다. 가끔씩 응급환자들도 만나지만 대부분이 가벼운 환자 내지는 엄살 환자들입

    니다. 그래도 속는 척하고 일일이 진찰하고 약을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약을 간직해 두었다가 정말 아프고 급할 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으로 의사를 본다

    며 저를 신기하게 보는 사람도 꽤 있습니다{...} 처음에 이곳에 와서 이 곳 사람들의 이상

    한 점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환자들에게 약, 주사, 음식등 모든 것을 무료로 주고 또 주어

    도 "감사합니다" 또는 "고맙습니다"라고 절대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처음에는 혼자서 화를 많이 내기도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예 그들의 말에 ’고맙다’

    는 말 자체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질 대로 떨어진 그들의 처절한 상황

    에서 하루하루 생을 연명하기만 하면 됐지 ’고맙다’, ’감사하다’라는 말이 뭐 필요가 있었

    을까 라고 생각하니 그들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만큼은 일부러 감사의 표현을 하게끔 시키고 있습니다.

     

    『오라토리오의 소중한 음악시간』

     

    오후 4시경에는 많은 아이들이 오라토리오에 옵니다. 오락기구가 전혀 없는 이 곳 아이들

    에게는 축구, 농구, 배구 등을 하며 즐길 수 있는 귀중한 시간입니다. 몇 달 전부터는 뮤직

    그룹을 만들어 오라토리오 시간을 이용해 피리, 기타, 오르간을 이론과 함께 가르치고 있습

    니다. ’도래미파솔라시도’란 것을 처음으로 들어보는 아이들이었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국악처럼 이곳의 음악도 5음계만이 존재하기에 ’파’와 ’시’음을 내게 만드는데 아주 힘이 들었습니다. 100번 연습 후에도 결국은 ’미’와 ’파’를 똑같은 음으로, 그리고 ’시’와 ’도’

    를 똑같은 음으로 소리 내어 버리기가 몇 달이었습니다. 지금은 훨씬 나은 편입니다. 보통 ’아프리카 사람들’ 하면 ’음악이 나오면 몸을 흔들지 않고는 못 베기는 음악적인 사람들’

    이라는 것이 통념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조금 다른 편입니다. 아마 오랫동안의 가난과 전쟁 탓인지 미사시간에 노래를 부르며 몸을 절대 흔들지 않습니다. 표정도 변하지 않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음악에 무뚝뚝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면서 그것

    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고통과 가난에 지칠대로 지쳐 표현을 하지 않을 뿐

    이지 음악의 리듬을 피와 살로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많은 아이들이 피리와 오르간, 기타 등을 쉽게 배워 버립니다.기타를 가르친지 이틀 만에 성가 몇곡을 한번의 막힘도 없이 연주

    해 버리는 아이도 있었고 가르친지 5일 만에 양손으로 오르간을 연주해 버리는 천재 같은 아이들도 있습니다.이러한 순간들은 가슴으로 행복을 느끼는 순간들이고, 저를 이곳으로 보내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는 순간들입니다. 크리스마스 때 아이들이 직접 피리와 기타, 오르간 등을 연주하며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미사곡 몇곡을 만들어 오르간과 리듬박스를 이용해 몇몇 아이들과 함께 음악 테이프 하나도 만들어 보았습니다.

    오라토리오 시간에 가끔씩 그 테이프를 틀어주는데 많은 아이들이 좋아라 하고 음악에 따라 춤도 춥니다.이 곳 아이들에게는 드럼연주는 거의 장난입니다. 간단한 리듬정도는

    서너살베기 아기들도 두드릴 정도로 ’손 북’ 두드리기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일반화 되었습

    니다. 내년 초에는 그룹 사운드를 조직할 예정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곳 사람들의 제일 큰 장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철하게 가난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기쁘게 산다는 것입

    니다.상대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풍족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자주 느낄 수 있습니다.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가지고도 만족

    하지 못하고, 더 가지지 못해 안달하면서 싸우고 죽이고 하니 말입니다. 행복의 원인은

    물질이 결코 아닌데도 말입니다. 지금 막 병원 건물 짓기를 시작했습니다. 많은 것이 부족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생각에 일단은 판을 벌려 놓았습니다. 기도 부탁 합니다.

    -------------------------------------------------------------------------------------

    바로 오늘 복음은 "어려운자들에게 어떻게 했는가?"라는 내용입니다

    골짜기에 묻힌자들을 평등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이토록 열정을 쏟으시는 신부님께 작은 보탬이되어드리면 참 좋겠습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수단 선교에 도움이 필요합니다

    ★ 아프리카 선교에 도움을 주는 방법

    국민은행 090-25-0011-136

    {예금주: 살레시오 아프리카 후원}

  • ?
    가별 2010.01.18 08:27
     

    살레시오 수도회 홈페이제 올라 온 은표순님의 이태석 신부님을 그리며 올린 글입니다.
    이태석 신부님에 대한 글을  한동안 올린 것은  그분의 뜻을 우리가 기억하자는 차원에서 올려 보았습니다.
    이젠, 주님곁으로 가신 이태석 세례자 요한 신부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며, 우리 또한 그 사랑 실천 이어 가려 합니다.
    저희 본당 신부님께서 전하시는 이태석 세례자 요한 신부님의 마지막 모습은  의식이 있으실 때 까지 기도하시면서 선종하셨다고 합니다.






    제 뇌의 인지 기능이 고장이 난 것 같습니다.
    도무지 현실을 감지하지 못하겠습니다.
    마치 유체이탈인 것 처럼 몸 따로 혼 따로입니다
    몸은 연도를 바치는 교우들 속에 있고 미사참례를 하고
    편안히 주무시고 계시는 신부님을 뵙고 하여도, 저의 혼 속에서는
    신부님의 모습이 더욱 생생하고 또렸하고 신부님의 그 해맑은 웃음과
    반짝이는 눈동자는 그리고 신부님의 그 음성은 이토록 온 세상에 가득한데,
    이것은 정말 현실이 아닙니다.
    잠을 자지않는데도 꿈을 꾸나 봅니다, 신부님!
    허깨비가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 당대 사람들도 이랬을까요?
    돈보스코 당대 사람들도 이랬을까요?

    아무리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현실을 직시하려 해도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생존해 계시는 신부님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신부님!
    신부님께서는 그 동안 휴가 아주 원없이 잘 보내시고 수단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토록 그리워 하시더니 가셔서 아이들 잘 만나셨습니까?
    반가워서 아이들 무등 태우시고 머리 쓰다듬어 주시고 저희들은 알아듣지 못할
    인사말 나누시며 아이들 만난 기쁨에 아이들과 춤을 추시는 모습 눈에 선합니다.

    그래요, 신부님!
    신부님께서 그토록 즐거워 하시니 저희들도 참 기쁨니다.
    부디 오래도록 아이들과 그렇게 즐겁게 사시면서 가끔은 저희들도 생각하시어
    신부님 모습 좀 보여주셔요.
    아이들에게 푹 빠지셔서 저희들 나몰라라 하시면 삐질거예요.
    이거 협박 아니예요, 정말 삐질거예요.
    건강도 잘 챙기시면서요.
    그런대 신부님, 벌써부터 기다려지는데 신부님 언제 오실거예요?
    너무 늦게 오셔도 삐질거예요, 정말이예요.

    안녕히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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