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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렛 [Nazare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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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렛은 히브리어의 수호자 또는 파수꾼을 의미하는 나자르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예루살렘에서 137km,  갈릴래아의 티베리아에서 29km, 하이파에서 41km 떨어진 곳으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로 토질은 모래땅이다.

 

구약성서에는 기록이 없으나 신약성서에 따르면 요셉과 마리아의 고향으로, 예수님이 헤롯왕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에 갔다가 돌아와 30년 동안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예수님을 '나자렛 예수'라고 부른다. 백성들이 예수님을 미워하여 벼랑에서 밀어냈다고 하는 높이 10m에 이르는 절벽이 있고,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잉태를 알렸다고 전해지는 곳에 세워진 '주님 탄생예고 대성당', 요셉이 목수일을 하던 집터 위에 세워진 '성 요셉 성당'등 예수에 관한 많은 전설과 유적이 남아 있다.

 

주민 대부분은 아랍인(人)으로, 성지순례를 위한 관광객 상대의 상인들이 많다. 전체인구의 60%가 아랍계 천주교인이다. 도시 주변에는 유대인들이 거주하는 아파트가 아랍인의 거주지구를 둘러싸듯이 세워져 있어서, 이스라엘 국내의 복잡한 아랍민족의 문제를 엿볼 수 있다.

 

청동기 시대인 기원 전 3000-2000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곳이기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곳이다. 그래서 나자렛은 구약성서에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탈무드나 유대의 역사학자 요세푸스 플라비우스의 기록에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오라고 하자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하고 반문하며 의아해 했다는 요한복음사가의 이야기를(요한 1,45-46참조)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지방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지만 복음사가들은 예수님을 나자렛 사람(마태 2,23) 이라고 부른다. 복음서를 살펴보면 나자렛 사람 예수(마태 26,71; 마르 14,67; 마르 16,6), 나자렛 사람 예수님(마르 1,24; 10,47; 루가 18,37; 루가 24,19; 요한 18,5; 요한 18,7; 요한 19,19), 나자렛 출신 예언자 예수님(마태 21,11) 그리고 나자렛 출신 요셉의 아들 예수 (요한 1,45) 등이다. 특별히 십자가 위의 명패에는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INRI =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라고 쓰여 있었다.

 

나자렛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다. 헤로데 대왕 시절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가 이곳에 살고 있었다(마태 1,18―2,23; 루가 1,26-27; 2,4 참조). 그리고 헤로데가 죽자 이집트에서 돌아온 아기 예수님과 함께 마리아와 요셉이 성가정을 이루어 살던 곳이다(마태 2,19-23; 루가 2,39-52).

 

The Basillica of The Annunciation [주님 탄생예고 대성당, 성모 영보 대성당, 수태고지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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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영보 기념대 성당은 마리아의 집터였다고 하는 곳에 1960년부터 짓기 시작하여 1969년에 완성된 것인데, 그 자리에 세워진 다섯 번째 교회이다.

언제부터인가 그리스도인들은 이른바 성모영보 동굴에서 전례를 행하였는데, 384년 스페인 수녀 에테리아(Etheria)가 순례를 가서 이 동굴을 참배했다. 5세기 초에 성모 영보가 있었던 동굴 위에 작은 경당이 세워졌으나, 614년에 페르시아 군인들에게 파괴되었다.

그 후 1102녀-1106년 십자군 시대에 큰 규모의 성전이 지어졌으나 1187년 십자군이 갈릴래아 호수 북서부 핫틴(Hattin) 대회전에서 살라딘 회교군에게 패함으로써 나자렛 성모영보 성당은 다시 1263년에 이슬람들에 의해 파고 되었다.

1632년, 1730년, 1877년, 1969년에 성전이 지어지지만 지진과 전쟁등으로 파괴 되었으며 현재의 성모영보 대성전은 1969년 3월 24일 가로데(Garrone) 추기경에 의해 축성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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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영보 대성전이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1954년부터 11년간에 걸친 고고학 발굴을 통해서 수많은 동굴과 물 저장소, 곡식 저장소, 기름틀 뿐만 아니라 비잔틴 시대의 성전터도 찾아냈다. 현재의 성모 영보 동굴은 헤로데 시대에 속하는 가정집으로 마리아가 살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 곳에서는 3세기경에 해당하는 시나고가 건물의 일부도 발견 되었는데 기둥에는 희랍어로 마리아, 찬미 받으소서(XE MAPIA)라고 새겨진 돌기둥을 발견함으로써 마리아에게 봉헌된 경당이었을 것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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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년의 순례기록에는 이 성전이 세워진 곳은 마리아가 거처했던 곳으로서 주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린 곳이다고 전하고 있다. 이런 전통에 의해서 동굴 안에 위치한 중앙 제대에는 라틴어로 VERBUM CARO HIC FACTUM EST라고 쓰여 있는데 "이곳에서 말씀이 육이 되셨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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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0년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이 작은 성당을 세웠다. 프란치스코회의 고고학 발굴팀이 1954년부터 1965년까지 현지를 발굴하였는데, 1960년부터 새 성당을 짓기 시작하여 1969년에 지금의 대성전을 완공하였다.

대성당 아래층 중앙에 성모영보 동굴, 비잔틴 성당 벽과 기둥이 잘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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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성당 윗층 벽면과 정원 벽면에는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이 제각기 자기네 화풍으로 성모자상을 그려 봉현해 놓았다. 한국에서는 이남규 교수가 이탈리아에서 제작해서 봉헌한 한국의 성모자상 모자이크가 정원 벽면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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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정원 외벽에 있는 각국의 성모자상 모자이크 중 몇 나라의 것만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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